[20대 대선 이후 진보의 길] 포스트 우크라이나 전쟁, ‘신세계질서’와 한국외교

민중의소리 창간 22주년 기획 릴레이 기고⑪끝.

편집자주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3월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러시아의 공격으로 불타는 공장과 상점 사이로 자전거를 탄 한 우크라이나 남성이 나오고 있다. 2022.03.07. ⓒ뉴시스
1. 들어가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신세계질서’가 전망되고 있다.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가 요란한 선포식을 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9년 현존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독일이 재통합되었을 때 누구는 ‘역사의 종말’을 말했고, 누구는 사회주의의 종언을 말했다. 일찍이 역사가 홉스봄은 20세기를 일종의 3부작, 즉 1914-1945년 파국기, 1945-1972년 냉전기, 1972-1989년 불확실성기로, “단기” 20세기 혹은 “극단의 시대”로 파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붕괴이후 즉 1989-2022년 오늘까지의 세계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914-1945년 “30년 전쟁”과 비교해 지난 30년은 앵글로색슨의 ‘리버럴 단극체제’ unipolarity에 대항하는 이슬람권의 포스트콜로니얼 도전과 단극체제와 중·러의 경쟁적 콘도미니엄으로 특징지워진다고 나는 본다. 우크라이나전쟁을 변곡점으로 반反 내지 비非리버럴 중·러 전략적 제휴와 미·EU 대서양동맹과의 거대한 균열이 현 시기 세계체제의 지배적 운동경향이라는 말도 된다. 리버럴 세계질서는 이제 지금까지의 ‘정치군사적 단극, 경제적 다극’에서 ‘정치군사적 양극, 경제적 다극+’로 형태변경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 체제를 그저 신냉전이라고 시기구분하는 것은 이미 1980년대의 신냉전과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충분치 않지만, 더 나은 개념규정이 나올 때 까지 ‘냉전Cold War II’라는 잠정규정에 만족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의 패권 즉 리버럴 단극체제는 첫째, 미국의 군사력과 둘째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 이후 세계체제에서 미국의 군사적 단극과 여기에 기초한 미국외교와 달러의 패권은 과연 지속가능한 지가 문제의 핵심 중 핵심이다.

2. 단극이냐, 양극 혹은 다극이냐

탈단극 경향이 정치군사적 양극bipolar체제로 자리 잡을지, 즉 미국 대 중·러 준블록체제의 대결이 구조화 될지 여부는 인도, 브라질 등 글로벌 사우스까지 산입할 경우 사실 간단치 않다. 엄격히 말해 이 체제는 러가 원해서라기보다 리버럴 개입주의의 확장으로 인해 강제된 측면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러가 또 블록체제 형성까지 갈지 여부도 아직은 불확실하다. ‘불확실성의 확실성’외에 당분간 명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러시아의 ‘약화’를 전략적 목표로 전쟁의 장기화, 영구화를 추구할수록 러와 중의 전략적 연대는 더욱 공고해 질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치군사적 양극화는 불가피해진다는 말이다.

러시아 고립을 외치고 제재를 남발하면서 반러 전선에 동참한 이른바 ‘서방the West’은 한 묶음으로 통칭될 그런 것이 있는 지도 의문이다. 지금은 그저 미국의 ‘서방’만이 관찰될 뿐이다. 미영과 비교해, 독일은 재빨리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내려온 이른바 ‘중유럽Mitteleuropa’라는 지정학적 공간을 재구상할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에너지의존으로 인한 전통적인 친러노선을 전면 폐기할 것인지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독·러 우호관계를 분쇄하는 것이 미국의 숨어 있는 전쟁 목적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전쟁 중개를 통해 더 많은 역내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겠지만 대개 실리에 약한 프랑스외교의 특성상 그 성공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기타 유럽 강소, 약소국은 지역 안정과 조기종전에 우선 관심이 있다.

