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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치주의 근간 흔드는 밀양 사건 가해자 사적 제재 우려스럽다

2004년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가 피해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가해자들을 응징해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사적인 제재이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종의 보복 형식의 사적인 제재는 고대 사회에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만든 ‘함무라비 법전’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이 등장한다. 구약성서 레위기에도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는 비슷한 법조문이 들어있다.

이런 사적 보복과 사적 제재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가 세워지고 법치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점차 사라졌다. 법치주의는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다. 권력을 가진 이 또는 돈을 가진 이가 법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법에 복종하는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법치주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말이 떠돌 정도로 권력자들과 돈 가진 자들의 입김에 흔들려 왔다.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면서 법만으론 정의를 실현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사적제재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심지어 유튜브를 이용해 가해자 신원을 공개하며 수익을 올리려는 이들까지 나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적 보복과 제재에 열광하는 현실은 좀 더 평등하고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적 보복과 제재를 용인하면 법치주의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결코 이런 방식으론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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