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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회동아, 다음엔 위로가 될 소식 가져올게” 동생 묻으며 형이 한 다짐

고 양회동 지대장의 친형 양회선 씨 “동생이 건설노조 자랑스러워한 이유 절절히 알게 돼”

고 양회동 열사 건설노조 강원지부 제3지대장의 형 양회선 씨가 30일 서울 서대문구 한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8.30 ⓒ민중의소리

늦봄이 지나가고 초여름이 오기까지, 동생의 빈소에서 지낸 51일은 형에겐 슬픔뿐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별하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동생을 영원히 떠나보낸 뒤엔 더 큰 고통과 회한이 밀려왔다. 왜 진작 동생의 고민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동생을 이렇게 보내야 했던 걸까. 꼬리를 문 자책에 형은 아직도 잠을 설친다.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해 분신한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00일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양 지대장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경찰의 ‘건폭몰이’ 수사가 종료됐다. 양 지대장처럼 ‘정당한 노조 활동을 했을 뿐’인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송치됐다.

양 지대장의 형 양회선 씨는 그동안 차마 볼 수 없었던,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 29장을 인터뷰 하루 전에야 겨우 다 읽었다. 유달리 책임감 강하고, 나쁜 짓 한번 안 한 동생을 경찰은 “천하의 몹쓸 놈”으로 만들었다. 어떻게든 동생에게 혐의를 덧씌우기 위해 경찰이 폈던 주장들 속에서 동생이 느꼈을 비통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괴로움을 떨칠 수 없었다. 곧이어 떠올린 얼굴은 건설노조 조합원들. “죄 없는 수많은 건설노동자를 이렇게 탄압했겠구나,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었구나.” 회선 씨는 이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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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회선 씨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거주 중인 회선 씨는 경찰청 앞에서 열리는 양 지대장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그동안 동생의 죽음을 둘러싼 숱한 왜곡 보도로 언론에 마음을 열기 힘들었던 회선 씨는 이날 용기를 내고 그동안의 심정을 털어놨다.

동생 시신을 안고 속초로 이동하면서 형은 다짐했다
“너의 죽음, 헛되게 하지 않을게”


고 양회동 열사의 생전 활동 모습 ⓒ민주노총 건설노조

회선 씨에게 양 지대장은 각별한 동생이었다. 길을 가다 크고 작은 건설 현장을 지날 때면 철근공인 동생이 생각나 자주 전화를 하곤 했다. “몸 조심히, 다치지 말고 일해라.” 형은 쉰이 다 돼가는 동생의 안전을 늘 걱정됐다.

양 지대장은 2015년부터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임금을 떼이고 체불당하는 일이 잦았고, 여기에 문제를 느껴 2019년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회선 씨는 건설노조 가입 후에야 편안해 보였던 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본인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 초 좀 힘들어하는 게 느껴져서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됐죠. 그때가 동생에 대한 경찰 조사가 시작된 시점이라는 것을.”

양 지대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있기 이틀 전에도 통화를 했다. 가족에게 힘든 내색 한 번 보이지 않던 양 지대장은 이날도 평소와 같이 답했다. ‘지금 상황은 어쩔 수 없으니 담담히 받아들일게요’라고. 회선 씨가 동생과 한 마지막 통화였다.

“너무 멀쩡했어요, 너무.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었다고는 꿈에도 몰랐죠.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형으로서 너무 무관심했나, 더 파고들어서 어떤 상황인지 물었어야 했는데…. 이 생각이 자꾸 들면서 너무 힘들더라고요.”

양 지대장은 지난 5월 1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했다. 회선 씨는 이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회동이가 심정지래’라는 믿기 힘든 누나의 전화, 큰 충격으로 사실상 혼절 상태였던 제수씨(양 지대장의 배우자), ‘살 가능성은 1%밖에 안 된다’는 의사의 말조차 희망적으로 들렸던 상황까지. 양 지대장은 강릉 아산병원에서 화상전문병원인 서울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하루 만인 5월 2일 숨졌다.

“서울한강성심병원에서 동생의 시신을 안고 단둘이 속초로 돌아갔던 3시간동안 그런 생각을 했어요. 회동이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왜 이런 마음을 먹었을까.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지만 동생이 ‘자기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형한테 부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형이 자기를 너무 잘 아니까, 나한테 맡긴 게 아닌가 싶었던 거죠.”

