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산업 밑바닥 쥐어짜기, 재벌 위한 안전운임제 폐기인가

[화물연대 파업 자세히 보기 마지막] 재벌 대기업의 물류 시장 교란, 수익은 총수 일가 주머니로…대신 총대 맨 윤석열 정부

1990년대 말, 부산항에서 20피트 냉동 컨테이너 두 동을 싣고 서울에 가면 130만원쯤 받았다. 벌이가 좋다는 소문이 나고, 화물차가 늘면서 운송료는 점점 떨어졌다. 15년 뒤인 2016년에는 60~7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수입은 반토막 났다. “퍼뜩 싣고 왔다 다시 가 가, 한 바리라도 더 해야” 겨우 입에 풀칠 할 수 있었다. 한 번 출근하면 보름 뒤에야 집에 들어가는 화물 노동자 모습이 뉴스 화면을 장식했다. 숙식을 화물차 뒷켠에서 해결하고 고속도로 휴게실 샤워장으로 향하는 화물 노동자가 시민들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화물연대가 매년 파업을 벌였던 것이 그즈음이다. 화물 노동자 스스로가 ‘이대로 가다간 큰 일 나겠다’ 우려했고, ‘안전을 위해 물류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싹텄다. 2020년, 수출입 컨테이너 운송에 안전운임제가 적용됐다. 부산 신항서 서울까지, 지금은 110만원 정도 받는다.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화물 노동자가 컨테이너를 점검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벌이가 좋아졌으니 컨테이너 운송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줄였을까. 그래서 고속도로는 안전해졌을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리는 누구나 똑같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화물 노동자가 왜 없을까. 안전운임제 대상인 특수차 사망자가 소폭이나마 증가한 이유다. 여기에 미완의 제도, 기대 보다 낮은 준수율이 작용했다. 안전운임제는 고작 3년 실시됐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장기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반대로, 안전운임제 폐지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로의 회귀는 물류산업 가장 밑바닥, 화물 운송 노동자를 쥐어짜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호등 입찰을 아십니까?

지난 2017년, LG그룹 물류 자회사 판토스(지금의 LX판토스)가 저가 운송계약 체결을 강요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른바 신호등 입찰이다. 당시 ‘YTN’ 보도에 따르면 판토스는 자신이 원하는 운송료보다 낮으면 초록색을, 비슷하면 빨간색, 높으면 검은색으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운송료 저가 입찰을 유도했다. 운송계약은 물량과 기간 등 구체적인 내용을 표기해야 하지만, 달랑 총 운임만 적어 둔 엉터리 계약서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자 간 비밀스러운 입찰 정보가 새어 나오는 일은 드물다. 업계에선 “오죽했으면 저런 보도가 나왔겠냐”는 반응이었다.

상대는 LG그룹 물류 전체를 틀어쥔 자회사였다. 일각에선, 해상 수출입 물동량의 15%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했다. 애초부터 운송사가 거부하기 힘든 구조다.

저가 입찰 유도가 LG그룹만의 일탈이었을까. 울며 겨자 먹기, 저가 입찰이 운송산업에서 만연한 이유다. 저가 입찰로 물량을 확보한 운송사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수익을 줄이거나, 전가하거나. 2000년대 우후죽순 늘어난 운송사, 화물 노동자는 그렇게 ‘시장의 원리’대로 차근차근 쥐어 짜였다.

안전운임제가 확대됐다면?


지난 2006년, 디케이에스앤드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대주주에는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회장의 부인, 장남, 차남, 장 회장의 동생 장세욱 부회장의 장남, 차남이 쪼르륵 이름을 올렸다. 회사는 특수관계기업인 동국제강 물류를 맡았다. 설립 직후부터 매출은 수직상승했다. 2006년 매출액 23억원에 불과했던 디케이에스앤드는 불과 5년 만에 4,247% 성장하며 매출액 1천억원을 달성했다. 당시 특수관계자와 거래 비율은 80%가 넘었다. 이후 디케이에스앤드는 애초 동국제강그룹 물류를 담당했던 인터지스에 합병됐고, 동국제강그룹 총수 일가는 나란히 상장사 인터지스 주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룹 내 물류를 몰아줘 덩치를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매우 고전적 수법이다.

