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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두 음악축제가 인도한 다른 세계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과 ‘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4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인스타그램

어떤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좋은 페스티벌일까.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갖춰야 할 요건은 무엇일까. 국내에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본격화되었던 2000년대에는 얼마나 유명한 해외 음악인이 무대에 서는지가 페스티벌의 가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록스타, 팝스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계속 이어지고 늘어나면서, 특히 국내에 멋진 음악인이 증가하면서 판단은 달라졌다. 특정 장르 마니아들은 항상 누가 오지 않는다고 푸념했지만, 기실 그 음악인이 온다 해도 움직일 팬은 많지 않았다. 장르에 목숨을 걸지 않는 음악팬들은 오히려 국내 음악인들을 보기 위해 더 많이 움직였다. 열혈 음악팬들은 차라리 해외 대중음악 페스티벌로 나가 보고 싶은 음악인을 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음악 페스티벌이 다양해진 2010년대를 지나고,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위기를 헤치고 난 후에는 선호하는 장르와 분위기를 따라 헤쳐모이는 분위기다. 편안하고 상쾌한 체험을 선호하는 이들은 도심 공원에서 펼쳐지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을 선호하고, 새로운 컨셉트를 만나려는 이들은 기꺼이 낯선 지역으로 떠나간다.

그 중 DMZ피스트레인페스티벌은 강원도 철원이라는 지역과 평화라는 주제로 이채롭다. 대부분의 음악팬들에게 거의 접점이 없는 지역이고, 평화라는 가치는 너무 당연하거나 무거워서 축제 이름으로 걸기는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2018년부터 시작한 페스티벌은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철원의 낯선 풍광이 선사하는 흥취와 장르를 통합한 무대 덕분이다. 최근의 음악 페스티벌은 대부분 장르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DMZ에서는 거장/중견 음악인과 신인 음악인이 한 무대에 서고, 국적은 전세계를 넘나든다. 음악을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짜지 못했을 라인업이 펼쳐질 때, 어떤 열혈 음악팬이 열광하지 않을까.

2024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인스타그램

이 축제에서는 어떤 음악인도 행사를 뛰듯 공연을 펼치지 않는다. 올해에도 어어부프로젝트라는 전설이 등장하고, 이센스는 최강의 연주자들로 밴드를 짜왔다. The Orb가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수철의 노래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음악 페스티벌은 드물다. 윤수일 밴드가 ‘Imagine’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축제 역시 희귀하다.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음악인의 무대를 보면서 열광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는 페스티벌은 음악인과 음악팬 모두에게 감동이다. 페스티벌 공간을 초과하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게 조율하고, 다양하고 멋진 공연을 선보이도록 기획하며, 공존과 이해를 앞세운 페스티벌의 기풍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틀 동안 평화를 숨 쉬게 했다. 세상 곳곳에 전쟁이 벌어지고, 남과 북이 대치하며, 각자의 이념과 정체성으로 쪼개진 세상에서 마음을 열고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남다른 축제를 만들어온 이들의 피땀눈물 덕분이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평화를 계도하지 않고, 평화로 인도하며, 평화를 실현하는 축제다.

2024 아시안 팝 페스티벌 ⓒ아시안 팝 페스티벌 인스타그램

올해 처음 열린 아시안 팝 페스티벌 역시 아시안 팝의 세계를 계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도했다.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라는 호텔 공간에서 열려 어느 축제보다 쾌적했던 페스티벌은 여유와 설빈, 아도이, 이랑, 넬, 김사월, 세이수미, 크라잉넛, 백예린, 김창완밴드를 비롯한 국내 음악인들만 초대하진 않았다. KIKI, No Party For Cao Dong, Betcover! Japanese Breakfast, Wednesday Campanella, Kaneko Ayano, Shintaro Sakamoto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인들이 연달아 무대에 올랐다. 극소수의 음악팬이 아니라면 낯선 이름을 불러 모은 이유는 세상에 좋은 음악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일원임에도 일본의 몇몇 음악인만 거명하는 현실에서 축제의 기획자들은 그동안 꾸준히 아시안 팝 스테이지를 열어 다른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계속 아시아 다른 국가의 음악인들을 초청해 선보여온 이들은 음악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축제를 열었다.

이 음악이 통할 수 있을 거라는 열망을 지켜준 이들은 이틀 동안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준 관객들이었다. 수많은 관객이 몰리지만 음악에 집중하지 않는 유명 대중음악 페스티벌과 달리 아시안 팝 페스티벌의 관객들은 생경한 음악에도 귀를 기울이고 뛰고 몸을 흔들었다.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더욱 커졌고, 귀는 한껏 열렸다. 제각각 다른 팀들을 최고의 공연이라고 뽑을 만큼 빼어난 공연의 연속이었다. 헤드라이너는 필요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음악 어법에 젖어드는 사이 어떤 음악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자명해졌다. 들을 음악, 빠져들 음악이 더욱 늘어났다. 이름과 지역과 공간만 다른 음악 축제가 아니라 목표와 내용이 달라 근사하고 새로운 음악 페스티벌이 등장했다. 내년에도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인천으로 두 번은 갈 수 있기를.

2024 아시안 팝 페스티벌 ⓒ아시안 팝 페스티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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