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이후 진보의 길] 민주연합·촛불연합은 끝났다, 그 ‘다음’을 만들어가자

민중의소리 창간 22주년 기획 릴레이 기고⑧

편집자주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선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03.10. ⓒ공동취재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모두 합해도 100만 표가 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하기 전인 2002년 대선에서 거둔 결과에도 미치지 못하니 참담한 성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성취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10년 전 제18대 대선에서는 주요 진보정당 후보들이 민주대연합을 위해 모두 중도 사퇴했다. 이번에는 이때와 달리 노동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진보당 후보도 완주했다. 이번 대선이 2012년 대선보다도 더 강한 양강 구도를 보였음에도 투표용지에 진보정치 선택지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후 진보정치를 발전시킬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대선 이후 진보정치가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해 보인다.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모두 더불어민주당과 구별되는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천명했고(후보는 내지 않았지만 녹색당 역시 비슷한 입장이라 보인다), 이를 선거 국면에서 관철했다. 그렇다면 이후 과제는 이들 정당이 함께 할 방향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실은 대선 중에도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이 진보 후보 단일화를 시도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나, 어쨌든 시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진보정당들의 연대와 화합에 상당한 공감대가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 단일 후보를 만들었다면 대선 결과가 이렇지만은 않았으리라는 목소리에 진보정당들은 건설적인 답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이전보다 못한 진보정당 대선 성적

그러나 나는 이 글의 결론을 이런 화목한 방향으로만 끌고 갈 수는 없다. 대선이 끝난 지도 이미 두 달이 넘어간다. 그런데 이 두 달 동안 진보정당들이 보인 모습을 보면, 앞의 판단이 너무 낙관적임이 드러난다. 대선 후보 완주는 분명 독자적 진보정치의 결의를 평가할 중대한 근거가 되지만, 대선 이후 진보정당들은 여전히 그 결의를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검수완박’ 국면에서 그랬다.

곧 새 정부가 들어설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갑자기 새로운 검찰 ‘개혁’ 법안을 들이밀었다.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처음에는 입장을 제대로 잡았다. 자칫 서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니 기존 검찰 개혁 결과를 놓고 평가, 토론한 뒤에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개혁에 나서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검찰 개혁이라는 사안 자체만을 놓고 봐도 합리적인 입장일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이 견지해야 할 기본 방향 측면에서도 올바른 판단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치 독점은 제6공화국 정치제도들의 도움을 받아 강고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특정 정치제도에만 의존해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에도 양대 정당을 지지하는 두 블록(연합)이 구축돼 있으며, 이 블록은 어떤 사안이든 양대 정당의 세계관에 따라 해석하고 조직함으로써 양대 정당 독점 정치가 끈질기게 이어지도록 뒷받침한다. 이 두 블록이 일정하게 이완되고 새로운 블록이 등장하지 않는 한, 아무리 정치제도가 크게 바뀌어도 양대 정당 독점 구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가 지난 2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노동중심 사회 대전환’ 선포 선거운동 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진보당

그렇다면 진보정치의 독자성이란 다른 게 아니다. 새로운 블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대중들 사이에 기존 두 블록과는 다른 세계관으로 바라보고 움직이는 흐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기존 두 블록 중 어느 한 쪽에 의존하거나 편승하는 정치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간 ‘민주대연합’이라 불려온 노선이나 관행이 그것이다. 이것은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기부터 이어져온 이념, 전략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이후 20여 년간 진보정당들이 제한적 1인 2표제에 적응하면서 범민주당 지지 블록의 전략 투표에 의존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대선 결과를 보며 진보정당들이 최소한 이 점만은 이제 분명히 이해했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처음에는 검수완박 논란에 적절한 입장을 냈던 정의당이 원내 교섭 과정에서 곧바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정의당 안에서 ‘촛불 개혁 완수’를 위해 검찰 ‘개혁’ 법안 통과에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힘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입장을 들고 나온 이들에게는 ‘촛불연합’이 아직도 이 세상에 틀림없이 살아 있는 무엇이다.

