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도로 역진입하고도 고속으로 내달린 차량, 급발진 논란

조선 호텔 주차장 나온 직후 가속…역진입 후 골목으로 우회 않고 인도 돌진

1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세종대로 사고현장에 출동한 119구급대와 경찰 등이 현장을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2024.07.01. ⓒ뉴시스

서울 도심에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는 차량이 일방통행 도로에 역진입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도로는 모든 차선이 일방통행이다. 양쪽으로 인도를 접하고 있다. 차량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고속으로 역주행하던 차량은 왼쪽 인도로 돌진했다. 역진입과 고속주행 원인을 두고 급발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경찰 수사 초기인 만큼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파편적인 정보가 사안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시청역 차량 역주행 사고 상황 ⓒ뉴시스


3일 경찰 설명과 사고 현장 인근 CCTV 영상을 종합하면, 이번 사고는 ‘도로 역진입-과속-인도 돌진’ 순으로 진행됐다.

사고 차량은 웨스틴 조선 호텔 지하주차장 출구를 빠져나온 직후 가속하기 시작했다. 정용우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지하 1층 주차장을 나오면 출구 앞에 턱이 있는데, 그때부터 가속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하주차창에서 나온 사고 차량은 맞은편 일방통행 도로에 역진입했다. 지하주자창을 나와 곧장 3시 방향으로 우회전해야 하지만, 1시 방향 도로로 잘못 들어간 것이다.

가능성은 갈린다. 운전자 의도와 무관하게 차량이 급발진했을 수 있다. 이 경우 운전자가 3시 방향으로 핸들을 틀지 못해 불가피하게 1시 방향으로 향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운전자가 실수했을 여지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세종대로18길에서 역주행 차량이 종종 목격된다는 게 인근 상인들 설명이다. 해당 도로는 4차선 모두 일방통행으로, 맞은편 조선 호텔에서 진입해선 안 된다. 운전자는 관성적으로 양방향 도로라고 착각할 수 있다. 도로 왼편에 ‘진입금지(일방통행)’ 표지판이 달려 있지만, 진입 자체가 금지된 보도인 터라 신호등이 없다. 해가 진 늦은 저녁 운전자가 주의하지 않으면 녹색 표지판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사고 차량은 오후 9시가 지난 시간에 세종대로18길에 진입했다.

세종대로18길 역방향 오른편에는 두 개의 골목이 있다. 인근 상인들은 도로에 잘못 들어온 차들이 해당 골목에서 차를 돌린다고 전했다. 사고 차량은 차를 돌리지 않고 계속 역주행했다.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사고 차량이 약 120미터가량을 역주행한 지점에서 찍힌 CCTV 영상을 보면, 고속으로 횡단보도를 지난다. 이후 약 40미터를 더 달려 인도로 돌진한다. 인도와 도로 경계에 가드레일이 있었으나, 힘없이 허물어졌다. 전문가들은 CCTV 영상을 토대로, 차량 속도가 시속 80km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영상만으로 정확한 속도를 추정하기는 어렵다”는 전제로 “안전펜스를 밀고 들어간 걸로 볼 때 시속 80~100km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일 자동차 정비 명장도 “적어도 시속 70~80km는 되지 않았을까 한다”고 했다.

고속으로 내달린 사고 차량이 인도로 뛰어들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1일 발생한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운전자는 역진입 이후 사고 직전까지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역방향으로 왼편에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인도에는 행인들이 지나고 식당에서 나와 흡연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오른편에는 한화빌딩과 한화금융플라자빌딩이 인도를 접하고 있다. 정면에서는 차들이 달려오고 있었을 것이다. 사고 차량은 왼편 인도로 돌진했다.

운전자는 마주 오는 차량을 피해 서둘러 도로를 빠져나오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차량이 급발진했다면 가능한 선택지다. 무사히 도로를 나왔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방향으로 도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운전자는 교차로까지 역주행해 좌회전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사고 차량은 인도를 지나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두 대를 충돌한 뒤 서서히 멈춰 섰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운전자 의도를 고려하더라도 인도로 뛰어드는 결정은 충돌 회피 노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염 교수는 “아무리 야간이라도 오후 9시쯤이면 인도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을 것”이라며 “굳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은 충돌 회피 시도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우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이 3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시청역 역주행 사고 관련 브리핑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07.03. ⓒ뉴시스


역주행 잦은 길, 적절한 대처 가능한데 왜 질주했나

사고 차량 운전자 A 씨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정용우 과장은 사고 당시 동승했던 운전자의 배우자가 경찰 참고인 진술에서 ‘브레이크가 안 들었던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A 씨는 경기도 안산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시내버스 기사로 파악됐다. 경찰 검사 결과 사고 당시 음주와 마약 복용을 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차량이 도로에 역진입해 질주하는 정황을 보는 시각은 전문가마다 차이가 있다.

차량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박병일 명장은 “운전자가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을 수는 있다”면서도 “40년 경력의 베테랑 버스 기사가 역주행으로 쏜살같이 달리다가 핸들을 꺾어 인도로 돌진한 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지 않았겠나”며 급발진 가능성을 제기했다.

급발진보다 운전자 과실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염건웅 교수는 “조선 호텔에서부터 갑자기 치고 나갔다고 하면 급발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일방통행 도로에 잘못 진입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로에 역진입한 운전자가 당황한 나머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액셀을 더 세게 밟았을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에 대해 시각차를 보이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파편적인 정보로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는 건 신뢰성이 담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염 교수는 “블랙박스를 비롯해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와 사고 차량이 조선 호텔에서 나온 시점의 CCTV 영상 등을 봐야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DR에는 사고 직후 5초간의 브레이크·액셀 페달 작동 여부, 속도 등이 기록된다.

박 명장은 “인도를 촬영한 영상만으로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CCTV 영상은 핵심 정보이지만, 인근 상가 CCTV만으로는 부족하다. 촬영 거리가 짧고 인도를 비추고 있어 사고 정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의 변호를 여러 번 맡아온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도 “처음 지하주차장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마지막 정지할 때까지의 전체 주행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전체 EDR 데이터를 분석해야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며 경찰의 파편적인 정보 유출이 사안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은 대외적으로는 종합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단편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따는 입장이다. 현재 사고 차량과 블랙박스, CCTV 영상, EDR 데이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전문기관에 넘겨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정용우 과장은 “EDR만 가지고 단순하게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차량이나 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전문 기관에서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과수 정밀 분석에는 통상 1∼2개월이 소요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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