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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학 녹취록에 이재명보다 더 자주 나온 ‘50억 클럽’, 검찰 수사는 어디로

대장동 일당의 ‘검찰 수사 무마’ 정황도 담겼지만, 검찰 수사는 오리무중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 속 등장한 50억 클럽 ⓒ뉴스타파 제공


김만배 "여기 50개 뭉쳐져 있는 거 안 하면 사고 터져."
유동규 "반드시 해야죠. 안 하면 문제 되고."

2020년 10월 30일, 대장동 사업 이익 배분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유동규 전 성남도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 씨, 정영학 회계사의 대화 중 나온 대목이다. 대장동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출했던 공통비를 어디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하던 중, 이 '50개'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잘 알려진 청탁 리스트다.

대체 50억 클럽에 속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했길래 대장동 일당 사이에서 반드시 대가를 챙겨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걸까.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의 단초가 된 것으로 알려진 '정영학 녹취록'에는 이 의문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볼 수 있다. 1300페이지가 넘는 녹취록에는 현재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름보다는 50억 클럽에 대한 얘기가 더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이자, 대장동 일당의 집중적인 관리 대상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50억 클럽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들 대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멈춰 있다.

녹취록에는 50억 클럽 여러 번 등장하는데
곽상도 제외 나머지 멤버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고 아들을 통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곽상도 전 의원이 지난해 11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관련 1심 속행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2.11.30 ⓒ뉴스1


지난 12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 씨가 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는 의미로 '약속그룹'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50억 클럽도 바로 이 약속그룹의 일환이다. 정 회계사는 약속그룹에 대해 메모하며 ▲권순일(대법관) 50억 ▲곽상도(국회의원) 50억 ▲박영수(특검, 고검장) 50억 ▲최재경(지검장) 50억 ▲김수남(검찰총장) 50억 ▲홍성근(머니투데이 회장) 50억이라고 적었다.

50억 클럽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건, 지난 2021년 9월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의 퇴직금이 알려지면서다. 대장동 의혹의 중심이자, 김만배 씨가 대주주로 있는 화천대유의 1호 직원이었던 곽병채 씨가 6년을 근무한 뒤 받은 퇴직금이 5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당시 화천대유 측과 곽병채 씨는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도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지만, 정작 산재 신청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50억원은 곽병채 씨가 아닌 아버지인 곽 전 의원에게 주는 뇌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곽 전 의원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녹취록에는 오히려 곽 전 의원이 대장동 일당에게 서둘러 돈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가 나온다. 2020년 10월 30일, 김만배 씨는 정 회계사와 유 전 본부장에게 곽병채 씨와의 대화 내용을 언급한다. 당시 김 씨는 '아버지한테 주기로 하는 돈 어떻게 하실 건지'라고 묻던 곽 씨에게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유 전 본부장은 "곽 선생님(곽 전 의원 지칭 추정)은 지금 현역이잖아요, 정치자금법에 걸리면 문제가 될 텐데, 그게 제일 문제네. 아들한테 주는 수밖에 없어요"라고 호응했다.

검찰은 곽 전 의원이 2015년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컨소시엄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이에 대한 도움을 주고 50억원을 받은 걸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곽 전 의원을 재판에 넘겼다. 곽 전 의원의 1심 선고는 2월 8일로 예정돼 있다.

문제는 1심 선고만 남겨둔 곽 전 의원의 경우와 달리 아직 기소조차 되지 않은 나머지 50억 클럽 멤버들이다. 곽 전 의원의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후, 곧바로 50억 클럽 명단이 알음알음 알려졌고 그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그 실명도 공개됐지만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한두 차례 소환 및 서면 조사한 것 외에는 진척이 없다. 50억 클럽 대부분이 고위직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은 우리가 붙잡고 있다"는 대장동 일당
검찰 수사 무마 정황까지 담겨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한 김수남 전 검찰총장의 수사 무마 정황 ⓒ뉴스타파


