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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일 만에 ‘해외직구 금지’ 철회, 이런 정부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정부가 발표 사흘 만에 ‘안전 인증 없는 해외직구 금지’ 추진 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2차장은 19일 “국내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직구를 차단·금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물리적으로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이 정책을 검토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조사를 통해 위해성이 확인된 특정제품에 한해 직구를 차단하겠다는 선별금지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불과 3일 전인 16일 국무조정실 발표자료에 따르면 “국민안전·건강 위해성이 큰 해외직구 제품은 안전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가 금지된다”고 명시했다. 누가 봐도 KC인증을 전제로 한 전면금지에서 위해성 검사를 통한 선별금지로 말을 바꾼 것이 명백하다. 브리핑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국민들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거냐’고 물었고, 2차장은 “갑자기 다음 달에 80개 품목의 직구를 사전 금지·차단하겠다는 것은 공무원으로서는 생각하기가 힘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해외판매자에게 KC인증을 강제하려면 현행 어린이제품법과 전기생활용품안전법 등의 개정이 불가피하다. 지금 여야가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해도, ‘다음 달 금지’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안전과 건강 위해성 조사를 통한 선별 차단도 물리적으로 당장 어렵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3년도 알리, 테뮤 등 중국의 온라인플랫폼 통관물품 건수는 8881만5000건이다. 전년(5215만4000건)보다 무려 70.3% 늘어난 수치이니 지금도 늘고 있을 것이다. 평택항이 업무 마비 상태가 된 지 오래고, 실제로 평택세관 직원 1명이 하루 평균 12만건이 넘는 제품을 통관한다고 한다. 정부 정책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통관 인력과 장비 보완이 우선이다. 이것은 법 개정 없이도 당장 착수할 수 있다.

정부 발표가 오락가락 하는 이유는 여론에 따라 정책기조를 바꾸고 이른바 ‘한건주의’가 정책 추진에 자리를 잡은 탓이다. 정권의 정통성과 정치철학이 부재할수록 이런 일이 잦지만, 엄밀히 말해 한건주의는 투기적 성격이 짙다.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이런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 정부 정책은 ‘국민이 변화를 체감하도록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제시한 ‘일 잘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국정비전의 첫대목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문제를 자꾸 만들어내는 일은 2000명 의대 증원 문제에서 이미 충분히 겪고 있다.

중국발 저가 상품의 공세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 국내 산업 보호 등에 대해 정부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여러 문제를 동시에 고려하여 정밀하게 처리해야 성과를 낼 수 있고 국민과 기업의 신뢰도 제고된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부를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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