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무원계 차노을’ 29세 청년공무원이 쇼츠로 풀어낸 ‘웃픈’ 현실

‘노조는 노잼’ 편견 깨려는 공무원노조 김영운 청년부위원장 “부정적 인식 바꾸고파”


“업무폭탄 이제 제발 그만! 직장갑질 이제 제발 그만! 악성민원 이제 제발 그만! 얍얍얍! 존중받는 공무원!”

‘초등래퍼’ 차노을 군의 영상을 각색해 공무원의 고충을 전한 쇼츠 영상. 노조 조끼를 입은 채 익살스러운 동작을 선보이며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터”라고 랩을 하는 영상 속 주인공은 29세 청년공무원 김영운 씨다.

영상이 올라온 계정은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유튜브 공식 계정이다. 지난 3월부터 공무원노조 2030청년위원회위원장에 오른 김영운 청년부위원장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각종 밈을 활용해 공무원의 웃픈 현실을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쇼츠, shorts)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던 노동조합의 선전 영상과도 다른 분위기다. 보통 노조 영상이라고 하면, 기자회견이나 집회에서 나온 대표자들의 발언을 편집해 비장한 음악과 함께 전달하는 식이었다. 주요 요구 사항을 카드뉴스 형식으로 정리해 공유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정제되고 자세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젊은 조합원들에게는 흥미 있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 부위원장은 “보통 사람들 인식이 공무원 힘든 건 알지만, 여기에 노동조합이 끼어있으면 부정적으로 돌아서더라. 이런 인식이 안타까웠다”며 “내용은 좋은데 노동조합 이름을 달고 나가는 순간 관심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번에 도전적으로 바꿔보자고 했고, 노동조합 티를 싹 뺀 밈 계정으로 시작을 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노조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뭐? 탕후루를 사달라고?그럼 나의 밥값텅장 후루룩~' 쇼츠 영상. (이미지를 누르시면 쇼츠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공무원노조


시작은 인스타그램 밈 계정(@ball_miss_plan, 공무원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이었다. 김 부위원장의 설명대로 노조가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각종 밈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다 오는 6일 열리는 ‘공무원 임금인상 쟁취! 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집회를 홍보하는 내용을 담은 쇼츠 영상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일례로, ‘뭐? 탕후루를 사달라고? 그럼 나의 밥값 텅장 후루룩~’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마라탕후루 챌린지’를 공무원의 저임금 문제와 접목했다. 한 끼 6,360원이 고작인 월 정액 급식비로는 후배에게 탕후루를 사줬다간 ‘텅장’이 된다는 내용이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밈을 활용한 영상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공무원 기본급 인상 요구를 재치있게 담아냈다.

이러한 영상은 공무원노조 계정에 올라온 다른 영상보다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이다. 핵심 내용만 짧게 담은 영상이지만 “이 집 투쟁 재밌게 잘하네”, “인상된 기본급의 맛을 느끼고 싶다”는 등 공무원노조 요구에 공감하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이러한 반응에 대해 “노조에서도 젊어지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평가도 있고, 청년위원장으로서 현장에 나가 조합원을 만나면 ‘유튜브에서 본 사람인데’라며 알아보는 조합원도 있다.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돼 (조합원들과) 대화하기에도 편해지는 장점도 있다”라며 기뻐했다.

“떠날 사람 다 떠났다”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악성민원·저임금에 흔들리는 청년 공무원들

김영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청년위원장이 2일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02 ⓒ민중의소리


김 부위원장은 2017년 대학교 졸업 후 경북 청송에서 행정직으로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의욕도, 열정도 가득했던 22살의 나이었다. “누구나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 주민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거든요. 저도 주민들 얼굴이나 이름을 잘 기억해 두고, 어떤 농사를 짓는지 파악해서 지원 사업 같은 게 있으면 신청하시라고 먼저 안내할 정도였어요.”

공적 사명감으로 중무장했던 마음은 악성민원을 만나면서 너덜너덜해졌다. 짐도 제대로 풀지 못했을 정도로 짧은 기간 여러 부서를 옮겨가며 수많은 업무를 담당했던 그에게 민원이 아닌 업무는 없었다. 최근 공무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상황에 다다라서야 악성민원의 실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공무원들이 악성민원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있다. 김 부위원장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한번은 민원인에게 서류를 붙여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가 ‘지X발광한다’는 욕을 들었어요. 이유를 물으니 ‘너희들 이런거 하라고 앉아 있는 거 아니냐, 이거야말로 지X’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친절하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상처를 받았죠. (민원인은) 나를 돈 주고 일 시키는 기계로 생각하는구나 싶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한 달 병가를 쓰고 쉬어야 했습니다. 당장 부딪히는 민원인들만 없으면 괜찮아지겠구나 싶어서 시설관리 부서로도 가봤는데 거기도 다 민원이더라고요.” 김 부위원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 2022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쳥년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이 8일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1% 임금인상. 인력감축, 이러다 다 죽어. 청년 공무원 노동자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2023년 임금 7% 인상 인력감축 중단 공공행정 인력확충을 촉구하고 있다. 2022.08.08 ⓒ민중의소리

