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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세사기 피해 8번째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며 사회와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남긴 명언이다. 지난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전세사기 피해자의 사연을 봐도 그렇다. 너무도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어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로서 큰 자괴감을 느낀다.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다, 억울하고 비참하다고 말한 고인은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라며 유서를 통해 항변했다.

전세사기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은 2019년 전세보증금 8400만원을 주고 대구 남구의 한 다가구주택에 입주하게 된다. 그러다가 2024년 초 살던 건물에 근저당이 잡히게 되는데 보증금 반환 후순위 임차인인데다 소액임차보증금 기준(6천만원)도 넘겨 전세보증금을 단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이후 고인은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한두 가지 요건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 등'으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사망한 당일까지 임대인이 월세를 안 냈다고 인터넷 선을 잘랐다고 한다. 고인이 느꼈을 모멸감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구제의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니다. 지난해 6월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되었지만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고인처럼 회수 방법에 한계가 있는 사각지대가 많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선구제 후조치였다. 피해자의 진세보증금 일부를 정부기관이 우선 돌려주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이를 가로막았다. 재정 부담과 다른 피해와 형평성 문제를 들면서다. 그러는 사이 대구에서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8번째 죽음이었다. 고인이 가슴을 부여잡고 세상을 뜨고 나서야 세상은 반응했다. 국토교통부는 고인을 '피해자 등'이 아니라 '피해자'로 인정했다. 하루가 지난 2일에는 야당 주도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었다. 전세사기 혐의 임대인에게 구속영장도 청구되었다. 모두, 죽고 나서야 벌어진 일이다.

만시지탄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어지는 죽음을 막을 책임이 있다. 막을 방법도 있다. 더 이상의 직무유기로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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