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라파 공격하는 이스라엘, 레드라인 넘지 않았다는 미국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마지막 보루라 할 라파까지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전 세계가 규탄하지만 이스라엘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며 옹호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가자지구 남부의 국경도시 라파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해 이주한 민간인들이 모인 최후의 피난처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소통을 빌미로 라파에 대한 군사작전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표출하자 서방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부른다며 강력 반대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도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라파 공격을 중단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28일 다수의 이스라엘군 탱크가 라파 중심가에 진입했다는 목격담이 전해지고, 탱크 포격으로 희생자가 나왔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지상전이 시작됐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앞서 26일에는 라파 서부 탈 알술탄 난민촌을 폭격해 참극을 빚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난민촌 폭격 직후 “비극적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지상전 개시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학살을 감추기 위해 중동은 물론 서방언론의 취재까지 강력하게 제지하고 있다.

지난 8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설 경우 공격 무기와 포탄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레드라인 설정이다. 그 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에도 거듭 레드라인을 넘었고, 그 결과 라파에서의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말을 바꾸며 발뺌하고 있다. 28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탱크 한 대, 장갑차 한 대 정도로는 새로운 지상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라파를 포위한 이스라엘군이 전투작전을 전개하고 있음을 시인했지만, 미국은 사실상 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의 하마스 기습공격을 명분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은 이미 비교 불가한 희생을 가져왔다. 더욱이 집을 잃고 삶의 기반이 파괴된 피란민을 대상으로 벌이는 군사작전은 보복과 살육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학살을 용인함으로써 그들이 말하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선택적인지 웅변한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정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묵인하면서 누가 누구에게 테러를 비난하고 책임을 지울 수 있겠는가.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은 더 많은 물리력을 쥐고 더 많은 민간인들을 희생시킨 이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미국인과 이스라엘인만큼 팔레스타인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학살을 당장 중단해야 하는 당연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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