장례는 강원 속초에서 시작됐다. 가족들은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길 바랐다. 그런데 동생이 야4당 대표에게 남긴 유서를 보게 된 이후 회선 씨는 마음을 굳혔다. “가족들을 설득해서라도 회동이의 뜻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양 지대장이 야당에 남긴 유서에는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중략)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무고한 국민이 희생돼야 하겠습니까”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회선 씨는 가족들을 장례식장에 다 불러 모아 동생의 유서를 읽어주며 설득했고, 가족들은 고심 끝에 건설노조에 이후 장례 절차를 위임하기로 했다. 

“우리가 동생의 죽음을 여기서 묻는다면, 동생에게 또 죄를 짓는 것인데 그래선 안 된다고 했죠. ‘동생의 억울한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저희가 사실 건설노조에 부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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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보도 나온 그날, 가장 버티기 힘들었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 양회동 씨 운구 행렬이 지난 5월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 안치실로 이동하고 있다. 2023.05.04 ⓒ민중의소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보낸 열흘가량은 눈물만 흘린 기억뿐이라고 회선 씨는 회상했다. 종교에 의지하고, 조문을 온 수많은 시민들에게 위로를 받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 먼저 아픔을 겪었던 또 다른 유가족들에게 힘을 받아 겨우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동생 일을 겪기 전에는 저렇게 힘든 일을 당했는데 왜 유가족이 원통함과 분노를 더 표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제가 겪어보니 정말 안 되더라고요. 그때 아이들이 용기를 줬습니다. ‘아빠, 이건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니까 숨지 말고 나와야 한다’고.” 그렇게 회선 씨는 동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나섰다.

그런데 5월 17일과 18일,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보도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보도와 월간조선의 ‘유서 대필’ 보도다. 회선 씨는 이 보도가 나온 날들을 “장례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가장 버티기 힘든 날”로 꼽았다.

“없는 것도 만들어서 왜곡하는 보도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날입니다. 보도 이후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제수씨와 쌍둥이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는데 제가 흔들리고 무너지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그날 이후 동생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는 활동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보도에는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님만 혼자 상주로 돼 있다고 거짓말을 하던데, (유가족인) 제가 빈소에 없다면 나중에 또 문제 삼겠구나, 그래서 장례식장에 계속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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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선 씨는 장례 기간 생업을 잠시 내려놓고 동두천에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매일 오가며 빈소를 지켰다. 먼 거리였지만 건설노조 조합원이 길동무가 되어줬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동생 옆에 계속 있어 주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살아생전 못 해줬던 게 있다면 이제라도 해주겠다’고 동생의 영정 앞에 회선 씨는 다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회선 씨의 깊은 상처에 또 재를 뿌렸다. 원 장관은 조선일보 보도에 동조하며 의혹을 더욱 확산시켰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서도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이 모든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던 회선 씨는 “유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짓밟을 수 있는지, 우리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라고 분개했다.

양 지대장의 분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내내 이런 식이었다. 더 이상 사과나 반성을 기대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양 지대장의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6월 17일부터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 5일장을 끝으로 양 지대장은 민족·민주 열사들이 묻힌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됐다. 회선 씨는 동생을 묻으며 이런 편지를 썼다.

“혼자서 고통받으며 힘들었을 너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남겨진 가족들은 형이 최선을 다해서 네가 걱정하지 않을 만큼 챙겨줄게. 나중에 만나면 네가 힘들어했을 말들 형이 다 들어줄게. 그때까지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줘. 많은 분들이 네가 바랐던, 꿈꿔왔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계신단다. 꼭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게. 그리고 내년 5월 1일에 올 때는 네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소식을 가지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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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건폭몰이 수사 벌였던 경찰,
CCTV 영상 유출자 찾는 수사는 하세월
“건설노조 수사했던 만큼만 해달라”


건설노조 강한수 수석부위원장과 여연심 변호사가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고 양회동 열사 관련 허위 보도한 조선일보 월간조선와 원희룡 장관 고발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NS 최훈민 기자와 기사를 승인한 조선일부 편집국 최재혁 사회부장, 월간조선 김광주 기자와 기사를 승인한 성명불상 데스크 담당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2023.05.22 ⓒ민중의소리

양 지대장이 분신한 뒤에도 경찰의 ‘건폭몰이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양 지대장의 장례가 끝나고 이틀 뒤에는 특별단속 기간을 50일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사이 원래부터 이례적인 수준이었던 특진 규모도 90명으로 더 늘어났다.

