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단내나는 삶] 밥이 하늘이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진행한 남성들을 위한 요리교실인 ‘남자들의 부엌’ ⓒ꿀잠

작년과 올해, 나는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남자들의 부엌’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남자들의 부엌’은 간단히 말하면 요리교실이다. 이 ‘남자들의 부엌’을 진행하는 날, 나는 일찌감치 꿀잠에 가서 꿀잠 식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주방 담당자가 정성스럽게 다양한 음식을 만드느라 손놀림이 바빠 보인다. 네댓 명이 한 끼로 먹기에는 양으로도 많고 가지 수도 많아 보인다. 무얼 그리 열심히 만드는지 물었더니,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해서 연대활동을 해 오던 사람들 중 몇 명이 암 투병을 하고 있어서 그들에게 보낼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미 몇 차례 음식을 만들어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날씨가 더워지니 상하지 않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았다.

노동문제와 같은 사회문제는 우선적으로 제도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활동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꿀잠은 이런 매우 사적인 문제일 것 같은 사안에 대해 지극히 인간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 점이 나에게 감동이었다. 사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들의 사적인 어려움과 관심사가 나누어지고 모여지면 정치적 행위로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적인 사안에 무관심하며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나 정책은 삶과 동떨어질 수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의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꿀잠의 이런 사적인 접근은 또 있다. 꿀잠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정기적이긴 하지만 꾸준히 ‘꿀밥 나눔’을 하고 있다. 이 ‘꿀밥 나눔’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로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자들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이다. 어떤 경우에는 꿀잠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투쟁 현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굴뚝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가들이 와서 꿀잠의 주방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어 나르기도 했다. 이렇게 꿀잠의 주방은 모두에게 늘 열려 있었다. 이런 ‘꿀밥 나눔’은 밥이 생명이 되는 연대였다.

자료사진 ⓒ기타

요리교실인 ‘남자들의 부엌’도 이 생명의 연대와 관계성을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이 요리교실은 요리를 배우고 가족과 지인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천주교회의 수도자가 무슨 대단한 요리 실력이 있다고 요리교실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요리를 매개로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반응을 성찰하는 관계 개선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에게 실습이라는 숙제가 주어진다. 우리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이루며 산다. 우리는 이런 관계 안에서 이어짐에 대한 배고픔과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음식으로 대표되는 밥은 이 배고픔과 갈망을 채워준다.

지난 5월 28일 ‘3기 남자들의 부엌’ 마지막 시간이 있었다. 우리들은 꿀잠 식구들, 주변의 노동안전 단체 활동가, 그리고 참가자의 가족 몇 명을 초대했다. 참가자들이 모두 이 손님들을 환대하기 위해서 식탁을 꾸몄고 음식을 배우며 만들어 손님들께 내 놓았다. 식사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한참을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치우는 일까지 하며 마무리를 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면 웃고 떠드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고 이는 우리 인간의 삶에 중요한 일부이다. 이 중요한 일부가 관계 안에 존재할 때 우리는 온전한 인간으로 산다.

밥은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를 감동으로 깊게 물들인다. 밥의 나눔은 위로가 되고 생명을 준다. 또 밥은 물리적으로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지만 관계의 이어짐에 대한 배고픔도 채워준다. 그래서 밥은 하늘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계 안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행위이다. 거꾸로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는 당연히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밥을 나누는 행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이고 하느님을 자신 안에 품는 행위이다. 밥은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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