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패가 보이는데도 영국 보수당이 조기 총선을 결정한 이유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각) 런던 총리 관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총선 일정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수낵 총리는 7월 4일에 조기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보수당의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7월 4일 총선을 실시하기로 발표했다. 이건 흥미로운 선택이다. 7월 4일은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날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수낵이 왜 이날을 골랐는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미국 영주권자였고 이후 골드만삭스 투자 은행과 몇몇 헤지펀드사에서 근무했다. 그의 아내 악샤타 머티는 다국적 IT 기업인 인포시스의 창업자인 인도의 억만장자 N.R. 나라야나 머티의 딸이다. 악샤타 머티는 아버지 회사의 주식을 수억 달러 상당 가지고 있고, 그와는 별개로 리시 수낵도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의 마지막 총선은 지난 2019년 12월에 치러졌다. 관례대로라면 5년이 지난 올해 12월쯤에 총선이 치러져야 한다] 영국 신문들은 수낵이 7월 초에 치러질 조기 총선을 발표한 것을 엄청난 도박이라고 보고 있다. 집권 보수당이 1년 넘게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제1야당 노동당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평균 20% 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수낵의 승리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노동당과의 격차는 좁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수당은 13년간의 노동당 집권에 마침표를 찍으며 2010년부터 집권하고 있다. 보수당이 집권한 14년은 정파 간의 극심한 분열로 당내 온건파가 고립되고 극단적 보수주의와 초국가주의 세력이 부상한 시기였다.

현재 수낵 정부에서 외무장관으로 복귀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사임한 2016년 6월 이후 8년 동안 무려 5명의 총리가 영국을 이끌었다. 테리사 메이가 2019년까지, 보리스 존슨이 2022년까지, 그리고 엘리자베스 트러스가 2022년 49일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단임으로 총리를 역임했다.

브렉시트 결정 당시 수낵은 출세를 꿈꾸는 젊고 야심 찬 정치 초년생이었다. 그런데 국민의 여론이 어떻든 수낵은 자신감을 뿜어낸다. 금융계에서 그랬듯, 그의 상승세는 정치계에서도 가히 폭발적이었다. 2015년 처음 의원으로 선출됐고, 3년 뒤에는 차관, 2020년에는 재무장관, 2022년에는 총리로 선출됐다. 이런 행운과 특권을 누린 공인은 드물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환경을 보면 보수당의 당 대표와 총리로서 수낵의 시대가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수낵은 왜 관례를 깨고 거의 6개월 앞당겨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을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년이 넘도록 야당인 노동당이 약 20% 포인트로 꾸준히 앞서는 상황에서 수낵과 그의 측근이 앞으로 몇 달 동안 그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영국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고,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높은 물가상승률도 떨어지고 있다는 경제 지표가 발표됐고, 발표 직후에 수낵이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조금이라도 희소식이 있을 때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수낵은 그동안 민심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위협하는 당내 극우 세력에 굴복해 국내법과 국제법을 위반하거나 실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점점 기괴한 정책을 발표해 왔다. 수낵이 국민이 별 관심이 없는데도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까지 1994년 대학살로 잘 알려진 르완다의 망명 신청자를 추방하는 데에 가장 많은 힘을 쏟은 것도 보수당 대표직과 총리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총선에서 승리하면 즉시 보수당의 르완다 난민 추방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고 이미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수낵과 보수당에 대한 국민의 태도는 냉담하다. 지난 4월 18일 발표된 입소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수낵에 대한 만족도는 1994년의 존 메이저와 2019년의 제레미 코빈에 맞먹는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다. 업무 수행에 대한 만족도 물음에 16%가 만족, 75%가 불만족한다고 답해 수낵이 순평가 –59점을 기록한 것이다.

정당별 지지율은 노동당 44%, 보수당 19%, 개혁 영국당 13%, 자유민주당 9%, 녹색당 9%이었다. 보수당의 19%는 입소스가 1978년 정기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수낵이 이끄는 보수당이 7월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1% 미만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보수당이다. 346명의 보수당 의원 중 거의 80명이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참패가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7월 총선은 6월 14일(한국시간)부터 7월 14일까지 열리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그러니까 유로 2024 기간에 실시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수낵이 3년 만에 열리는 이 대회를 이용하려 도박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도박이 성공해 수낵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