열악한 처우는 ‘기본값’이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대와 달랐던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부위원장은 주저 없이 “적은 월급”을 꼽았다. 공무원이 된 첫 해 김 부위원장이 받은 실수령액은 170여만원.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현재 9급 공무원(1호봉)의 기본급은 187만원으로, 직급보조비(17만5천원)와 정액급식비(14만원), 정근수당 가산금(3만원)을 더해야만 222만원을 받는다. 올해 최저임금(206만원)보다 16만원 많은 수준이다. 김 부위원장은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 게 공무원이 되고 3~4년이 지나고도 작은 동네 회사에 갓 취업한 친구들보다도 적게 받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현타’가 왔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하고 싶어 했던 공무원이었는데, 저축도 할 수 없는 정도였다”고 한탄했다.

이러다 보니 저연차 공무원들은 빠른 속도로 공직사회를 떠나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공무원 퇴직자 중 재직 기간이 5년 미만인 퇴직자의 비율은 65.2%에 달했다. 2023년 한국행정학회의 공직생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공무원 중에서는 59.2%가, 30대 공무원 중에서는 54.3%가 “이직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70% 이상이 ‘낮은 보수’라고 답했다.

“제 동기들 중에서 이미 떠날 사람은 다 떠났다고 보면 돼요. 요즘에는 근무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도 있어요. 청년 공무원의 퇴직률이 높은 이유,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하락하는 이유가 모두 낮은 임금이라고 지목하잖아요. 그럼 이 문제부터 건드려야죠. 정부 지출 중에서 공무원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OECD 평균이 10.7%인데 우리는 6.8%밖에 안 돼요. 2019년 8.3%에서 6%대까지 계속 떨어지는 거에요. 나라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건데 정부에서는 돈이 없어서 못 준다고만 하는 거죠.”

공무원노조가 기본급 ‘31만 3천원’ 인상 요구하는 이유
“저임금 문제, 청년 공무원들이 직접 나서야”


김영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청년위원장이 2일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02 ⓒ민중의소리


오는 6일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여는 총궐기 대회의 주된 의제 중 하나도 기본급 인상이다. 공무원노조는 이번 공무원보수위원회에서 기본급 31만 3천원 ‘정액’ 인상을 요구했다. 이전처럼 비율로 인상할 경우, 고위직 공무원은 더 크게 인상되고 하위직 공무원은 적게 인상돼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이다. 31만 3천원은 지난 3년간 실질소득 감소분과 내년도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감안해 계산한 금액이다. 기본급 인상 외에도 현재 한 끼 6,300원에 불과한 식비를 1만원(월 22만원)으로 현실화하고, 6급 이하 직급보조비 3만 5천원 인상, 저연차 정근수당 인상 등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 임금 인상의 효과는 공무원의 삶의 질 개선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게 김 부위원장의 생각이다. “금전적인 게 나아지면, 물론 저희가 먹고 사는 생활도 좋아지겠죠. 그런데 더 넓게 보면, 자긍심이 커질 것 같아요. 어쨌든 공무원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자꾸 능력있는 사람들,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나가버리잖아요. 더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어야 제공하는 행정 서비스 질도 높아지고, 그러면 국민들도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요?”

오는 6일 열리는 총궐기대회는 공무원노조 조합원 1만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위원장은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청년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저희는 집회 세대가 아니잖아요, 무엇인가를 다 같이 하는 경험을 좋든 싫든 느껴보지 못하고 계속 경쟁하는 사회에 있었으니까요. 저도 처음 집회에 갔을 때 깜짝 놀랐거든요. 같은 목소리를 내는 기쁨을 한번 느끼고 나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게 있더라고요. 결국 저임금 문제는 간부들이 아닌 청년 공무원 우리의 일인데, 우리가 목소리 내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간부들이 아무리 ‘청년 공무원 월급이 낮다’고 얘기해도 ‘너네는 많이 받지 않느냐’는 시선이 있으니까요. 이 기회에 청년 공무원들이 많이 나와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것을 한번 느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김영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 청년위원장이 2일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02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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