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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삶의 본질로 돌아가는 음악, 진수영 [Reflection]

진수영 Reflection ⓒCover Art 손정기 Son Jungkee

마음으로 진입하게 하는 음악이다. 하지만 마음이 들뜨고 날뛰는 순간에는 적절하지 않은 음악이다. 상승하기보다는 하강하게 하는 음악. 그 순간 들어야 할 음악이다. 연주자 진수영이 발표한 음반 [Reflection]은 사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다. 음반에 실은 다섯 곡은 올해 이른 봄 서울 용산 Plusjun의 공간 layer 7에서 열린 손정기 작가의 전시 'Reflection : 마주하는 공간'을 위해 만들었다. 그러니까 전시가 열리는 동안 이 음악들은 전시장을 떠다니고 작품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 미처 전시회에 가지 못했던 이들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음악가 진수영이 그동안 발표한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거나, 그가 혼자서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텐데 음반 덕분에 그의 작업이 휘발되지 않고 계속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 또한 그의 음악에 매료당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침묵 속으로’, ‘홀로 걷는 길’, ‘밤의 경계에서’, ‘나 혼자만의 고독’, ‘저 문 너머’라는 수록곡 제목은 모두 손정기 작가의 작품명에서 비롯되어 지어졌다 한다. 곡의 제목은 모두 유사한 태도와 상황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이 멈춰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 생각에 잠겼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만큼 깊숙이 가라앉았을 때 내리는 어둠의 어깨가 떠오르는 제목이다.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순간 같지만 수많은 정보와 네트워크로 둘러 쌓인 오늘은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침잠의 세계가 음악으로 펼쳐진다.

피아니스트 진수영 ⓒ진수영 인스타그램

악기는 대부분 진수영이 연주하는 피아노뿐이다. 진수영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미술작품을 수식하고 전시장을 채우는 음악만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음악가 진수영은 회화 작품에 준하는 별도의 창작품을 만들어냈다. 진수영이 써낸 곡들의 매력은 단정하고 깔끔한 정서와 아름다운 멜로디에서 비롯한다. 자칫 처연해지거나 감상에 빠지기 쉬운 순간들을 담아내면서 진수영은 그 순간을 관조하듯 지켜본다. 첫 곡 ‘침묵 속으로’를 끌고 가는 멜로디가 슬픔과 좌절로 침묵하지 않는 이유다. 스스로 침묵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적극적인 태도를 발현하는 음악이다. 여유와 담담함이 느껴지는 곡의 흐름은 삶의 태도로 침묵을 실행했을 때 만날 수 있는 체험의 현현이다.

진수영은 이어지는 곡 ‘홀로 걷는 길’에서도 쓸쓸함을 앞세운 감상주의 대신 적요함으로 마주하는 세계와의 조우를 보여준다. 멜랑콜리하지만 비장함과는 거리가 먼 멜로디가 천천히 이어지고, 곡의 속도가 달라질 때, 홀로 걷는 길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지나온 시간을 품는 성장과 성숙의 시간이 된다. 명징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증거다. 자신을 다독이고 다른 존재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이야기가 곡 안에 향기를 퍼트린다.

작곡가 진수영의 빼어난 면모는 ‘밤의 경계에서’로 이어진다. 곡의 초반 제시하는 테마는 밤의 시간에 흠뻑 빠진 세계의 정중동처럼 다가온다. 하루의 어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그제야 온전한 숨을 쉬게 된다. 감각은 주관적이다. 시간이 바뀌고 마음의 창을 닫으면 풍경이 달라진다. 낮에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뒤늦게 발견하고 재인식하게 되는 시간, 내밀한 자아를 만나고 다독이는 경험의 평화와 신비로움을 진수영은 음률로 포착해냈다. ‘나 혼자만의 고독’에서도 선율의 아름다움은 한결같다. 이 곡에서도 진수영은 변주를 감행하며 고독의 세계를 풍성하게 펼쳐 보인다. 애잔하게 시작하는 마지막 곡 ‘저 문 너머’에서는 다정한 멜로디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기대와 설렘, 낯섦과 수용이라는 드라마를 그려내는 곡은 음반의 끝까지 사려 깊다.

진수영 (Chin Sooyoung) - 홀로 걷는 길 (A Solitary Walk)

BGM으로 틀어두어도 좋을 음악이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음악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노래하고 쓰고 그린 이야기일지라도 계속 만들게 되는 이유는 그 세계가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고, 그 세계가 삶을 지키기 때문 아닐까. 예술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밝히는 등대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날마다 되돌아간다. 삶이 자신을 얼마나 멀리까지 밀고 가버리는지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음악 덕분에 길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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