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단독] 급조한 신분증, 직인 없는 공문…업무개시명령 혼돈의 현장

[화물연대 파업 자세히 보기②] 사업 이해도 낮은 검사관, 허술한 공무원증…“업무개시명령서를 누구에게 보내야 할까요” 되묻기도

국토부 직원이 제시한 검사공무원증. ⓒ민중의소리

지난 30일 오후 2시, 충북 제천의 A운송사 회의실에 국토교통부 검사관, 제천시청 교통과 공무원, 사복 경찰관이 들어왔다. 업무개시명령서 전달과 현장검사를 위한 방문이다.

국토부 검사관 손에는 한눈에 봐도 조악한 ‘검사공무원증’이 들려 있었다. 주민등록증보다 약간 큰 흰색 종잇조각에 소속, 성명, 유효기간이 인쇄됐다. 장관 직인도 사무용 컬러 프린터로 인쇄됐다. 사진은 증명사진이 아니었다. 마이크를 들고 브이 자를 그리며 미소 띤 공무원 상반신 모습이 증명사진 자리를 대신했다. 종이를 감싸고 있는 ‘투명 코팅지’는 20년 전 사라진 주민등록증보다 조악했다.

공신력 있는 증서로 보기 힘들었다. 중학생이 장난삼아 공무원증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일까. 이 조악한 ‘검사공무원증’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는지 대변하는 것 같았다. 

검사공무원 맞은편에 앉은 A운송사 김모 이사 손에는 ‘업무협조’라고 적힌 문서가 들려 있었다. 문서 하단엔 ‘국토교통부 중앙수송대책본부’라고 적혔다. 이 문서도 국토교통부가 보낸 공문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직인이 없었다. 문서번호가 없었고 담당 공무원 이름도, 전화번호도, 국토교통부 로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 대통령실이 MBC에 보도 경위를 설명하라고 보냈다는 정체불명의 공문을 연상케 했다. 이사의 보고를 받고 회의실에 달려온 이모 대표는 “당신들, 공무원이 맞기는 한 거냐”고 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국토부 공무원은 머쓱해하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공무원증을 꺼내 자기 목에 걸었다.

국토교통부가 A사에 메일로 보낸 공문. ⓒ민중의소리

“뭘 좀 아는 사람을 보내야 조사를 받지…”


A사는 인근 시멘트 공장이 발주한 출하 주문을 받아 이를 운송할 기사에 배차하는 업체다. 국토부 검사관은 A사가 파업 전인 11월 첫째, 둘째주 하루 몇대 분량을 배차했는지 조사했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의 실질은 ‘A사는 파업 이전 수준으로 배차를 실시하라’는 명령이다.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준수 여부를 확인하려면 A사가 평시 배차한 물량을 확인해 처벌 기준을 세우고, 개시명령서 수령 이후 기준에 준하게 배차했는지 다시 조사해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전혀 간단치 않았다. 현실은 복잡했다. A사가 배차한 물량을 확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A사는 일평균 25대가량을 배차하는데, 이중 A사와 위탁운송계약서를 작성한, 즉 A사와 전속으로 계약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사는 8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7명은 화물을 직접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주선 받는 개념이 된다. 화물을 주선 받아 운송한 기사에게는 A사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업무개시명령 대상 밖이다.

50대 중반의 A사 이사는 국토부 검사관에게 이런 사업 방식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고, 국토부 검사관 역시 이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진땀을 뺐다. 그는 교통관련 부서원이 아니었다. 현장조사에 파견된 감사관실 소속이었다. 검사관은 설명 중간중간 A4 용지 50여장 쯤 인쇄된 ‘대외비_현장조사 매뉴얼’을 여러 차례 뒤적였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회의실에서 나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김모 이사는 “뭘 아는 사람을 보내야 조사를 받든가 말든가 하지”라며 혀를 찼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국토부 검사관은 “주선사업자 역할을 한 17대는 제외하고 8대에 대해서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검사관과 함께 온 제천시 공무원은 현장조사서에 일간 배차 물량 25라고 적힌 표에 괄호를 열고 (8/17)이라고 추가했다. 

