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오픈된 대통령실 ‘02-800’ 번호, 왜 유독 끝자리 ‘7070’만 국가기밀일까

지난 15일,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서 사마르칸트로 향하는 공군 1호기 탑승에 앞서 이스마일로프 우즈벡 하원의장을 비롯한 환송 인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06.15. ⓒ뉴시스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현안질의서 갑론을박이 오갔던 것 중 하나가 대통령실 유선전화 번호 ‘02-800-7070’이 대통령실 어느 부서, 누구 자리의 전화번호냐는 것이었다. 이 번호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휴대전화 통화 목록에서 작년 7월 31일 수신된 번호 중 하나였다. ‘02-80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대통령실 유선번호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며, 이날 누가 이 전 장관에게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냐는 것은 채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의 전모를 밝히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실관계가 될 수 있다.

해당 번호로 이 전 장관에게 전화가 간 정확한 시점은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04초였다. 통화 시간은 2분 48초에 달했다. 꽤 긴 대화가 오간 것이다. 이 전화가 가기 1시간여 전인 오전 11시경에는 윤 대통령의 이른바 ‘격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모종의 회의가 있었다. 최초 보도에는 대수비 회의라고 알려졌는데, 통상적인 대수비 회의 시간보다는 늦은 시간이라,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이뤄진 TF 회의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이날 운영위 회의 질답에서 매우 의아한 대목은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번호들에 대해 참모들이 일제히 “국가기밀”이라는 식으로 답했다는 것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전화번호는 기밀상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고 했고, 윤재순 총무비서관도 “대통령실 보안관리에 관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들 말대로면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번호들은 외부에 공개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구글 검색을 하면 ‘02-800-4348’(안보실 사이버안보비서관실), ‘02-800-7469’(대통령비서실 메시지비서관실), ‘02-800-7844’(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실) 등 번호들이 쉽게 확인된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기자들에게 건네는 명함에도 ‘02-800’으로 시작하는 일반전화 번호가 버젓이 적혀있다. ‘민중의소리’가 확인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비서관, 행정관들 명함에 나온 번호는 모두 ‘02-800-7XXX’다. 안보실 관계자들 번호는 ‘02-800-4XXX’이다.

장호진 안보실장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과의 질답 과정에서 자신의 번호는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안보실 번호는 ‘4’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통화기록에서 ‘4’로 시작하는 번호는 ‘02-800-4200’이다. 이 번호로 사건 관계인들에게 전화가 간 횟수는 두 차례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8월 2일 39초 동안,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과 8월 4일 3분 30초 동안 통화가 이뤄졌다. 장 실장 말대로면 이들 전화는 안보실에서 간 셈이다. 정 비서실장이 “대통령실 번호는 기밀”이라고 했는데, 기밀 사항에 더 민감해야 할 장호진 실장이 “4로 시작하는 건 안보실 번호”라고 실토한 것도 모순이다.

어쨌거나 ‘7070’이 안보실 쪽 번호일 가능성은 낮아졌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자기 집무실 번호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7070’ 번호의 주인은 윤 대통령 집무실, 비서실장 집무실을 제외한 나머지 비서실들, 경호처 등으로 후보군이 좁혀진다. 공적 시스템과 무관한 비선 라인 쪽 번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답변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비서실은 수시로 인원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그때마다 전화기가 설치되기도 하고 철거되기도 한다”고 했다. 필요에 의해 번호가 생성할 수도, 폐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민정 의원은 “문제의 통화 이후 전화회선이 재배치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사실이) 확인되면 증거인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02-800’으로 시작하는 번호들 중 끝자리 ‘7070’ 번호만 국가기밀인 셈이다. 누가 쓰던 번호길래 그 번호만 국가기밀일까?

국회 운영위원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해당 번호 주인에 대해 “실체적 진실의 윤곽은 드러났다. 장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실에서 장관급이야 될 것이다. 비서실장과 안보실장도 (자기 번호가) 아니라고 했다”며 “남은 사람은 누구인가. 대통령밖에 없다. 아니면 대통령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 아주 가까운 측근들, 즉 부속비서관(부속실장) 등”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에서) 부속비서관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 격노가 있던 날 부속비서관이 용산 대통령실 내 국방비서관에게 그렇게 전화한다”며 “부속비서관은 대통령의 입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문고리’ 권력으로 꼽히는 강의구 부속실장은 윤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회의 직전인 7월 31일 오전 8시 46분과 9시 51분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과 총 5분가량 통화했고, 해당 회의 이후인 같은 날 오후에도 수차례 통화를 했다.  임 전 비서관은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단 수사기록이 군검찰로부터 회수된 8월 2일 윤 대통령 개인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도 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비선 라인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30일 유튜브 채널 ‘스픽스’에 출연해 “7070 번호가 어디 방에 있느냐를 보면 누가 전화했는지 나올 수 있다. 만약 영부인실에 그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빨리 고쳐놓으라”고 말했다.

앞서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핵심 인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투자사 블랙펄인베스트 이종호 전 대표와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관련 윗선의 구명 대상으로 지목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커넥션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지난달 25일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작년 5월 3일 이 전 대표와 법조인, 공무원 등이 들어가 있는 해병대 출신 모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임 전 사단장과의 골프 및 만찬 모임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과 모임을 했던 한 변호사는 JTBC 취재진에 ‘이 전 대표가 김 여사와의 친분을 자주 언급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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