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소영의 교사생각]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5월 살아남기

스승의 날은 교사 때리는 날?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5월의 끝자락이다. 1학기 후반 레이스가 펼쳐지며 학교 활동이 본격화되는 5월은 그 자체로도 지치기 쉽지만, 특히 그 정점에 있는 ‘스승의 날’로 인해 더욱 지친다.

부처님 오신 날과 겹쳐 조용히 넘어가나 싶었던 올해도 그럴 수 없었다. 말도 어려운 ‘스승’ 대접을 원하는 교사가 도대체 어디 있다고, 윗선에선 그놈의 ‘청렴 의무’ 운운 청탁금지법 관련 메시지를 결국 교사들에게 보내고야 만다. 이맘때쯤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교사의 범죄 뉴스는 올해도 어김없었다. 여기에 급기야 드라마에서까지 현실을 왜곡하며 교사를 권위주의적이고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 댄다. 교사로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난해 분노로 일어났던 교사들의 분출 이후 처음 맞는 스승의 날 풍경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들이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원초교 이영승 교사 사망 사건 관련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주장하며 전면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 교사는 호원초교에서 근무하던 지난 2021년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이 교사가 생전에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경기도교육청은 작년 9월 해당 학교 학부모 3명에 대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이 교사가 숨진 배경을 규명하기 ⓒ뉴스1

한결같은 교사 우롱

지난해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 이후 교사의 처지는 나아지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교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고 있을까? 인력과 재정 투입 없이 시행하려는 교권 보호는 거북이걸음이고, 교사를 무시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시선은 여전하다. 오히려 정부와 각종 기관은 교사의 의견은 묻지 않은 채 공교육을 뒤흔드는 각종 정책을 남발하며 교사를 우롱하고 있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일어난 일만 살펴보자.

4월, 교육부는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역량 강화 지원방안’을 발표했고, 김진표 국회의장은 임기 말 ‘디지털 기반 공교육 혁신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디지털 기반 교육으로 공교육 혁신을 이루겠다는데, 그 핵심 방안으로 교사 연수를 강화하겠단다. 교사 연수는 만병통치약처럼 신묘하구나. 게다가 연수 잘 듣는 교사에게 성과 보상을 확대해주겠다니 공교육 혁신이 참 쉽다. 국회의장이 발의한 특별법안은 디지털 교과서 사업에 학생과 교사의 학습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세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을 민간단체에 위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에듀테크 업체가 학교에 본격 진출할 길을 터주겠단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학교는 몇 년 동안 효과를 알 수 없는 디지털 교과서의 실험장이 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교사 의견 수렴은 전혀 없었다.

마찬가지로 4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초등 저학년 통합교과에서 체육 교과를 분리해 독립시키고, 중학교에서 스포츠클럽 시수를 확대하는 교육부 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도 교사들의 의견 수렴은 전혀 없었다. 절대다수의 초등교사들은 저학년 체육교과 분리에 반대하고, 중학교 교사들은 스포츠클럽 시수 확대에 반대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교육부와 국교위는 도대체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발표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교사를 패싱하고 일사천리로 교육과정에 손을 댄 것인가? 어떤 이익집단의 입김이 없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여기에 교육부는 늘봄학교 업무를 총괄하는 늘봄지원실장에 임기제 교육연구사를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과 돌봄을 분리하라는 교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모든 일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일어났다. 지난해나 올해나 교사를 우롱하는 모습은 참 한결같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다. 검찰은 현장체험학습 중 교통사고가 나도 인솔 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인솔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 현장체험학습의 계획 변경을 요청하면 학부모는 교사를 직무유기와 아동학대로 고발한다고 협박한다. 경찰은 이미 순직으로 인정된 故이영승 호원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피소된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 전원이 혐의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교사는 무엇에 의지해 교육현장을 지킬 수 있을까? 실로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교사를 먼저 생각하는 정권은 없다

교사 우롱에는 이처럼 국가기관의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맛이 쓰다. 하지만 교사를 교육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려고만 하는 건 윤석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전 정권에서도, 그 이전 정권에서도 교사를 진정 교육의 주체로 대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교육의 상품화를 전면화한 5.31 교육개혁(?) 이전에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이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교사를 먼저 생각해주는 선의의 정권은 없다. 만약 있었다면 교사들이 아직까지 정치적 천민 신세이겠는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교조 창립 35주년 전국교사대회’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등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5.25. ⓒ뉴시스

권리와 권한을 찾는 건 험난한 여정이다. 교사들이 현실의 장벽을 넘어 단결해 싸울 때야만 교사들의 권리와 권한이 확대되었음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준다. 전교조 창립부터가 그러하다. 그러니 우리 힘을 믿고 가는 수밖에. 오욕의 세월을 끝내려면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한다.

5월은 전교조 창립기념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가 스스로 의지할 수 있도록 모이는 틀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엎드려 절 받기나 생색만 내는 스승의 날이 아니라 전교조 창립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5월을 살아낸다. 교사 우롱의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5월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 푸석푸석해진 마음에 로션을 발라 힘을 내고 전국교사결의대회로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러 간다.

편집자주

이 글은 교육희망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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