문제는 또 발생했다. 김모 이사가 말했다. “8명 중에 박성진씨(가명)는 엊그젠가 협심증 증세가 있어서 입원했어요. 아마 한 달 넘게 병원에 있을 것 같던데, 어쩌나요?” 검사관은 볼펜을 따닥따닥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7으로 해야죠”라고 했다. 제천시 공무원은 화이트를 꺼내 (8/17)을 지우고 (7/1/17)이라고 다시 썼다. 이사가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아까 들어오면서 봤던 귤박스 트럭 있죠? 윤건우(가명) 씨가 화물연대 파업으로 일을 못 해서, 다른 화물 트레일러를 달고 일하고 있는데, 파업 끝나고 바로 시멘트를 시작할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겠네요”라고 또 말했다. 제천시 공무원은 또 한번 수정액으로 표를 바꿨다.

과연 이런 조사가 의미 있을까. 김모 이사가 말한 박성진씨는 협심증으로 입원한 것이 사실일까. 나머지 6명 중 3명이 음식점에 갔다가 동시에 식중독에 걸려 배차받지 못하면, 업무개시명령 위반으로 볼 것인가. 3명이 식중독에 걸렸다는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A사는 처벌을 면하게 될까. 국토부는 증빙을 검증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국가 행정력이 이런 일에 이렇게 낭비되어도 좋은 것인가. 검사관과 이사의 대화를 들으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난 30일 오후, A사 회의실에서 국토교통부 검사공무원(가운데), 제천시청 공무원(왼쪽), 사복 경찰관(오른쪽)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그럼, 누구에게 명령서를 보내야 하나요” 되물은 검사관



A사와 계약을 맺은 8명의 기사에게 업무개시명령서를 송달하기 위해 집주소를 확인해야 했다. 김 이사는 “개인 정보를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김 이사가 검사관에게 주소를 전달하는 순간, 업무개시명령서가 발송된다. 15년 이상 거래해온 기사들과 관계는 악화할 게 뻔했다. 최근, 발주 물량은 늘어났는데 배차받을 기사가 없어 애먹어왔다. 기사는 운송사와 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다. 제천·단양 시멘트 운송사업자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다. 김 이사는 “이제 기사가 갑”이라고 말했고 “우리 손해는 정부가 보상할 거냐”고 따졌다.

국토부 검사관은 “정부가 요구하면 운송사업자는 정보 제출 의무가 있다. 거부하면 과태료 50만원이 부과된다”고 으름장을 놨다. 고민하던 김 이사는 “여기서 차례로 통화를 하자. 그래서 동의하면 주소를 주겠다”고 했다. 그도 명분이 필요했다. 기사들에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과태료를 물 순 없지 않냐”라고 해명할 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검사관은 명단을 꺼내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8명 중 통화가 된 사람은 2명뿐, 그중 1명은 “왜 내 주소를 알려고 하느냐”며 전화를 끊었고, 나머지 한명은 순순히 주소를 불러줬다. 검사관의 협박 반, 설득 반 대화가 이어졌고 결국 김 이사는 통화가 안 된 6명 기사의 주소를 동의 없이 넘겨줬다.

7명 중, 한 명이 또 말썽이었다. 차주와 실제 운행자 이름이 달랐다. 김 이사는 “김성덕(가명)씨가 신용불량자라 그래요. 신불자는 개인사업자를 낼 수 없어서, 어머니 이름으로 등록한 거죠”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실제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받아야 할 사람은 김성덕씨인가, 아니면 그의 모친인가. 김 이사는 “아 그리고 그분 어머니 치매라 명령서가 뭔지도 모르실 텐데…”라고 했다. 국토부 검사관은 “그럼 업무개시명령서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김 이사는 “업무 개시가 목적이면 김성덕씨 한테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고, 검사관은 “그게 맞겠죠?”라고 했다.

5시간 넘게 걸린 현장조사가 모두 끝나고, A사 회의 테이블 위에는 모두 7장의 업무개시명령서가 놓였다. A사에 전달을 부탁하고, 국토부는 확보한 주소로 등기우편을 또 보낸다.  

국토부는 지난 30일 밤, 업무개시명령 관련 해명자료를 내놨다. 자료에는 “적법한 명령 발동을 위해 현장조사를 통해, 운송사업자의 배차지시 여부, 운수종사자의 운행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법한 명령 발동의 근거가 현장조사라는 뜻인데, 현장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니 과연 공신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A사 소속 시멘트 배송 기사들에게 발부된 업무개시명령서 7장. ⓒ민중의소리








기사 원소스 보기

  • 등록된 원소스가 없습니다.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