물론 그랬던 때가 있었다. 촛불항쟁 직후에 촛불연합이란 블록이 존재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의한, 좌파부터 온건우파까지 포괄하는 대단히 예외적인 블록이 잠깐 등장했었다. 그러나 곧 사라졌다. 사라졌다기보다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해체시켰다. 이들은 현재 국민의힘 일부까지 포괄했던 이 블록을 현실정치에 반영시켜 개혁 동력으로 만들려는 진지한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하노이회담 실패와 조국 논란, 선거제도 개혁을 짓밟은 비례위성정당 사태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촛불연합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그런데 무슨 ‘촛불’ 개혁인가?

이미 사라져 없는 ‘촛불연합’을 내세운다면, 결국 더불어민주당 지지 블록에 그런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돌고 돌아 민주대연합이다. 그리하여 6석의 정의당 의원들은 검수완박 법안들에 대해 170여 석의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를 찾기 힘든 표결을 했다. ‘다당제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당이 시민들이 보기에 도무지 양대 정당과 구별할 길이 없는 정치 행위를 했다. 그럼 ‘다당제’는 왜 필요한 것인가?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당이 내놓은 입장 역시 정의당 내 ‘촛불연합’ 운운 흐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당 모두 이럴 거면 두 달 전 대선에서는 왜 그토록 욕을 먹으며 완주까지 했는가?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이런 세력들이 단순히 세를 합하고 통합을 모색해서는 진보정당운동이 발전할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독자적 진보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런 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모여 봐야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더불어민주당에게만 더 큰 ‘위성정당’을 대령해줄 뿐이다.

‘민주연합, 촛불연합’ 유령 대신, 아래로부터의 진보정당 연합 시도해야

그렇다고 지금 질서를 그대로 방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 당이 이제껏 걸어온 길을 그대로 계속 밟는다 하여 각 당 안에서 단절적 혁신이 이뤄질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전처럼 진보정당들이 각개약진하는 상황은 넘어서되 과거와 같은 단순 통합보다는 오히려 일상적인 교류와 논쟁, 토론과 연대를 장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대선과 같은 중대한 계기에 단일 후보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수준은 넘어설 수 있도록 일상적인 공동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여러 좌파정당들이 분립하여 경쟁하면서도 정당연합을 결성하여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경직된 정당법, 선거법 때문에 정당연합이 선거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힘들지만, 이런 문제는 차후 과제로 남겨두더라도 낮은 수준에서부터 정당연합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정당연합 건설을 목표로 하는 더 낮은 수준의 협의 기구라도 좋다.

부산지역 진보정당들이 11일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6.1 지방선거 후보 단일화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2.04.11. ⓒ뉴시스

중요한 것은 이런 시도가 기존 진보정당들의 단순 결집이 아니라 철저히 열린 실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각 당의 기존 중앙당이 모이기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류와 오류가 만난다고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각 당이 자기 당의 광역 단위들에 자율성을 주고 지역 사정에 맞게 창조적인 교류와 협력 실험을 펼치게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지방선거에 대응하며 몇몇 지역에서 이런 시도의 맹아가 등장하고 있다.

요즘 진보정당운동을 아래로부터 재구성할 경로로 지역정당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꼭 기존 진보정당들 바깥에서, 무(無)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기존 진보정당 지역조직들이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정당연합을 시도한다면, 이것 자체로 지역정당 실험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전국 수준에서 해야 할 일은 일종의 ‘창조적 파괴’다. 진보정당들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부터 공동 실천을 벌이는 가운데, 의식적으로 각 당 안에서, 당들 ‘사이’에서, 당들과 함께 하는 사회운동들에서 새로운 지도력이 성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차이를 모두 투명하게 드러내고,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을 점차 넓혀가야 한다. 그러면서 총선에 대응할 가장 초보적이면서도 유연한 공동 틀을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침이나 경로까지 이 글에서 논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강조해야 할 것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게 민주연합, 촛불연합의 유령 따위가 아니라 그 역사적 사망 ‘다음’의 새로운 대중연합임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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