인터지스는 지금도 동국제강 그룹 내 물류 대부분을 처리한다. LG그룹 물류를 LX판토스가 담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터지스가 동국제강 철강 운송으로 올리는 매출은 전체의 34.5%, 2,030억원 규모다.

인터지스와 위탁운송계약을 맺은 화물연대 조합원 백모(60)씨는 이번 파업에 동참했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확대 6대 품목 중에는 백씨가 인터지스로부터 받아 운송하는 철강이 있었다. 그는 “차라리 아르바이트가 낫다. 안전운임제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화물연대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면, 백씨 살림살이는 나아졌을 것이다. 대신 동국제강 총수 일가가 주주로 등록된 인터지스의 수익은 낮아진다. 안전운임을 제대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철소 선재창고에서 화물차량이 선재를 싣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제공 : 철강업계

물류 회사로 승계자금을 마련하는 수법의 원조는 현대자동차그룹이다. 2001년 설립된 현대글로비스다. 글로비스 최대 주주는 정의선 회장이고 그의 주식은 향후 승계에서 가장 든든한 자금줄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완성차 물류에 끼어들어 운송 단계를 늘렸다. 기아자동차 운송은 원래 직계약 구조였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F운송사는 1987년부터 기아차와 운송 계약을 맺어왔다. 기아차는 1999년 현대차에 매각됐고, 이후 글로비스가 끼어들었다.

단계가 늘었다. ‘기아-F운송사’ 거래구조는 ‘기아-글로비스-F운송회사’로 바뀌었다. 단계가 늘면 수수료가 붙는다. 김종열 화물연대 광주지역본부 카캐리어지회장은 “기아가 글로비스에 지급하는 운송 단가에서 글로비스와 운송사가 각각 10% 수준의 수수료를 떼가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비스가 역할 없이 중간에서 통행세를 착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국제강, 현대기아차그룹과 LG는 물론 삼성, 포스코 등 ‘수출 강국 대한민국’을 이끄는 재벌 대기업을 모아 10대 화주라 부른다. 공통점은 자체 물류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삼성SDS·로지텍, 롯데는 롯데로지스틱스, 포스코는 포스코플로우, 효성은 효성트랜스월드 등등등. 글로벌 규모의 대형 화주가, 중간 단계인 이른바 ‘2자 물류 회사’를 끼고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이들 물류회사 주주명부엔 대부분 총수 일가 이름이 올라있다.

총대 맨 정부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재벌 대기업 물류팀장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무역협회에서 했고, 협회 물류서비스 본부장을 중심으로 ‘파업비상지원체계’가 구축됐다. 지금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재벌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무역협회와 ‘경제 6단체’가 재벌의 이해를 대변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고 경제단체보다 정부가 더 앞장서는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파업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지난여름 수도권 홍수피해,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나 가동하던 중대본이었다. 2004년 중대본 체계 수립 이후, 노동자 파업에 중대본을 가동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핵심기반 마비는 사회적 재난”이라 우격다짐했고, 나중엔 “북핵 위협에 버금간다”는 소리를 늘어놨다. 사문화된, 위헌 논란이 있는 법 조항을 끄집어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국가 경제와 법·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정부는 주장했다. 현장에서 만난 현실은 달랐다. 안전운임제 폐지는 물류산업 가장 밑바닥 운송 노동자 주머니를 쥐어짜 재벌 대기업 화주 운송료를 절약해주는 꼴로 비쳤다. 여기에 사회적 비용이 추가된다. 고단한 대형 화물차의 아찔한 교통사고 위험 증가는 국민이 치러야 할 가장 값비싼 운송료가 될 전망이다.

서울역 대합실 TV에 윤석열 대통령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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