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광화문에 100m 태극기 게양대 설치한다는 낙후한 발상

서울시가 광화문에 100m 높이의 태극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영원한 애국과 불멸을 상징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25 74주년을 맞아 연 참전용사 간담회에서 이런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의 '워싱턴 모뉴먼트',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에투알 개선문', 아일랜드 더블린 오코넬 거리의 '더블린 스파이어'같은 국가 상징 공간을 만들겠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한마디로 낙후한 발상이다.

모든 공간에는 고유한 역사가 있고, 그 역사가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광화문 광장은 우리 현대사에서 시민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그 자체로 개방된 광장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 헌법정신에도 걸맞고 역사적 경험에서 나오는 시민적 합의에도 어울린다. 이런 광장에 거대한 굵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대형 태극기를 내거는 일은 아무 맥락도 없다. 광화문 광장 북쪽에 위치한 경복궁과의 조화도 어렵다.

오 시장은 새삼스레 거대한 태극기 게양대를 만들어야 하는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 내놓은 게 "나라 사랑의 마음이 국민 일상 속에 늘 함께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을 거듭한 결과"라는데, 이런 알맹이 없는 일반론이라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벌여도 다 좋다는 결론만 나올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2009년에도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종대왕 동상을 광화문에 설치한 바 있다. 세종대왕은 대다수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동상이 굳이 광화문에 세워져야 할 이유는 뚜렷하지 않았다. 오 시장의 속내가 광화문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방해하려는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던 이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오 시장이 서울 중심부에 이승만기념관을 세우려는 시도의 연장선에서 태극기를 정치 도구로 만들어 온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광장은 오세훈 시장의 독점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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