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 만세] ‘새드 엔딩’의 책임

편집자주

‘마을 만세’는 다양한 형태의 지역공동체 활동을 하는 이들이 함께 쓰는 칼럼입니다. 필자는 이민희 (사)여민동락공동체 이사, 이하나 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박지선 로컬매거진 홍천상상 편집장, 이선주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입니다.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지역도 다르고, 돌봄·의료·문화·교육 등 주된 활동 영역도 다른 필자들이 한 달에 두 번씩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할 것입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우리 어머니는 주간보호 안 가십니다.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어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할 말을 잃었다. 어제 저녁 댁에 모셔다 드리면서 “잘 주무시고 내일 봬요”라고 건넨 말이 마지막 작별 인사였을 줄이야. 김00 어르신은 고령에 치매를 앓고 계셨지만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며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을 유지해오셨다. 경증 수준의 치매는 적정한 수준의 돌봄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낙상이 화근이었다. 툇마루를 내려오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넘어지시고 말았다. 다행히 골절은 없었고 꾸준히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하니 상처도 서서히 아물어갔다. 하지만 자녀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타 지역에 사는 자녀들에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 댁에 가자는 약속은 깨지는 날이 많았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돌봄의 책임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자 갈등과 다툼이 생겨났다. 자주 어머니 댁을 오가던 큰 딸은 ‘독박 간병’의 피로감과 서운함을 호소했고, 다른 자녀들은 죄책감으로 힘들어했다. 가족 안에서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즈음, 낙상 사고는 일종의 ‘트리거’가 되었다. 어르신의 요양원 입소를 반대하는 가족은 없었다. 큰아들 집 근처인 경기도 어딘가의 요양원과 계약하고 고향집을 정리하며 어르신의 요양원 입소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소멸 위기에 과소화, 공동화 되고 있는 농촌 사회 어르신들의 삶은 고립과 단절이 일상이다.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의 자립 생활이 어려운 지경이 되면 살던 집을 떠나야 한다. 어르신은 언젠가 삶터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지워질까봐 두렵다. ⓒ필자 제공


이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어르신은 철저하게 소외됐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터전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어르신의 심정은 오죽할까. ‘최악의 결정’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애써 자위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으리라. 노인 돌봄 종사자로서 이러한 순간에 느끼는 낭패감은 그 후폭풍이 오래간다. 내 삶을 온전히 내 의지로 결정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언제나 선하고 엷은 미소로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어르신의 얼굴이 꽤 오래 눈에 밟혔다.

이 ‘새드 엔딩’의 책임을 그 가족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늙고 쇠약해져서도 인간답게, 존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들이 충분하지 않을 때, 존재는 손쉽게 지워질 위기에 처한다. 어르신들이 자의와 상관없이 요양시설로 격리되거나, 병든 가족의 수발 부담을 못 이겨 ‘간병 살인’을 저지르는 비극은 본질적으로 적합하고도 충분한 사회적 돌봄 체계 부재로부터 기인한다. 시몬느 드 보봐르는 책 ‘노년’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노인들은 인간적인 범주의 밖에 위치한다”며 “자본주의 팽창과 풍요가 노인들에게 가난과 고독, 불구, 절망의 형을 언도하고 노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침묵의 공모’를 깨버려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통합돌봄)는 돌봄이 필요한 이가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소득, 주거, 보건의료, 복지, 요양, 돌봄 등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안들이 분리된 장벽을 넘어 복합적이고 맞춤형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돌봄이 사회 전환의 중심적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할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돌봄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돌봄 없는 민주주의는 무능하다. 돌봄 없는 복지는 무용하다. 커뮤니티 케어의 '한국형'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돌봄 모델은 아직 탄생하지 않고 있다. 제도적 돌봄과 사회적 돌봄을 결합하는 ‘통합 돌봄’의 본질은 행정 주도가 아닌 마을공동체의 연대에 기반한 호혜적 돌봄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는 주민 중심의 마을공동체가 생산하고 집행하는 마을 돌봄, 지역이 중심이 되는 복지 분권 확립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어르신들이 주간보호센터에 모여 텃밭에서 함께 기른 작물을 다듬고 있다. ⓒ필자 제공

최근 “여민동락이 하루빨리 요양원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얼마 전에는 5년 전에 퇴소하여 타 지역 요양원에 입소한 윤00 어르신의 큰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고향집에 가고 싶으시다고 하시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여민동락이 운영하는 동네 요양원으로 모시고 싶다”며 “얼른 지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같은 이야기시다. “요 동네 노인들은 때 되면 다 여민동락 가기로 했응게 그렇게 알어. 자식들이 영판 모르는 곳에 델따 놀까봐 고것이 젤로 무섭당께.”

마음이 바빠진다. 할 일이 태산이다. 마을 안에서 생애주기별로 ‘aging in place’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을 갖춰나가야 한다. ‘배리어 프리’한 재택 생활을 지원하는 복합적인 대책도 필요하고, 지역밀착형으로 운영되는 돌봄 요양시설 구축도 필요하다. 마을에서 필요한 복지와 돌봄의 계획과 내용을 생산하고 실행하는 주체로서 주민들의 주도성이 충분히 발휘되어야 한다. 마을이 살아나는 돌봄, 호혜적 돌봄이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이 되는 마을이야말로 ‘새드 엔딩’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필자주

(사)여민동락공동체는 자주, 자립, 공생의 마을공동체 복지 실현을 목표로 2007년부터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요양과 돌봄이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가복지서비스, 경로당을 거점으로 한 주민 주도형 마을 복지 사업 및 이동권 보장 등 미충족 생활 돌봄 지원 사업, 마을교육거버넌스에 바탕을 둔 작은 학교 살리기 및 마을교육공동체 활동, 과소화로 고립되어 ‘구매난민’의 처지에 놓은 주민들에게 사회적 경제 조직을 통해 생필품을 공급하는 사업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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