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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가 먼저 나서 대러시아 강경책 취할 이유 없다

지난 19일 조인된 북·러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 조약에서 냉전시대의 군사 동맹과 거의 비슷한 관계를 복원했는데, 이는 우리 정부의 예측에 비해 한 발 더 나아간 것이기는 하다. 특히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면 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본질적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선택일 뿐이다. 우리가 이들 두 나라의 선택에 개입할 여지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더해 미 지상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처지에서 북·러의 밀착을 비난할 명분도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물론 한·미·일 대 북·러, 혹은 북·중·러의 진영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건 우리에게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타 강대국과 달리 북한과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자칫 상황관리에 실패해 국지적 충돌로 끌려들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기와 다른 점도 있다. 과거와 달리 우리는 중국, 러시아와 모두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지 오래되었고, 경제적 교류와 협력도 활발하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 역시 우리를 단순한 '적대국'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러시아를 적대하면서 상황을 단순화시킬 이유가 없다.

북·러 정상회담 직후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곧바로 톤을 낮췄지만 말이다. 그 이후에도 대통령실의 고위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고도의 정밀 무기를 북한에 준다고 하면", 혹은 "우리가 밝힌 경고에 대해 러시아가 앞으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와 같은 표현을 들어 어떤 '레드 라인'이 있는 것처럼 발언을 이어왔다.

현실적으로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고 해서 전쟁의 양상을 바꾸긴 어렵다. 살상무기 지원은 우리 헌법과 법률이 정한 원칙에도 맞지 않다. 도리어 북·러의 밀착만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레드 라인'을 운운하는 것도 좋은 대응이 아니다. 이런 류의 금지선은 명확하게 긋기도 어렵고, 일단 상대가 이를 넘어서면 대응할 방법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제정치는 이념이나 감정을 앞세우는 정쟁의 방법으로 풀 수 없다. 냉정한 정세 분석 위에서 활용가능한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러시아를 앞에 두고 우리가 먼저 지렛대를 걷어차는 방법은 하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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