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이후 진보의 길] 대학을 잠식하는 백래시 물결, 연대로 넘어서야

민중의소리 창간 22주년 기획 릴레이 기고③

편집자주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혐오 표현은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필자의 의도를 담아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성평등위원회 유지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칼이나 담뱃불로 훼손된 모습 ⓒ필자 제공

대학은 결코 안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여성 혐오가 공기처럼 만연한 사회 곳곳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성평등이 필요한 공간이 바로 ‘대학’입니다. 교수들의 권력형 성폭력과 학내 젠더폭력은 끝없이 발생하고, 학생자치 대표자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학생사회의 성평등을 위협합니다. 온라인와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혐오 발언들은 여과 없이 대학 구석구석을 부유하며 소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합니다. 점점 더 거세지는 대학 내 백래시야말로 성평등이 필요함을 증명합니다.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부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에게도 이 글이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처럼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대학 내 백래시 – ⓵ 끊임없는 학내 성평등 담당 기구 탄압

2021년 10월 8일 졸속 폐지된 중앙대학교 제8대 성평등위원회 ‘뿌리’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2021년 9월 30일,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익명으로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 안건을 발의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익명의 발의자는 ‘성평등위원회는 극단적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한 페미니즘을 기조로 하므로 남녀갈등을 조장하고, 특정 성별만 수혜 가능한 사업만 편향적으로 진행하며, 범사회적으로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이 형성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성평등위원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평등위원들과 페미니스트들을 조롱하는 말과 함께 올라온 안건은 익명 3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확대운영위원회에 상정됐습니다.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59명의 학생자치 대표자들이 성평위 폐지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찬성자 중 단 한 명도 당당하게 폐지를 찬성하는 이유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성평등위원장의 신상발언조차 부결됐고, 대안으로 제시된 ‘반성폭력위원회 신설, 학생소수자 인권 위원회 준비 TF팀 설치, 중앙집행위원회 성평등국 신설 안건’도 모두 부결됐습니다. 대학 사회 내 성평등한 문화를 확산시키고, 반성폭력 기구로서 학우들을 보호하던 성평등위원회는 결국 2021년 10월 8일 폐지됐습니다. ‘뿌리’는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 아동, 장애인, 성소수자, 기후위기, 인종차별 등 다양한 사회 의제에 목소리를 내었고, 중앙대 권리 가이드라인 제작 및 배포, 운동챌린지, 성평등 도서관 사업, 성폭력 피해 신고창구 운영 등 모든 학우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대학 사회의 성평등 수호를 위해 활동하던 ‘뿌리’의 졸속 폐지는 학내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성평등 담당 기구 탄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뿌리’ 졸속 폐지 이전부터 여성 운동을 향한 탄압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남녀평등’은 이미 실현되었고 존재 자체가 역차별이라는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근거 삼아 2013년에 총여학생회가 폐지됐습니다. 2019년에는 학내 여성 운동가들이 각 단과대와 학과 학생회에 성평등위원회를 설립하고 지원하기 위해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hung-ang university)를 기획했으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학내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이 쏟아졌습니다. 학내 성평등 담당 기구의 축소 및 폐지와 같은 백래시는 비단 중앙대에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2018년 성균관대와 동국대에서 대안도 없이 총여학생회가 폐지됐고, 곧이어 연세대 총여학생회도 2019년에 폐지됐습니다. 한국외대 성소수자 동아리 ‘외행성’은 가인준 심의의 건에 결격사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전체동아리대표자 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대학 내 백래시 – ⓶ 난무하는 혐오와 폭력

대학 내 성차별 및 성폭력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 몇 년간 서울대, 홍익대, 중앙대 등 많은 대학교에서 권력형 성폭력이 발생해, 교수와 학생의 위계관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교수들을 지칭하는 알파벳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수업 중 교수나 학생에게서 성차별적 언행을 겪거나,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카메라가 적발된 경우 역시 셀 수 없습니다. 또한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학사가 지속되면서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 대학생의 주요 공론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많은 대학생이 에브리타임에서 생산되는 혐오 발언에 노출됐죠. 익명의 혐오자들은 성평등위원들을 포함한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죽여버리겠다’, ‘패버리고 싶다’, ‘성기 찢어버리고 싶다’, ‘미친년들’, ‘정신병자들’, ‘호수에서 물고문 시키고 싶다’, ‘총살해야 한다’ 등의 말을 내뱉고, 이와 같은 혐오 발언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퍼져나갑니다. ‘뿌리’ 졸속 폐지를 비판하거나 백래시를 지적하는 대자보들은 붙여진 위치가 공유되어 갈기갈기 찢기거나 담뱃불로 지져집니다.

