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내일의 문을 여는 록커, 한로로의 [집]

한로로 (HANRORO) - 2nd EP : 집 (HOME) ⓒ비스킷 사운드

집은 무한한 메타포로 확장할 수 있는 단어다. 건축물이나 가정(家庭)으로 해석해도 되고, 자신의 존재를 빗대도 된다. 누군가와의 관계나 집단을 집에 비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네, 지역, 커뮤니티, 국가, 민족, 지구까지 집이라 칭해도 어색하지 않다.

2022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두 번째 EP [집]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고 있는 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떠났다는 의미다. 떠났다는 건 갈등이 심했거나, 집밖에서 실현하려는 욕망이 있었다는 뜻. 어쩌면 첫 곡 ‘귀가’의 짧은 가사처럼 “아무런 꿈도 사랑도” 없어 떠났는데, 집밖에서도 꿈도 사랑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돌아왔을 수 있다.

그런데 돌아온 집에도 평화는 없다. 첫 곡이 끝나갈 때부터 흘러나오는 사이렌 소리가 증거다. 집이 무엇을 가리키든 누군가 쓰러지거나 불이 났을지 모른다는 암시는 “텅 빈 방”, “죽어버린 꿈”, “활활 타오르는 나의 집”, “바삐 죽어가는 나의 집”이라는 노랫말로 구체화된다. 이어지는 타이틀 곡 ‘ㅈㅣㅂ’은 록킹한 사운드와 다급한 음색으로 집이라는 상징 공간에 닥친 위기를 증언한다. 어쩌면 그 위기 때문에 황급히 돌아왔을지 모르겠다.

가수 한로로 ⓒ Studio MOS


[집]의 수록곡 일곱 곡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의 싱글을 모아서 만든 음반이 아니다. 집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먹이사슬’, ‘놀이터’, ‘재’, ‘생존법’, ‘보수공사’로 이어지는 일곱 곡은 조금씩 다른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EP [집]을 연결된 이야기로 읽게 한다. ‘먹이사슬’은 집이 존재하는 현실의 증언이고, ‘놀이터’는 집을 떠나있던 시절로 돌아간 고백으로 들린다.

이 음반에서 한로로의 목소리는 강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다른 음색의 아우라를 품고 있지 않다. 대신 맑고 여린 목소리는 노래마다 보편성과 진실함과 간절함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진동욱, 이새, 유병현, 배도협이 함께 다듬은 곡들은 록킹한 사운드나 슬로우 템포의 속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노랫말의 서사를 극화한다. 보컬이 끌고 가는 것처럼 보였던 ‘놀이터’가 중반 이후 록킹한 사운드를 더해가며 분출하는 순간은 연약해 보이는 노래 속 소녀 내면의 강렬한 의지를 표출하는 이 음반의 절정이다. 그 의지는 다음 곡 ‘재’에서 “나의 꿈은 여전해 초원을 구르다 / 만개할 다른 꿈의 거름이 되는 것 / 너의 손을 잡을게 방금 피어난 / 또 다른 꿈이 있어”로 연결된다. 집은 타서 무너져버리고 재만 남았지만 그는 꺾이지 않았다.

MV 한로로 (HANRORO) - 보수공사 (Restart!)

록은 위기 상황을 표현할 때도 효과적이고, 위기를 타개하려는 의지를 표출할 때도 탁월하다. 타이틀 곡 ‘ㅈㅣㅂ’에서 사운드를 쌓고 연출해 “활활 타오르는 나의 집”, “바삐 죽어가는 나의 집”을 소리로 현현하게 할 때 한로로의 노래는 소리의 드라마로 명쾌해진다. 먼저 적었듯 ‘놀이터’의 후렴 부분이나 ‘재’에서도 그 같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순간 엄습하는 카타르시스는 록 언어를 충분히 이해한 음악가의 선물일 뿐 아니라, 곡과 음반을 일관된 이야기로 쌓은 예술가가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대신 풀어주는 해소의 과정이다.

이 음반을 들을 때는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위기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분투 드라마로 읽으면서, 그 해결의 드라마를 소리로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노랫말의 서사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멜로디, 비트, 사운드의 집합은 젊은 여성 록커 한로로에 주목해야 할 근거다. 그가 써낸 이야기는 위기가 가득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음악으로 답하려는 예술가 한로로에게 귀 기울여야 할 당위다.

“난 너를 사랑”한다 말하고, “넌 나를 사랑해 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심상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그 마음 없이는 어떤 것도 지킬 수 없고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곡 제목이 ‘보수공사’라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사라져가는 자들 여기로 모여라”라는 노랫말은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패배적으로 주저 않아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랄한 표출이다. 고 신경림의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했던 진술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런 노랫말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로로 (HANRORO) EP Album '집'

노래는 상처와 패배의 진술로만 기능하는 게 아니다. 어떤 노래는 좌절감을 날려버리고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의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시공간 속에서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다. 예술이 위대해질 수 있는 이유다. 예술가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주인공이 되는 힘이다. 젊은 음악인들, 특히 록 사운드를 구사하는 여성 음악인들 가운데 한로로의 이름은 더 높아져야 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