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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저출생 예산 대대적으로 손 봐야 한다

저출생 대응 예산으로 지난해에 약 47조 원을 썼지만, 이 중 절반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곳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와 한국개발연구원(KDI)가 개최한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 방향’ 세미나에서 발표된 KDI 자체 분석 결과는 저출생 대응 예산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집행됐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KDI 자체 분석 결과 지난해 저출생 대응을 명목으로 142개 과제에 47조원을 투입했다. 이 중 저출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예산은 84개 과제 23조5천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예산 23조5천억 원의 대부분인 21조4천억원은 주거지원 예산에 쓰였다.

주거지원 예산은 저출생 대응에 관한 국제 비교기준으로 통용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족지출’에 포함되지 않는다. 넓게 보면 주거를 비롯한 온갖 문제가 저출생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저출생 대응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저출생 대응 예산으로 집행된 사업 중에는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이나 ‘학교 단열 성능 개선’, ‘청년내일채움공제’, ‘태양열 설비 지원’까지 사실상 저출생 대응이라는 명분을 막 갖다 붙인 일들이 즐비하다.

저출생 대응 예산이 부풀려져 왔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있었다. 그동안 정부 발표로 따지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투입한 저출생 대응 예산은 380조 원에 이른다. 이조차도 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380조 원을 쏟아부었다면 이렇게까지 효과가 없을 리 없다는 것도 상식적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으로 OECD 평균 1.52명과 비교해서 절반이 안 된다.

상관없는 일까지 저출생 대응 간판을 붙이고 마치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부처 예산을 확보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는 저출생 문제가 국가 비상사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좀 더 손쉽게 예산을 확보하는 수단쯤으로 취급한 결과가 오늘의 현실이다.

그나마 저출생 예산 절반은 효과적으로 쓰였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날 열렸던 세미나에서도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식되는 일·가정 양립 지원에 보다 집중해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으로 분류된 23조5천억원 중에서도 ‘양육 분야’에만 87.2%에 20조5천억원이 쓰였다.

매년 수십조 예산을 써봐야 소용없다. 절반은 별 상관없는 일에 쓰고, 그나마 상관있는 절반도 특정 분야에 편중되어서는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올 리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이름만 가져다 붙인 저출생 예산을 손보고 면밀한 정책효과를 타산해서 실제 저출생 대책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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