역사상 최악의 지정학적 위기를 불러온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과 더불어 미국은 치열한 외교전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성과는 다른 문제다. 이른바 ‘서방’의 속을 들여다보면 산법이 서로 다르듯이 비서방을 보면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하다. 주적인 중국이 대러 규탄에 나서지 않는다고 성토하는 미국 외교는 다소 안쓰럽고 블랙유머 같다. 지금 중국의 대러 우호중립은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인도를 쿼드Quad로 묶어 반중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미국 인태전략의 축 가운데 하나지만, 굳이 인도가 쿼드의 군사동맹화나 대러제재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 실리중립이다. 브릭스의 또 다른 국가인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대러 제재전선에서 중동국가군이 보이는 스탠스도 흥미롭다. 사우디가 움직이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더불어 ‘무조건’ 미국편인 이스라엘의 태도는 또 무언가. 전술적 중립으로 본다. 터키는 사우디를 견제하면서 역내 주도권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통제는 어불성설이다. 또 나토회원국인 터키는 핀란드, 스웨덴으로의 나토 북진을 비토하고 나섰다. 아울러 러와 우크라이나간의 이스탄불 라운드의 중개인을 자임함으로써 국제정치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의 수입 금지를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동참은 각국의 결정 사항이라고 밝혔다. 2022.03.09. ⓒ뉴시스

지금 ‘바이든의 전쟁’은 영구endless 전쟁이다. 단 10인을 제외한 공화당 196인, 민주당 221인 전원이 찬성한 가운데 무기대여법이 지난 4월 28일 미하원에서 통과되었다. 이 98%라는 조지 오웰의 ‘1984’나 1970년대 한국의 유신정권에서나 볼 법한 일이 미의회에서 일어났다. 이 민주적 ‘전체주의’는 지금 미국의 전쟁히스테리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반전에 대한 반대가 거의 테러 수준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미국에서 평화는 죽은 말이 되었다. 이 말은 단극에서 양극 혹은 다극으로의 이행이 결코 연착륙이 아니라 자칫하면 냉전II가 아니라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리버럴 헤게모니의 붕괴가 세계전쟁을 불러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미국의 개입이 노골화되고 특히 우크라이나 주변국 그 중에서도 노골적인 침략 야욕을 드러내는 폴란드 극우성향 정권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스탈린에 의해 우크라이나에 귀속된 르보프(리비우)를 중심으로 한 동갈리시아 지방에 이른바 ‘평화유지’ 구실로 폴란드 군대가 진입하는 순간이 3차 대전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전황으로 볼 때 러시아가 남동부 돈바스지역을 넘어 우크라이나 전부를 병합한 뒤 우크라이나를 분할시키고자 시도한 다면 이 또한 영원한 불씨가 될 수가 있다. 상황은 현재 파국과 대재앙 직전에 와 있다.

3. 달러패권의 향방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장기화 전망과 관련해 역시 중요한 것은 경제전이다.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 GDP규모는 1,556억 달러로 인접 루마니아의 2,487억 달러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 일인당 GDP는 3,727달러 정도로 벨라루스의 6,411달러에 한 참 뒤처진다. 반면 러시아의 경우 같은 기간 GDP 1조5천억 달러, 일인당 GDP는 10,126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동기간 GDP 1조6천억 달러, 일인당 GDP 31,489달러) 특히 러시아는 오일머니 유입으로 급성장하는 나라다. 그리 보면 우크라이나는 경제규모로 러의 1/10이며, 일인당 GDP는 유럽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오랜 내전과 특히 지난 한 달간의 전쟁으로 GDP의 –20%가 예상되기도 하고, 러의 통신, 도로, 항만 등 사회인프라와 기간시설 집중폭격으로 산업생산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양적 지표로만 볼 때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중장기전으로 갈수록 절대 불리하다. 유럽 최빈국 우크라이나의 암울한 경제상황과는 달리 개전 전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경제의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루블화는 전전보다 더 안정되었고, 무역흑자는 기록적이며, 재정수입은 폭증했고, 미, EU와 비교 인플레로부터도 확실히 덜 취약함을 입증하고 있다.

