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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혼돈에 빠진 서방 정치권, 일방적 ‘가치외교’ 재고해야

지난 달 30일 치러진 프랑스 조기총선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압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지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국민연합과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1,2위를 차지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집권 여당 앙상블은 3위에 그칠 것이라 예상했다. 다수 지역구에서 결선 투표가 예정된 만큼 결과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대로라면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의 '극우 총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혼란은 대서양 반대편에서도 벌어졌다. 11월의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미국의 첫 대통령 후보 TV토론에서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참패했다. 고령으로 앞으로 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등 눈에 띄게 쇠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후보에 반대해 확고한 우군이었던 주요 언론들이 나서서 후보 교체를 강권할 정도였다.

이른바 서방의 정치적 혼란은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다. 이미 이탈리아에선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로 집권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독일대안당(AfD)이 6월 초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했다. 유럽 정치에서 극우는 이미 주류에 진입한 셈이다. 올해 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집권한다면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담당했던 서방의 주류 정치는 큰 혼란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서방의 주류 정치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된 원인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혼란이 일시적인 반동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에서 미국과 유럽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는 과거와 같은 헤게모니를 잃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는 정치, 경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고, 이에 맞서는 미국의 전략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금처럼 '가치외교'에 올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당장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주한미군 축소나 방위비 분담금 강요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는 가치외교 따위로 넘을 수 있는 파도가 아니다. 러시아를 적대하고 중국과의 거리를 두는 정책도 위험만 있을 뿐 이익은 없는 행위다. 상황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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