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모든 사람이 ‘진짜 사장’과 마주앉는 확실한 방법

[2022 더 왼쪽으로] 진짜 사장 나와라 ③

편집자 주 ㅣ 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네번째 기획으로 ‘진짜 사장 나와라’ 시리즈를 3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노동자지만 노동자 아닌 이들의 노동권 되찾기
“우리랑 계약한 건 아니잖아?” 책임회피하는 ‘진짜 사장’들
일하는 모든 사람이 ‘진짜 사장’과 마주앉는 확실한 방법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비정규직 철폐’는 노동자들의 오랜 구호가 됐다. 그런데 이제는 ‘비정규직 철폐’만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고용형태는 더 복잡해졌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차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청이냐 하청이냐, 모회사냐 자회사냐. 노동자들은 그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처우를 받는다. 일자리마저 불평등한 사회다.

게다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특수고용직(근로계약이 아닌 위임·도급계약으로 일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노동자)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고, 심지어 ‘플랫폼’을 중간에 끼운 새로운 고용형태까지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법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난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일자리 불평등은 심화됐다.

이는 전국민주노동총연맹(민주노총)과 5개 진보정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당·정의당·진보당)이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 불평등을 극복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이들은 그 방법으로 ‘노조할 권리 확대’와 ‘초기업교섭 활성화’, ‘단체교섭 효력 확장’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모든 노동자가 노조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와 ‘노조를 할 수 없더라도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가 모두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이 지난 10월 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인력난 해소 및 근무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트럭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노동조합이 없는 스타벅스에서 직원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한국 진출 22년 만에 처음이다. 2021.10.07.


노조할 권리는 왜 필요할까?



‘노조할 권리’는 헌법에서 기인한다. 헌법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단결권은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 단체교섭권은 사용자와 만나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단체행동권은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말하는데, 대부분 단체교섭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벌어진다.

노조는 개별로 고립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에서 나타나는 힘의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결성되는 것이다. 개별 노동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이라는 걸 맺게 되는데, 이를 넘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임금을 제대로 받고 싶거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추가로 요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만한 힘도, 권한도 없다. 그래서 노조로 뭉쳐 힘을 키우고 권한을 확보해서 사용자와 단체교섭에 나서는 것이다.

단체교섭을 권투 경기장과 같은 ‘링’에 비유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노사 사이에 국가가 직접 개입해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강제하는 것이라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노사가 자율적인 협상으로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체교섭은 노조법에 따른 것이다. 이때 국가의 역할은 노사가 ‘링’ 안에서 지켜야 하는 룰을 정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단체교섭의 결과는 ‘단체협약’으로 마무리된다. 만약 단체협약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가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단체교섭도 일단 노조부터 만들어야 법적인 권한이 주어진다.

현행 노조법 제29조는 ‘노조의 대표자’가 그 노조(또는 노조 조합원)를 위해 사용자(또는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가 이를 외면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쟁의행위도 마찬가지다. ‘조합원은 노조에 의해 주도되지 않은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노조에 속하지 않고 나 홀로 회사에 항의한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의 말에 귀를 잘 기울여주는 사용자를 만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용자라면 ‘나는 당신과 교섭할 법적 의무가 없다’며 외면해버릴 것이다. 이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인다면? 자칫하면 사용자로부터 업무방해 등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비조합원인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트럭시위’를 돕겠다고 논평을 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노조할 권리를 왜 ‘확대’해야 할까?



문제는 노조를 만드는 것부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알고 보니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그렇다. 상당수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단체교섭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고, 이에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민주노총 이정희 정책실장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합법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결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다양한 고용구조를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는 노조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근로자’의 범위를 이들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게 개정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대부분의 노동자를 포괄할 것 같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최근 들어 ‘개인 사업자’ 또는 ‘특수고용직’으로 불리던 택배노동자와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인 플랫폼 노동자들 중 일부가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다.

진보당 김재연 대선후보는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근로자’로 포괄하기 위해 현행법상 ‘근로자’의 정의를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아예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일하는 시민의 기본법’(신노동법)을 새로 제정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놨다. ‘근로자’가 아닌 ‘일하는 시민’으로 새롭게 명명해 모두 노동권을 갖도록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노동권은 기업의 규모를 따지지 않는다. 일해서 번 돈으로 삶을 영위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예술인, 소상공인까지 모두 노동권을 보장할 것”이라며 “그동안 노동법의 보호 밖에 떠밀렸던 비임금노동자 700만도 노동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노조할 권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진짜 사용자’를 찾아야 한다



가까스로 ‘근로자’로 인정받아 노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 즉 회사 사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드디어 ‘링’ 위에 올라갈 수 있게 됐지만 나 홀로 올라간 격이라 단체교섭은 불가하다. 노조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결과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현실에서 많이 벌어진다. 분명 내 노동력을 제공받은 대가로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법적으로 ‘사용자’라고 인정되지 않으면서다.