알다시피 미국은 대러 경제제재 일환으로 국제결제시스템 스위프트SWIFT에서 러를 퇴출했다. 하지만 미·EU의 장기제재 대비 차원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전부터 미·EU 농산물 수입을 금지했고 이러한 보호무역주의의 결과 러 농산물 수출이 천연가스를 뛰어넘는 300억 달러로 성장하는 역설이 등장했다. 미주도 국제금융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채를 대량 매각, 대신 중국 국채를 사들이고 있었고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GDP 1/3에 해당되는 준비금을 축적했다. 스위프트 퇴출에 대비해 자체 금융결제망 SPFS과 국내결제용 은행카드 Mir를 러시아 국민 87%에게 발급했다. 그리고 중·러간 무역의 달러화결제 비중을 꾸준히 감축시켜 왔고 23개 러시아 은행은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에 연결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SWIFT에 대항할 수준이 아님은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1차 대전 이후 국제연맹시절에 도입된 국제제재가 특히 강대국이 관련된 국제분쟁을 해결할 유의미한 수단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미·EU의 제재를 통한 우크라이나 분쟁종식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제재중독에 대응해 러가 어느 정도 내성을 키워왔고 특히 중국이 우호중립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제재가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제재의 수단으로 달러화가 남용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크레딧이 훼손되어 ‘탈달러화’ 경향을 가속시킬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달러의 독점적 지위는 힘의 과도한 투사로 인해 오히려 부메랑을 맞을 수 있고 이로 인해 경제다극화 경향이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군사력의 패권은 달러패권과 동전의 양면이다. 군사력의 과도한 투사, 과거 폴 케네디의 표현을 빌자면 ‘제국적 과잉팽창overstretch’ 혹은 리버럴 제국주의의 표현으로서 나토동진이 오히려 러의 반발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불러오고, 미국의 영구전쟁을 통한 러시아 압박와해 노선이 중·러 결착을 불러 왔다. 그 결과는 단극체제의 와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달러 패권도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강제퇴출시키고 강력한 경제제재를 통해 러 석유 및 가스 대금결제에 대한 달러결제를 금지시킨 것도 그렇다. 힘의 과잉투사로 인해 미 스스로 페트로달러에 기초한 달러 패권의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페트로위안과 루블가스의 출현으로 국제금융질서의 탈달러 경향은 이제 불가역적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금융제재 명목으로 미·영계 금융기관에 예탁된 러시아–중국, 이란, 아프간, 북한 등도 포함–자금을 그 자체로 불법인 일방 제재를 통해 압류함으로써 국제금융거래의 기본인 수탁자의무를 위반해 버렸다. 즉 달러를 무기화, 정치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영계 금융기관에 예탁된 달러 표시 러시아 금융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쓰겠다는 식으로 사실상 약탈한다면 이들 기관의 국제적 크레딧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국제금융시장의 다극화는 점차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 일극체제는 이번 전쟁을 변곡점으로 그 자체 더 이상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지점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5일(현지 시간) 화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있다. ⓒ뉴시스, 신화통신

4. 한국외교의 미래, ‘글로벌 가치외교’?

국제정치의 다양한 지형도를 놓고 보면, 한국의 대응은 마침 대선국면과 맞물리면서 좀 아마추어스럽게 시작되었다. 전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 국제사회의 흐름, 남북관계, 대중·대러 관계에 대한 종합적 분석은 아직 새정부로부터 확인된 것이 없다. 그 사이 윤 대통령의 후보시절 다소 원론적인 우크라이나 지지가 있었고, 국회는 젤렌스키의 티셔츠 화상연설 자리를 만들었다. 젤렌스키의 국회 화상연설에 참석한 의원수를 놓고 한겨레신문부터 조선, 중앙까지 일치된 ‘부끄럽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우크라이나 대연정으로 부른다면 과장일까?

그러는 사이 신임 박진 외교부장관은 새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로 ‘글로벌 가치외교’를 내세웠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나라로서 국내도 그렇지만, 지역차원의 자유민주주의도 중요하다”며, “자유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국이 나름대로 입장을 밝히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국익 외교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도 천명했다.

새정부가 자신의 국정기조에 맞게 외교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야 타박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21년 2월 미국의 새로운 외교와 관련해 바이든이 한 말이 연상되는 것은 웬일일까. 바이든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의 가장 소중한 민주적 가치에 뿌리내린 외교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그 가치란 자유를 수호하고, 기회를 옹호하며, 보편적 권리를 유지하고, 법치를 존중하며 그리고 모든 인격을 존엄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글로벌 정책과 우리 글로벌 파워의 접지선이다. 이것이 우리 힘의 무궁무진한 원천이다. 이것이 미국의 변치 않을 장점이다.”

