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 대통령의 영일만 시추, 국민의힘의 미래를 망칠 것이다

지난주 최대 화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 석유 시추를 지시한 사건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픽 하고 헛웃음을 짓다가 떠오른 언론계의 오래 된 전설 같은 이야기 하나를 먼저 소개한다.

1970년대만 해도 창경원의 동물 관련 뉴스는 꽤 잘 팔리는 기사였다. 그런데 1978년 3월 신아일보라는 일간지 사회면에 ‘국내 최초! 창경원 코끼리 임신 - 어미 코끼리 돌보기 초비상’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당시로는 매우 화제가 된 기사였다.

이 기사가 나가자 창경원을 출입처로 둔 타사 기자들에게 초비상이 걸렸다. 언론계에서는 낙종한 것을 ‘물을 먹었다’고 표현하는데, 코끼리 임신은 물을 먹어도 너무 크게 먹은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열이 잔뜩 받은 출입기자들이 창경원으로 쳐들어가 담당자에게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신아일보에게만 흘리면 어떻게 하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랬더니 담당자 하는 말, “코끼리가 임신했다고요? 우린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임신한 사실이 없는 게 확실하냐?”고 기자들이 다그치자 담당자는 “그건 모르죠. 교접은 가끔 하니까···. 임신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다려봐야 알죠”라고 답하더란다. 다시 기자들이 “그러면 임신 사실을 언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담당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코끼리 임신 기간이 600일이 넘어요. 덩치가 워낙 커서 임신 후반부가 돼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요. 지금부터 한 500일은 기다리셔야 확인이 가능할 거여요.”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 물을 먹은 기자들은 낙종한 기사의 사실 여부조차 500일을 기다려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는 기자들의 아우성에 창경원은 결국 “코끼리가 임신했다는 일부 보도는 절대 사실이 아니며, 창경원은 임신했다는 코끼리가 정말 새끼를 낳을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한다”는 해명 보도자료까지 내야만 했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

지불분리의 오류

내가 윤 대통령이 영일만 석유 시추를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고 픽 하고 웃은 이유가 이거였다. 기사를 보니 생산을 위한 투자는 2027년부터 시작된단다. 성공 가능성도 무지하게 낮은데, 만의 하나 석유가 쏟아져 나오더라도 구체적인 상업생산이 시작되는 시기는 2035년이란다.

와, 여기서 석유가 제대로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확인하려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코끼리 임신을 확인하기 위한 600일도 긴데, 2035년이면 차기 대통령도 아니고 차차기 대통령 때 확인이 가능하다. 어차피 지금은 확인도 안 될 거, 질러놓고 보는 건가? 어디서 못된 짓만 배워가지고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미래에 벌어질 이익을 지금으로 당겨쓰거나, 지금의 고통을 뒤로 미루는 짓은 거의 불합리할 때가 많다. 이런 걸 행동경제학에서는 지불분리의 오류라고 부른다.

할부나 카드 결제 같은 게 그런 것이다. 당장 지갑에서 돈을 꺼내 물건을 사면 돈이 사라지므로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 지불의 고통을 뒤로 미루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카드 결제를 통해 지불의 고통을 다음 달로 미루거나, 더 심하면 할부를 통해 미래의 12개월로 쪼갠다. 이러면 지금 지불해야 할 고통이 미래로 분리되기 때문에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첫 국정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2024.06.03. ⓒ뉴시스

그런데 이 현상을 지불분리의 ‘오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행태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 통장 잔고를 유지하며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는 기쁨은 당장은 마약 같은 기쁨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결제일이 다가오면 본격적인 고통이 시작된다. 카드 결제건 할부건 고통을 뒤로 미룬 것이지 없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고를 유지하며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는 기쁨에 취하면 당연히 과소비를 한다. 미래에 지불해야 할 고통은 더 커진다. 이렇듯 미래의 기쁨을 지금으로 당겨쓰고, 그 대가를 미래로 미루는 것은 전혀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 짓을 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높여볼 심산이겠지. 하지만 열심히 파도 나올까말까 한, 아니, 안 나올 확률이 훨씬 높다는 그 영일만 시추를 자기 입으로, 자기 공인 양 발표하는 행동은 국가 지도자로서 너무 비열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게 안 나오면? 고통은 어차피 10년 뒤의 일이니 지 알 바 아니고?

미래 이익을 깎아먹는다

이 행동이 비열한 또 다른 이유는 만의 하나 석유가 쏟아져 나왔을 때 누려야 할 미래 정치인들의 영광을 윤 대통령이 미리 빼앗았기 때문이다. 2035년 기적처럼 석유가 쏟아졌다고 치자. 그때 그 기쁨을 국민들에게 발표해야 할 미래 정치인의 영광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가로챘다.

나는 그래서 윤 대통령의 이런 짓이 국민의힘의 미래를 깎아먹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석유가 안 나온다면 엄청난 욕을 먹게 될 텐데 그 욕은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이 다 쳐드실 것이다.

아시다시피 1976년 박정희가 연두 기자회견에서 “영일만 부근에서 양질의 석유를 발견했다. 이 7광구에 석유가 묻혀 있을 수 있다”며 설레발을 친 적이 있었다. 가수 정난이는 ‘7광구’라는 노래까지 히트시켰다. 온 나라가 산유국의 꿈에 미친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지나?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제 7광구! 검은 진주~”라는 그 노래 가사,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코미디로 기억된다.

영일만 유전설을 직접 제 입으로 발표했는데도 왜 지지율이 기대만큼 안 오르는지 윤 대통령에게 알려줄까? 그 짓을 30년 전에 이미 한 번 박정희가 했거든. 윤석열 대통령 너님이 한 짓도 박정희가 한 짓과 똑같다.

매우 낮은 확률로 10년 뒤 석유가 터지면 그 공은 윤석열이 가로채고, 매우 높은 확률로 석유가 안 터지면 보수정당은 10년 뒤에도 온갖 욕을 쳐드실 것이다. 아주 대단한 대통령 납시었다.

지금쯤이면 보수정당의 청년 정치인들은 댁들이 왜 2년 전에 윤석열을 열렬히 지지했는지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이 말이 이해가 안 되면 목 위에 달린 건 박치기 할 때나 써야 하는 거고.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