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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을 도저히 말로 이길 자신이 없어졌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했다. 직업이 기자인지라 어쩔 수 없이 생중계를 지켜봤는데, 진짜 끝까지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어찌나 당당하게 자화자찬을 늘어놓던지 하마터면 “어이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고 감사 인사를 올릴 뻔 했다니까?

동양보다 상대적으로 논리학이 발달한 서양 사회에서는 비논리적인 대화의 대표적 사례로 논 세퀴터(Non Sequitur)를 든다. 라틴어여서 매우 생소한 단어인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완전히 엉뚱한 결론을 내는 태도’를 뜻한다. “사과가 빨갛게 잘 익은 걸 보니 새 휴대폰을 사야겠어요” 혹은 “나는 피자를 좋아하니까 노트북을 사야겠어요” 뭐 이런 태도를 말한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보고 “윤석열 정권의 2년은 완전히 틀렸다”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을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2년 동안 해온 국정 운영의 방향은 참 맞는 길이었어요” 이런 결론을 도출한다. 도대체 뭐냐? 신개념 논리학이냐?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라는 책이 있다. 19세기를 빛낸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05.09. ⓒ뉴시스


내가 감히 쇼펜하우어에게 직접 묻지 않아서 정확한 진의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에 나온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은 매우 기괴하다. ‘저렇게 토론을 하면 진짜 상대방을 개빡치게 할 것 같은데?’라는 전술이 줄줄이 나열돼 있다. 읽다보면 ‘쇼펜하우어가 뭘 비꼬려고 이런 방법을 제시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진짜 이 기괴한 방법이 토론에서 상대를 이기는 전술이라고 믿었다. 한 마디로 논쟁이나 토론에서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논리정연한 사고나 매너 있는 토론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개빡치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좀 길긴 한데, 위대한 철학자의 유산을 음미한다는 차원에서 38가지 기술을 모두 살펴보자.

요령1 확대해석하라
요령2 동음동형이의어를 사용하라
요령3 상대방의 구체적인 주장을 절대화하고 보편화하라
요령4 당신의 결론을 상대방이 미리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
요령5 거짓된 전제들을 사용하라

요령6 은폐된 순환 논증을 사용하라
요령7 질문 공세를 통해 상대방의 항복을 얻어 내라
요령8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요령9 상대에게 중구난방식의 질문을 던져라
요령10 역발상으로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라
요령11 낱낱의 사실들에 대한 상대방의 시인을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시인으로 간주하라
요령12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유리한 비유를 재빨리 선택하라
요령13 상반되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제시하여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라
요령14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라
요령15 안개 작전을 사용하라

요령16 상대의 견해를 역이용하라
요령17 미묘한 차이를 이용하여 방어하라
요령18 논쟁의 진행을 방해하고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라
요령19 논쟁의 사안을 일반화하여 그 부분을 공격하라
요령20 서둘러 결론을 이끌어 내라
요령21 상대방의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서라
요령22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요령23 말싸움을 걸어 상대로 하여금 무리한 말을 하게 하라
요령24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
요령25 반증 사례를 찾아서 단칼에 끝내라
요령26 상대방의 논거를 뒤집어라
요령27 상대가 화를 내면 바로 거기에 약점이 있는 것이다
요령28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
요령29 상대방에게 질 것 같으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라
요령30 이성이 아닌 권위에 호소하라
요령31 당신의 말은 형편없는 내 이해력을 넘어서는군요
요령32 상대방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 속에 넣어라
요령33 그것은 이론상으로는 옳지만 실제로는 거짓이다
요령34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요령35 동기를 통해 상대방의 의지에 호소하라
요령36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
요령37 상대가 스스로 불리한 증거를 대면 그쪽을 공격하라
마지막 요령 -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

이래서 윤 대통령을 토론에서 이길 수 없다

놀랍지 않은가? 진짜 꼭 누군가를 설정해놓고 설명하는 것 같은 기술들이다. 특히 주황색으로 칠한 부분은 내가 보기에 ‘와, 이건 진짜 윤석열 이야기인데?’ 싶었던 대목들이다. 요령24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와 요령36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는 대목은 마치 이번 기자회견을 쇼펜하우어가 본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더 웃긴 대목이 있다. 이게 1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진즉 했다면 130석”…尹 회견에 안도하는 與, 현안에는 “아쉽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이쪽 사람들이 단체로 실성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따위 기자회견을 미리 했으면 총선에서 130석이었다고? 게다가 이 기자회견을 듣고 안도씩이나 했다고? 이 사람들이 진짜 무언가를 내려놓은 건가? 여기서 무언가는 ‘개념’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민심을 못 읽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빠가사리가 아닌 한 어찌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정쟁을 멈추고 함께 일하라는 것이 민심”이라는 헛소리를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상대를 개빡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자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결극 나는 이번 기자회견을 보고 윤 대통령을 말로 이길 방도가 도저히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윤 대통령을 토론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말은 앞으로 남은 그의 임기 3년도 매우 암울할 것임을 뜻한다. 실로 우울한 시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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