최근 종료된 특별단속 결과 총 4,829명이 송치됐고 148명이 구속됐다. 이중 양대노총 중에선 2,890명이 송치됐으며 58명이 구속됐다. 그러자 ‘건폭의 절반’이 양대노총이라는 왜곡 기사들이 쏟아졌다. 경찰은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구분한 통계는 발표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자체 통계 자료를 보면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중 대부분이 노조 활동을 하다 경찰에 의해 협박범으로, 갈취범으로 몰렸다. 경찰이 제2, 제3의 ‘양회동’을 계속 양산하고 있던 것이다.

회선 씨는 수사 결과에 대해 “역사적인 퇴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권력이 나서 노조 탄압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회선 씨는 “고용 요구와 전임비 등의 활동을 다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결국 헌법에서 보장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경찰은 수사의 공정성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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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회선 씨 등 양 지대장 유족과 건설노조가 고발한 사건의 수사 속도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조선일보 기사의 근거 자료로 쓰인 CCTV 영상을 유출한 이를 밝혀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에 낸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경찰의 수사는 진척이 없다. 건설노조 측이 직접 CCTV 영상 감정을 실시했고, 춘천지검 강릉지청 CCTV 영상과 같다는 결과까지 나온 상태다. 그런데도 경찰은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는 입장만 몇 주 째 반복하고 있다.

회선 씨 역시 경찰로부터 유의미한 수사 진행 상황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CCTV 영상 유출)도 엄연히 불법 아닙니까. 수사를 더 잘해달라는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건설노조를 조사한 것처럼 수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그게 형평성에 맞는 수사 아닙니까. 경찰이 진정 수사할 마음이 있다면, 빨리 CCTV 영상 유출자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건설노조 덕분에 버틴 시간,
“동생이 왜 건설노조 자랑스러워했는지 깨달아”


지난달 분신해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열사의 발인이 엄수된 6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행렬이 출발 노제 장소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3.06. 21 ⓒ민중의소리

오랜 시간 회선 씨는 “무너지지 말자, 지치지 말자”는 다짐을 반복했다. 동생을 향한, 동생과 같은 건설노조 조합원을 향한 ‘잘못된 수사’가 밝혀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르면서 회선 씨는 건설노조가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된 이유를 곱씹게 됐다. 그리고 다다른 결론은 이것이었다.

“동생이 처음 분신했을 때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죠. 그런데 제가 병원에 있으면서 알았어요. 이분들이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구나. (정부 주장처럼) 폭력배가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구나.

이 사람들이요, 일 끝나고 늦은 저녁에 집에 바로 가지도 않고 땀 냄새 베인 작업복을 입은 채 조문 먼저 하겠다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사기꾼이고 갈취범이라는 건가요. 50여일 동안 그분들의 삶을 보니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이더라고요.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마음을 다해 함께 해왔던 사람들이구나, 어려운 과정이 있어도 같이 헤쳐 나갔구나 절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동생이 왜 이렇게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자랑스러워했는지 알게 된 거죠.”

회선 씨의 이야기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온몸으로 지키려 했던 동생의 시민분향소를 경찰이 폭력적으로 철거했던 날로 이어졌다. 회선 씨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분향소가 철거되던 날, 마음이 찢겨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뛰어 들어가서 막고 싶었는데, 조합원들이 나서면 안 된다고 저를 에워싸서 말리더라고요. 추모 공간마저도 못 만들게 하는 상황이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생각할 때 그렇더라고요. 정의로운 사람들이 탄압을 많이 받잖아요. 불의에 저항할 줄 알고, 옳은 일에 목소리 내는 사람들, 세상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였단 걸 제가 여기 와서 깨달았어요. 이 사람들이 탄압받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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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선 씨에게 남은 사명은 동생의 죽음이 잊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회선 씨가 고심 끝에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아직도 회한과 슬픔이 많죠. 집에 혼자 있다 보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꾸 나와서 한 사람에게라도 동생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리다 보면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동생의 죽음을 잊히지 않게 하는 게 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도 간곡히 호소했다. “동생의 죽음이 그저 ‘건설노동자 한 명이 5월 1일에 분신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렇게만 기억되고 잊혀진다면, 이후에 또 이런 슬픔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 있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 양회동 열사 건설노조 강원지부 제3지대장의 형 양회선 씨가 30일 서울 서대문구 한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8.30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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