대학 내 여성 운동가들의 신상을 캐는 글들도 비일비재하죠. 저 같은 경우, 어느 방송사와 페미니즘에 대해 30초가량 인터뷰한 영상이 캡처되어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혐오가 난무하는 온라인 공론장에 제 얼굴과 이름, 소속이 모두 밝혀졌고 게시물엔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앞으로 저는 대학 어디선가 제 신상을 아는 이들을 마주칠 테고, 이와 같은 일들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이 겪었던, 그리고 감수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성평등을 위해 활동한다는 이유 하나로 말입니다.

사회의 백래시와 서로 닮은 혐오의 논리

이번 대선은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난무했습니다. 여성 혐오를 정치 전략으로 삼고, 젠더 갈라치기 정치를 통해 시민들을 분열시키며, 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기득권들은 사회의 백래시를 전면에 드러내며 혐오를 양산했습니다. 또한 성차별 및 성폭력 관련 공약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여성가족부 폐지와 무고죄 강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죠.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성평등 담당 기구를 졸속으로 폐지하며, 혐오와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의 백래시는 대학 내 백래시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총여학생회, 성평등위원회, 그리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은 결국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소수자를 배제하겠다는 논리로 귀결됩니다. 대한민국은 임금 격차 등 여러 분야에서 성평등 지수가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차별받지 않으며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요. 성평등 담당 기구가 축소되거나 폐지가 되면, 학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일상에서도, 정책에서도 배제되기 쉽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학생자치 대표자들은 성평등 관련 사업에만 실제 사업을 실행하기 어려운 정도로 적은 예산을 책정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렇듯 대학 사회 내 백래시와 한국 사회의 백래시는 결국 서로 엉켜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성등평위원회 비난 익명 게시물 ⓒ필자 제공

대학 내 백래시를 연대로 이겨내기 위해

대학 내 백래시에 대항하는 일은, 혐오와 폭력에 자신을 스스로 내던지면서 운동을 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특히 차별과 배제가 용인된 대선을 겪고 난 뒤,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 혐오와 백래시가 더욱 심화할 것 같다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협박과 폭언에 시달려야 하는 여성 운동을, 우리는 어떻게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뿌리’가 졸속 폐지되고 난 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안에 수많은 연대 대자보들이 전해져왔고, 15개 단체와 10,871명이라는 많은 동료 시민들께서 연대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분께서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주셨고요. 대학생이든 대학생이 아니든, 대학 사회의 성평등에 관심을 가지고, 백래시에 분노하며 연대해주신 분들 덕분에 ‘뿌리’는 생존할 수 있었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안의 기구로 존재하던 ‘뿌리’는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등과 같이 대학 바깥의 영역에서도 활동하며, 중앙대뿐만 아니라 타 대학교의 성평등 기구 탄압 등의 백래시에도 관심을 두고 연대하며 운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대학 내 백래시는 이 사회의 백래시이고, 대학 사회에 대한 연대는 곧 대학 바깥의 사회를 향한 연대이기도 합니다. ‘뿌리’는 비록 졸속 폐지됐어도, 실제 ‘뿌리’를 구성하는 저와 제 친구들은 성평등한 대학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새로운 운동을 이어 나가고 있답니다. 지치고 힘들 때는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고, 서로 연대하며 함께 투쟁하면서요. ‘연대’란 투쟁의 전략이자 운동의 원동력이며 서로의 돌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학 안에서나 바깥에서 모든 존재들의 평등과 행복을 고민하는 우리, 계속 함께 연대하며 이겨냅시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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