녹취록에는 50억 클럽 멤버들이 대장동 일당에 도움을 준 것으로 엿보이는 대화 내용들이 다수 등장한다. 가령, “화천대유 만들 때 돈 (5억원) 들어온 것도 박영수 고검장 통해 들어온 돈이다. 그건 해줘야 한다"는 김만배 씨 발언과 "(박영수) 고검장이 안 계셨으면 힘들었겠다"는 정영학 회계사 발언 등을 보면 박 전 특검이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박 전 특검의 경우, 곽상도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딸을 통해 50억원을 전달하면 된다는 김 씨의 발언이 여러 번 녹취록에 등장한다. 박 전 특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 그의 딸은 화천대유에서 일한 바 있다. 녹취록에 나온 대화 내용 외에도 박 전 특검의 딸은 화천대유에 입사해 대출금 명목으로 11억원을 받았고, 대장동 미분양 아파트를 싼값으로 분양받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권순일 전 대법관도 박 전 특검과 마찬가지로 화천대유와 고문 계약을 맺었다. 권 전 대법관은 대법관 퇴임 직후 월급 1500만원을 받고 화천대유 고문 변호사로 1년여간 일하다,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2021년 9월 고문 자리를 내놓았다. 대장동 일당은 로비자금을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로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해 고문료 명목으로 돈을 주면 되지 않겠냐는 얘기를 종종 나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일했던 최재경 전 지검장의 경우, 김 씨가 "재경이 형"이라고 부르며 자주 친분을 과시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오랜 법조 기자 경력을 가진 김만배 씨가 법조계 고위 인맥을 활용해 대장동 일당 등이 연루된 검찰 수사를 무마한 직접적인 정황도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검찰총장까지 역임했던 김수남 당시 수원지검장이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수사를 봐줬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장동 사업을 위해서는 성남시의회 의장이었던 최 전 의장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는데, 최 전 의장의 뇌물 혐의에 대해 진행 중이었던 검찰 내사를 김 씨가 모종의 영향력을 끼쳐 무마했다는 것이다.

2012년 8월 18일, 대장동 일당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는 김 씨와 대화한 내용을 정 회계사에게 전한다. 남 변호사는 "김수남 검사장(당시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어디서 무슨 얘기까지 들었는지 자세하게 얘기는 안 하는데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쭉 했다(더라)"며 "그래서 만배 형이 '형(김수남 전 지검장 지칭), 저 최 회장님(최윤길 전 의장 지칭)하고 내가 이 사업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내 동생들 하는 일 봐주고 있어서 형도 도와줘야 된다'고 하니, (김수남 전 지검장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고 그러더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 당시 최윤길 전 의장에 대한 내사 및 수사 관련 소식은 따로 알려진 바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남 변호사는 이후 "(김만배 씨가) 김수남 검사장하고 정말 친하대요", "저희가 검찰은 붙잡고 있어서"라는 말도 덧붙인다. 정 회계사가 녹취록과 함께 검찰에 제출한 메모를 보면, 대장동 사업 초기 김만배 씨를 '검찰 수사 무마 로비스트'라고 소개하고, 김수남 전 검사장으로 향하는 화살표에는 '2012년 8월 최윤길 의장 건'이라는 설명도 적어놨다.

"허언"이었다며 부인하는 김만배,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하지만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는 검찰


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50억 클럽 멤버로 묶이진 않았지만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으로 근무했던 윤갑근 전 지청장도 대장동 일당이 연루된 검찰 수사를 무마한 것으로 보이는 대화도 확인된다. 윤갑근 전 지청장은 2013년 4월까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맡았는데, 김 씨가 직전 성남지청장이었던 윤 전 지청장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결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오간다.

2012년 8월 18일, 남 변호사는 김 씨와의 대화 내용을 정 회계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윤갑근 차장이 검사장인데, 검사장이 직접 계장(성남지청 계장)한테 전화하는 예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차장님도 (계장에) 전화를 하셨다고, 얼마나 (김만배 씨가 윤갑근 전 지청장을) 달달 볶았으면 전화했겠어요. 그래서 그것도 그렇게 정리를 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 마무리해서 무혐의로 종결하겠다고 저한테 대놓고 얘기했으니까, 다시 안 부르겠다고"라고 말했다.

즉, 김 씨가 윤갑근 전 지청장에게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했고, 윤 전 지청장이 압력을 행사해 무혐의 종결로 처분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남 변호사는 "보니까 만배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박근혜 청와대' 정보를 입수해, 수사 등에 미리 대비했던 흔적도 보인다. 2014년 7월 28일,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 씨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과 만나 대화한 내용이라고 전하며, 청와대가 대장동 사업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김 씨가 "다 스톱"하라고 했다며, 남 변호사도 "휴대폰을 다 부수고, 아무도 만나지 말자"고 얘기했다. 정 회계사는 "저도 웬만하면 자료를 다 없애야 겠다"고 말했다.

현재 50억 클럽으로 묶인 당사자들은 자신의 연관성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50억 클럽 인사들과 직접 접촉한 김만배 씨도 곽 전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회적으로 권력 있는 분들을 팔아서 얘기한 측면이 있어 죄송하다"며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직원들 인센티브를 부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허언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허언인지, 실체가 있는 혐의인지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면 그만이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은 제한된 기간의, 제한된 대화 내용이 담긴 만큼 녹취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50억 클럽 멤버들에 대한 청탁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 수사는 2년 가까이 미적대기만 한다. 검찰과 기자단의 티타임 자리에서는 50억 클럽 수사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중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한꺼번에 수사할 수는 없다.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제기된 의혹 전반에 대해선 수사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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