현행법에서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 정의한다. 이때 다변화된 고용구조에서 ‘원청’은 “내가 근로자와 계약한 적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 그러면 하청 노동자는 원청 사용자를 만날 수 없고, 자회사 노동자는 모회사 사용자를 만날 수 없다. 특수고용직도 마찬가지다.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 2014년 한국수자원공사 사건 등에서 ‘원청이 사용자’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CJ대한통운은 노조법상 택배기사의 ‘사용자’라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아직 예외적·부분적으로만 인정되고 있고, 그 책임의 범위도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것이 한계로 꼽힌다.

이에 법리적 근거를 만들어 노동관계법 전반에서 사용자들이 원청이든 하청이든 ‘공동’으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 조건의 실질권한을 가진 ‘진짜 사장’, 즉 원청 사용자에게도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는 “앞으로 노동자들은 원청과 하청기업을 공동의 사용자로 삼아 교섭할 것”이라고 공약했고, 김재연 후보 역시 “‘공동사용자 책임제’를 도입해 진짜 사장과 교섭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아직 노동정책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그런 내용을 포함해서 공약을 논의하고 있다”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공동사용자 책임제’ 등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공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지만 민간위탁을 자회사로 전환하는 등 우회로를 열어 민간에도 부정적인 신호를 줬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청과 원청뿐만 아니라 자회사와 모회사 모두 ‘공동사용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노동법상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는 것처럼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면 된다. 법률단체인 ‘국민입법센터’에서는 노조법에서 ‘사용자’ 정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근로자로부터 노동을 제공받는 자’로 개정하고, ‘근로자 노동의 제공 여부 및 노동 조건의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자가 둘 이상인 경우 모두를 사용자로 간주한다’고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사용자가 여럿인 경우 노조의 대표자는 복수의 사용자 전부 또는 일부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갖도록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국민입법센터는 제안한다.

국민입법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의철 변호사는 “지금도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되면 관련 의무를 지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노동관계법은 대부분이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적용 대상만 확대된다면 강제를 통한 실효성 담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공동사용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미국은 ‘근로자’, ‘사용자’를 판단할 때 ‘통제 기준’을 적용했지만 오바마 행정부 이후 ‘경제적 실체 기준’을 채택해 근로자가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2014년 맥도날드 가맹점 노조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서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열린 번쩍배달로 인한 수입감소 해결, 지방 라이더 콜 보장을 위한 배민라이더스 배달노동자 대회에 참석한 한 배민라이더가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2021.03.19.


노조가 있어도 기업별로 다르다?
초기업 교섭을 하려면 ‘진짜 사용자단체’를 찾아야 한다



‘공동사용자’ 규정은 기업별 단체교섭 구조를 벗어나 초기업 단체교섭을 확장하는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동사용자로) 원청이 일정 부분이라도 책임을 지면서 단체교섭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과 계약된 하청을 넘어선 수준의 단체교섭을 하는 것”이라며 “넓은 의미에서 초기업교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택배노동자라면 원청과 여러 대리점을 한 테이블에 불러 함께 교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기업 단체교섭은 개별 기업의 의지로는 한계가 있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풀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별로 교섭하면 해당 기업의 생산성이나 경영상황을 전제로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논의되면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데, 그런 기업별 교섭을 넘어선 (초기업) 교섭 구조에선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초기업 단체교섭은 주로 직종별·업종별·산별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산별노조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다.

보건의료노조는 2007년 보건의료 사용자단체와 산별교섭을 통해 산별 5대 협약을 일괄타결했는데, ‘산별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았다. 병원 특성별로 정규직의 임금인상안을 정하는 동시에 정규직 임금인상분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및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합의하면서다.

이처럼 초기업 단체교섭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해외 실증분석에서도 집중화된 교섭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노동시장의 불평등 정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불평등 정도가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업 교섭 구조를 정비하고 강화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초기업 단체교섭 적용률은 공공부문과 준공공부문 등 직간접적으로 정부 규제가 강한 산업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현행 노조법에는 사용자 외에 ‘사용자단체’를 규정하고 있는데, 현실에선 사용자단체가 너무 좁게 인정되어 산별노조가 단체협상을 시도해도 성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대법원은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의 체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목적성)와 통일된 교섭 전략을 추진하고 그에 따라 체결된 협약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는지(통제성)의 두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사용자단체’로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사용자단체’ 인정 범위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에서 사용자 이익을 대변하며 활동하는 ‘사용자단체’는 법으로 규정된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정희 정책실장은 “예를 들어 4차산업혁명위원회, 탄소중립위원회와 같은 정부 차원에서 회의를 할 때 각종 산업 연관 단체가 참여해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며 “그런데 노사관계에서 노조가 ‘당신들이 사업주를 대표하니 우리랑 교섭하자’고 하면 ‘우리는 사용자 권한은 없다’고 하면서 발을 뺀다”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는 사용자단체에 교섭 의무를 부과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법률상 법정단체로 구성돼 활동하는 사용자들의 단체는 물론, 정부의 정책 결정을 위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의 단체에도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만큼 단체교섭의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것이 비례와 균형의 관점에서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방식으론 “노조법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법을 개정하기 전이라도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사용자단체가 교섭을 거부할 경우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교섭창구단일화제도’도 초기업교섭의 걸림돌이다. 조직형태와 상관없이 기업 단위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하는 이 제도는 사실상 기업 단위 교섭을 강제하고 초기업 교섭을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상정 후보는 “일하는 시민은 결사의 자유처럼 스스로 단결의 형태를 정할 것”이라며 “자신이 일하는 특성과 공간을 감안해 산업별, 업종별, 지역별, 기업별 등 선호하는 방식으로 단결할 것이고, 사회와 국가는 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국회에서도 이런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특히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폐지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16년 4월 14일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의 2016년 제2차 임금단체협상일 풍경. 당시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금융노조 소속 지부장들이 사측 대표자들을 기다렸지만 사측 대표 전원의 불참으로 회의는 결국 무산됐다.