새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강조한 바 있으니 그러려니 할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외교, 바이든의 외교가 이미 말했던 ‘가치외교’를 베낄 것까진 없지 않은가. 국제관계는 힘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장이다. 모든 권력과 자본은 반드시 ‘가치’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가치 문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인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가치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반드시 복수다. 그래서 어떤 가치, 누구의 가치를 말하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는 필시 해석의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가치를 왜?’라는 문제 말이다. 이 과정에서 가치는 어떤 형태로든 이데올로기 즉 이념에 대해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고, 자칫 외교에 이를 적용할 때 이념외교의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신임장관의 말에서도 선후상 먼저 가치외교가 있고 그 다음 ‘국익외교’가 등장한다. 그래서 자칫 국익보다는 가치 예컨대 여기서는–자유와 민주를 지키려는–동맹이 우선되는 일이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국익우선 외교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왜냐 하면 국제관계는 대개 가치보다는 언제나 소위 ‘국익national interest’ 앞에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스 모겐소의 정의를 빌리자면 국제정치란 ‘권력이라는 이름의 이익interest defined as power’를 추구하는 행위이지 그 무슨 가치를 추구하는 영역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가치외교를 추구한 바이든의 외교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우크라이나를 보면 된다. 미국 리얼리스트 학파가 수도 없이 경고한 것처럼 러시아를 구석에 몰아 중국과 제휴하게 만들어, 미국의 리버럴 단극체제의 수명을 오히려 단축하지 않는가. 이 과정에서 러시아 약화 즉 경제력을 탈진, 소모시켜 스스로 와해되게 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체를 즉 ‘우크라이나인이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to the last Ukrainian’ 반러 전쟁에 나서게 하는, 다시 말해 우크라이나 전국민을 ‘무기화’하는 가장 반가치적이고 반도덕적인 일에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의 침략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3차 대전을, 핵전쟁을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 모두의 무기화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선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5.10. ⓒ뉴시스

세계는 지금 ‘거대한 전환 Great Transformation’의 시기에 들어섰다. 당장 와해까지는 아니지만 미국주도 리버럴 단극체제는 심한 균열의 징후를 보일 것은 자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중·러 접근이 가사화되면서 북한은 이전보다 분명 더 많은 정치군사적 공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정치군사적 양극체제로부터 상당한 이득이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일단 한미일 삼각 간에 준동맹적 협력을 요구받게 될 것이고, 당장 일본과 기존 지소미아를 넘어–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하다 중단된-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신임 장관이 “지역차원의 자유민주주의도 중요”하다고 했고, 이달의 한미정상회담 의제 관련해서 “글로벌 공급망 교란 대응과 새로운 인도태평양 지역질서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이 말은 바이든 정부가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해 대중 경제포위망 구축에 동참하겠다는 말이다. 이른바 ‘자유무역보다 공급망 경쟁’을 내건 가치동맹의 대상국 면면을 보면 이미 대부분 아세안을 비롯한 RCEP 가입국이다. 쉽게 말해 RCEP이 중국이 주도하니 이제 IPEF를 만들어 ‘또 줄서기’를 강요하겠다는 말이다. 이 본질을 중국이 모를 리 없고 아시아에서 미중 패권경쟁에 새우등 신세가 되게 되었으니 이것이 새정부의 ‘글로벌 가치외교’인지 싶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미국은 역시 새정부에 모종의 역할을 강요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국방부가 거절한 바 있는 한국산 미사일–예컨대 천궁-을 미국에 ‘제출’하면 미국이 전달해 주겠다는 제의를 한 바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 기술이전 및 특히 러산 무기도입 과정에서 체결한 협정의 일방적 파기시 심각한 후과가 예상된다. 만약 러시아가 한국을 적성국가로 지목해 직접적인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러가 북한에 새로운 무기제공과 기술이전에 나설 경우 한반도는 다시금 싱가폴회담 이전 상황으로 회귀, 글로벌 냉전II와는 별도의 냉전구조가 영구화할 수 있다.

포스트 우크라이나 세계질서라는 이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는 상당 기간의 불안정과 조정기를 경과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향후 세계가 3차 세계대전으로 갈지, 2차 냉전 혹은 저강도 열전으로 갈지 아직은 미정이나, 미·EU 대 중·러 사이 다층적 힘관계의 방향과 크기의 벡터에 의해 규정될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외교는 이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라는 혹독한 시험대를 경과해야 한다. 향후 새로운 구조가 착근되는 기간 동안 달러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 급속히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정치경제도 마찬가지로 구조변경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 전쟁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극체제로의 이행이 진행될수록 북체제의 스트레스는 감소될 가능성도 예측되는 반면, 한국의 세계화레짐은 어떻게든 새로운 상황에 적응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저 바이든의 가치외교를 모방한 ‘글로벌 가치외교’로는 감당하지 못할 그런 시험 말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 등록된 원소스가 없습니다.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