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형 태극기 게양대, 누가누가 더 높이 짓나?

오세훈 시장이 지난달 25일, 100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 설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

마치 누가누가 더 높게 짓나 대결이라도 하는 걸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발표한 100m 높이의 국기 게양대 설치 계획을 두고 하는 얘기다. 오 시장은 6.25전쟁 74주년을 맞아 참전용사를 초청한 간담회 자리에서 “광화문광장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높이로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높이’가 중요하다는 듯, 서울시는 당초 보도자료에는 빠져 있던 ‘대한민국 최고 높이’라는 문구를 추가한 자료를 수정 배포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예상한 소요 예산은 110억원가량이다. 서울시는 올해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매년 늘려온 예산을 13년 만에 깎았을 정도로 긴축재정에 나선 상황이라, 대형 국기 게양대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오세훈 시장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국민들의 일상 속에 늘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한 결과”라는 원론적인 명분만 앞세웠고, 김승원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은 ‘100m 높이의 상징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주변 건물보다 조금 높게, 잘 보일 수 있는 위치로 해서 100m로 했다. 설계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에 우뚝 솟아있는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보면 절로 애국심이 샘솟을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기대겠지만, 오히려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해당 계획이 발표된 지 일주일이 지난 이 시점에도 서울시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세금 낭비”, “과도한 국가주의”라는 민원이 쇄도하는 중이다.

이는 서울시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경북 경주시는 태극기의 소중함을 고취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신라 56왕을 상징하는 높이 56m의 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를 추진했다. 신라 56왕과 태극기가 어떤 상관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7억원은 국민의힘이 압도적 다수인 시의회에서 수월하게 통과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나서야 경주시는 구글 설문조사를 활용한 의견 수렴에 나섰고, 결국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며 태극기 게양대 높이는 30m로, 예산은 2억 3,759억원으로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인천 연수구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연수구에 보훈회관을 건립하며 높이 35m의 국기 게양대도 함께 설치하겠다며 2억원의 추경안까지 편성한 것이다. 보훈단체의 요청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구의회에서도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전국 보훈회관 중 최초로 설치되는 대형 태극기’라는 점을 적극 부각하며 추진되는 중이다.

시민 공감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최고 높이’, ‘전국 유일’과 같은 상징성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라보기에도 힘든 위치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오세훈 시장은 대형 태극기 게양대에 대해 ‘취지와 디자인, 높이에 오해가 있다’며 다음 주 직접 설명에 나선다고 하지만, 시민들이 요구하는 건 논란의 종결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북한 기정동에 설치된 높이 160m의 대형 인공기와 비교한다. 과연 이게 오 시장이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설치하려는 국가상징시설인 대형 태극기게양대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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