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지학의 세상다양] 이 세상 모든 ‘이상하고 모자란’ 케빈들의 해방을 위해

청소년을 위한 다양성훈련 프로그램을 배워온지 10여년 만에 미국의 다양성 훈련 캠프 ‘애니타운’(Anytown)에 다시 참여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한국 사회의 여러 현실과 조건들 때문에 그간 2박3일로 진행해왔지만, 이 프로그램은 본래 7박8일간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스텝 트레이닝 기간을 포함하면 10박11일 동안 진행된다. 긴 시간을 집중적으로 만나는 만큼,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제공한다. 애니타운은 NCCJ(National Conference for Community and Justice)라는 단체를 통해 운영되는데, 내가 애니타운을 경험한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운영된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애니타운의 변화를 확인하고 발전적으로 도입하고자 애리조나 피닉스 그리고 오하이오 데이튼에서 열리는 애니타운에 초대받아 참여했다. 이번 출장은 그간 끊임없이 다양성 훈련 프로그램을 한국 현실에 맞게 현지화하고 발전시가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한 청소년의 변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오하이오 데이튼에서 애니타운을 시작하기 전날 케빈(가명)의 엄마를 만났다. 케빈은 매우 기대에 부풀었지만 자신은 매우 걱정되고 긴장된다고 했다. 케빈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정신질환이 있으며, 학교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해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케빈의 엄마는 나와 대화를 나눌 때 케빈을 그(he)라고 불렀다. 우리도 케빈을 만나기 전까지는 케빈을 남학생으로 알고 있었다. 케빈의 엄마가 케빈의 성별정체성에 대해서 기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영어에서는 제 3자를 지칭할 때 그(he) 혹은 그녀(her)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떤 3인칭 대명사(Pronounce)로 불러주었으면 좋겠는지를 알리고 서로의 대명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케빈은 사람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대명사를 she, they라고 소개했다. 여성 인칭 대명사 혹은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대명사를 사용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케빈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명사로 자신을 불러줄 것이라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케빈은 다소 무력한 표정으로 ‘나를 he로 부르고 싶은 사람은 그냥 he로 불러도 된다’는 말을 같이 했다. 그때 케빈의 엄마는 케빈을 he로 부르는 것이 생각났다. 슬펐다.

 다양성훈련 청소년리더십 여름캠프 ‘애니타운’ (Anytown) 교육장 앞 ⓒ필자 제공

애니타운은 모든 사람이 있는 모습 그대로 환영받는 곳이다. 모든 유형의 사회적 억압에 대해서 게임과 활동 그리고 대화를 통해 깨닫고 서로에게 배우는 곳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고 모두가 억압에서 해방되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곳이다. 이때문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억압에서 해방되며 케빈이 점점 더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긍정할 수 있었고, 타인으로부터 지지받는 경험을 하며, 안전한 공동체임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케빈의 말이 조금 어눌하고 행동이 조금 어색하다는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곳에서 케빈은 다른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낼 수 있었다.

캠프의 거의 마지막 날 밤에 ‘문화의 밤(Culture Night)’이라는 모든 참여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자신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케빈은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그 밴드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노래를 하는 중에 신이 날 때는 점프를 하곤 했다. 사람들은 케빈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 순간 케빈 엄마의 걱정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의 케빈의 표정 등이 겹쳐 보이며 눈물이 흘렀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차별, 억압, 폭력을 당하며 살아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세상에선 그 누구도 평안하게 살 수 없다. 이 세상을 조금만 더 애니타운과 같이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그런 세상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 ‘이상하다, 부족하다, 모자라다’와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수많은 케빈들은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케빈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케빈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케빈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된 것이다.

나 역시, 과거 애니타운을 만난 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나의 작은 세상은 완전히 부서졌다. 애니타운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 사회구조에 대한 관점을 전부 새롭게 해주었다. 애니타운은 인종, 민족, 종교, 지역, 장애, 질병, 나이, 외모,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학력/학벌, 소득/경제력/고용의 형태 등을 둘러싼 모든 억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내가 그 억압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저항하기 시작할 때 그 억압의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해주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우울했던 나에게 삶의 목적을 주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해방을 꿈꾸게 됐다.

한국에서 애니타운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귀국한 후 한국다양성연구소를 만들고 다양성훈련을 진행하며 지낸지 10여년이 흘렀다. 끊임없이 한국현실에 맞게 현지화하고 발전시켰다. 아직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애니타운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2박3일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꼭 7박8일 캠프를 열어 자신을 초대해달라고 말한 청소년들의 간곡한 부탁들이 떠오른다. 수많은 한국의 케빈들이 자신을 긍정하고 지지받으며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사회 곳곳에 모두의 마을, 애니타운을 경험한 사람이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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