노조를 만들지 못한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 개선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노조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다. 실상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훨씬 더 많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1.6%에 불과하다. 노동자 10명 중 1명 정도만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5.1%라는 점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순이다.

단체협약 적용률도 그와 비슷한 14.8%로 낮은 수준이다. 법적으로 ‘근로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가 상당히 많은 현실에 미뤄보면 실제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은 이보다 더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으면 단체협약 적용률도 높게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연동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더라도 단체협약 적용률이 그에 비해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사이에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국가는 14개국에 달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률(10.8%)을 보이는 프랑스의 경우 단체협약 적용률이 무려 98%이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던 것일까. 이를 분석한 민주노동연구원은 올해 4월 발표한 민주노총 총서 ‘초기업교섭과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 재조명’에서 “14개국에선 대부분은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가 도입돼 있다”고 설명했다. 단체협약 효력확장이란 노조가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협약의 적용 범위에 속하지 않은 다른 노동자와 사용자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도 단체협상 효력확장 제도의 법적 근거가 존재한다. 노조법 제35조(일반적 구속력)에 따르면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같은 직종의 근로자 과반이 하나의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게 된 때에는 그 사업장의 다른 근로자도 같은 단체협약이 적용된다. 쉽게 말해 노조 조합원이 한 사업장의 노동자 중 과반수면 되는 것이다.

또한 노조법 제36조(지역적 구속력)는 사업장이 아니라 지역을 범위로 둔다. 하나의 지역에서 일하는 같은 직종의 근로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게 되면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같은 직종의 근로자와 그 사용자에 대해서도 같은 단체협약이 적용될 수 있다. 다만 행정관청이 단체협약 당사자의 신청을 받거나 직권으로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야만 적용할 수 있다.

단체협약효력확장이 필요한 이유는 작은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이나 취약 노동자는 집단적 교섭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최저기준 보장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안전장치를 갖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수고용직 등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엔 더 열악할 수 있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총서에서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통해 미조직된 불안정 노동자에게 단체협약 효과를 파급시킬 수 있다면, 이원화된 노동시장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유의미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거의 작동하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다. 그나마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높은 조직률을 바탕으로 ‘일반적 구속력’을 통해 단체교섭 효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지역적 구속력’ 조항이 실제 적용된 사례도 2018년 세종시 학교비정규직 사례가 유일하다.

그 이유는 단체교섭이 단일사용자를 대상으로만 가능하다는 제도적 한계와 더불어, 효력을 확장하려면 이를 적용받는 조합원의 수가 사업 내 과반, 지역 내 3분의 2 이상이 돼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노총 이정희 정책실장은 “단체협약 효력 확장의 까다로운 조건을 낮춰야 한다”며 “특별한 경우 ‘이런 단체협약은 해당지역이나 해당동업에 포괄적으로 도입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노동위원회가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심상정·김재연 후보 모두 ‘단체교섭 효력 확장’을 공약했다. 심 후보는 “지역, 업종에서 4분의 1 이상의 대표성을 지닌 협약이 마련되면 해당 노동자들에게 의무 적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단체협약 효력확장을 두고 ‘비조합원의 무임승차’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합원인 노동자들이 하루 일당을 포기한 채 노조가 주최하는 집회나 파업에 참여해서 어렵게 얻어낸 단체협약을 비조합원에게까지 모두 적용할 경우,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이는 ‘기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그런 주장은 충분하게 실증되진 않았다.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가 실제 잘 작동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것 때문에 노조 조직률이 떨어졌다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로 인해 노조의 대표성과 공익적인 역할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서 노조 조직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제도를 제안한 것은 110만 조합원이 소속된 민주노총의 내부 성찰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4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사회에서 노조 조직률은 5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50%를 상회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전체 조직률이 10%에도 못 미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2%대로 통계가 나온다”며 “노조를 갖지 못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민주노총이 더 많이, 크게 해야 한다는 지적에 적극 공감한다”고 말했다.

단체협상 효력확장은 사용자 입장에서도 좋은 점이 있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민주노총 토론회에서 단체협약 확장의 장점으로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실현할 수 있고,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교섭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업종 차원의 숙련노동자를 양성하는 데에도 유리한 점이 있다. 다만 생산성이 낮은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거나, 대기업이나 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이해관계만 반영될 위험이 있다고 박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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