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 넘은 이스라엘, 미국은 대학살에서 손을 떼야 한다

가자지구 라파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타버린 텐트와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스라엘군의 라파 공습으로 어린이와 여성 포함 최소 4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5월 26일 이스라엘이 라파의 “안전지대”에 있던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을 공격해 최소 45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당했다. 그들은 텐트 안에서 산 채로 불타 죽었고 머리가 절단된 아이의 시신도 있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5월 24일 라파 공격 중단을 명령한 지 이틀 만이다. 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5월 20일 네타냐후 등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한 지 6일 만이다. ICJ가 가자지구에 휴전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ICC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도 네타냐후를 구속시키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 무기까지 공급해 가며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라파 학살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존 커비는 28일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지상전에 돌입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탱크 한 대, 장갑차 한 대 정도로는 새로운 지상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거론할 만한 (대이스라엘) 정책 변화는 현재로서는 없다.” 이스라엘군 수천 명과 탱크가 라파에 진입하고, 6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학살되고(그중에는 여성과 어린이가 많다), 100만 명 이상이 피란을 가야 했는데도, 미국은 대규모 작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라파 학살을 계기로 미국에 이스라엘과의 공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트루스아웃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Rafah Invasion Was Once Biden’s “Red Line” — But Israel Continues to Cross It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라파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라고 명령한 지 이틀 만에 이스라엘이 라파의 난민 수용소를 공습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십 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이 자국의 명령에 따라 라파 북서부의 ‘지정 안전지대’로 대피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지난 26일 밤에 폭격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ICJ의 공격 중단 명령 이후 이미 라파를 수십 번 폭격했다. 불과 이틀 사이에 말이다. 하지만 일요일의 공격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유엔난민기구(UNHCR) 학교 뒤편에 있는 난민 수용소를 표적으로 삼았고, 플라스틱 텐트의 불길 속에서 산 채로 불에 타 죽은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 폭격으로 수용소의 모든 텐트가 전소해 249명이 부상을 입고 45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드론의 공격으로 쿠웨이트 병원 입구에서 사상자를 이송하던 의료진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쿠웨이트 병원은 그 이튿날 문을 닫았다)

머리가 없는 아이, 불에 탄 아이들의 시신, 불길을 피해 미친 듯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여성과 아이들.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는 그날의 사진과 영상은 차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잔인해지고 있다.
이 잔혹한 참상에서 그 누가 회복할 수 있겠는가. 죽은 아기를 애도해야 할까, 고아가 된 아이를 위해 눈물 흘려야 할까. 불구가 된 아이를 위해 비명을 질러야 할까, 아니면 사랑하는 아이를 수의로 감싸야 했던 부모를 위해 소리를 지를까.

이스라엘은 처음에 이번 공격이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마스 근거지를 표적으로 삼아 하마스 고위 관계자 두 명을 사살했다고 말했지만,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번 공격을 ‘비극적인 사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수용소에 미국 폭탄을 투하하기 전 자발리아를 밤새 폭격해 불바다로 만들었고, 가자지구 북부와 가자시티를 폭격해 팔레스타인 난민 160명을 살해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는 이스라엘 점령군이 계속 주택 지구를 파괴하고 건물 잔해 아래 수많은 시신을 묻고 있다. 알 팔루자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물통을 채우는 팔레스타인인을 향해 발포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스라엘의 라파 학살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널리 비난받고 있지만, 미국은 명확한 비판이나 분노를 표방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정권이 하마스 관계자의 두 명의 죽음을 강조하고 민간인을 보호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할 것을 이스라엘에 촉구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ICJ 판결을 무시하고 이런 학살을 자행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방임과 무기 공급은 미국이 가자지구 대학살에 얼마나 깊이 연루돼 있고, 참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참극에 대한 책임이 미국의 바이든 정권에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의 포위와 봉쇄, 기아 정책, 인종 청소에 대한 책임, 그리고 이스라엘의 병원, 진료소, 학교, 대학, 도서관, 주거용 건물, 유적지 및 기반 시설의 대량 파괴에 대한 책임이 미국의 바이든 정권에 있다. 모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휴전 결의안에 혼자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기권한 바이든 정권은 팔레스타인 국민이 모든 것을 몇 번이나 잃게 만든 주된 조력자이다.

우리는 바이든이 (백악관 대변인도 인정했듯) 존재하지도 않는 참수된 이스라엘 아기들의 사진을 봤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바이든이 실제로 존재하는 머리 없는 팔레스타인 아이의 사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왜 텐트에서 산 채로 불타 죽는 아이들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얼마나 더 많은 야만적인 만행이 일어나야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재정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거의 8개월 동안 매일 같이 이런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탱크에 깔린 아이들, 죽은 가족을 품에 안고 흐느끼는 어머니, 잔해 아래에서 아들과 딸을 파내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말문 막히게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대학살로 인해 바레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요르단, 튀르키예, 칠레, 콜롬비아, 차드, 온두라스 등 수많은 국가가 자국 대사의 귀국을 명령하고 이스라엘에 분명한 분노의 신호를 보냈다.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대사관 개설을 명령하기도 했다.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원한다며 ICJ의 판결은 국제법에 따라 구속력이 있어 신의에 따라 준수돼야 한다고 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학살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외교 정책 책임자 조셉 보렐도 ‘끔찍하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니스는 X에 올린 글에서 ‘#가자학살은 외부 압력 없이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이스라엘에 경제제재와 사법 제재를 가하고, 협약을 파기하며, 이스라엘과의 파트너십, 무역, 투자를 중단함은 물론 이스라엘을 국제 포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국경없는의사회도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며 이번 학살이 ‘가자지구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자지구의 230만 인구 중 약 150만 명이 현재 라파에 있다고 추정된다. 그 많은 민간인이 이스라엘의 명령에 따라 가자지구 북부 지역과 가자시티를 떠나 이집트 국경에 가까운 가자지구 최남단의 라파까지 피난 온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식량, 식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바다에서 쏟아지는 폭탄에 매일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143개국 명단에 합류한 스페인, 아일랜드, 노르웨이의 외무장관도 일요일의 학살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스라엘이 ICJ의 명령을 준수하고 라파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한 카츠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답변은 이들 국가가 ‘유대인에 대한 학살을 선동하는 공범’이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3개국의 발표에 대한 보복 조치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세금 이체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에 체결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세금을 징수하고 그것을 매달 PA에 이체해 왔다.

이스라엘은 또한 ICJ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기구인 UNRWA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가자지구 및 동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중동의 난민 캠프에 있는 5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에게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대 구호 기관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

이스라엘은 UNRWA를 와해하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1월에는 UNRWA가 하마스 공격에 연루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후 이스라엘이 일부 기관 직원들에게 하마스와의 연관성을 거짓으로 인정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미국, 영국,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이스라엘의 허위 고발로 중단됐던 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재개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로 36,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0월 7일의 하마스 공격으로는 거의 1,200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고 250명이 인질로 잡혔다. 현재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수는 132명, 재판이나 기소 없이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은 3,424명이다.

뉴욕타임스의 객원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거칙 같은 언론인이 어떻게 이번 주에도 ‘21세기 최대의 대중적 망상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 주류의 일부에서는 마침내 현재 대학살의 공포를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공동 창립자이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전 대표인 유대인 아리 네이어는 최근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으로 대학살을 행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CNN에 초대돼 그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스라엘은 라파를 폭격해 더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살해하고 다치게 하고 있다. 바이든은 과거 이스라엘이 라파를 공격하면 이스라엘에 공급하는 무기를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이 그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의 양심 있는 사람들이 대학살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미국이 가자지구 대학살에서 손을 뗄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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