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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의 지정학 산책] 미국의 대이란 전략 : 브루킹스 리포트와 서아시아 신질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9년 랜드연구소의 기념비적인 보고서 ‘Overextending and Unbalancing Russia(러시아를 과대확장하고 균형을 무너뜨리기)’을 읽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보고서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쟁을 ‘유도’했다고 말하면 이들은 대개 이를 무슨 음모론과 연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2009년 나온 브루킹스연구소의 보고서 ‘Which path to Persia?(어떤 길로 페르시아로 갈 것인가? 미국이 대이란전략의 제 옵션)’ 역시 미국의 대이란 나아가 서아시아전략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선 그 목차만 보더라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드러난다. 미국의 대이란 전략 옵션은 이런 것이다.

브리킹스 리포트 ‘Which path to Persia?’(어떤 길로 페르시아로 갈 것인가? 미국의 대이란전략의 제 옵션. 2009) 표지와 목차 ⓒ필자 제공

1. 외교적 옵션(이란을 포기하게 만들기Dissuading)
1) 이란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하기 (설득)
2) 이란을 ’꼬시기tempting‘ (관여Engagement)

2. 군사적 옵션(이란의 무장해제Disarming)
1)이란 침공
2) 이란 공중폭격
3) ’비비Bibi에게 맡기기‘: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허용하거나 또는 고무하기

3. 레짐체인지 (이란을 전복시키기Toppling)
1) 대중봉기지원(벨벳혁명)
2) 이란 내 소수파와 반대세력지원(반란 조장)
3)반정부 군부지원(쿠데타)

4. 봉쇄(이란을 억제하기Deterring)

5. 결론: 제 옵션을 연결해 통합적인 대이란전략 만들기


제목만 봐도 미국의 대적성국 대응전략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능한 모든 선택 옵션들이 교과서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미국의 수많은 싱크탱크들이 할 일 없이 노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잘 쓴(!) 레퍼런스급 보고서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지금까지 근 40년이 넘게 미국의 ‘철천지원수’다. 미국이 결코 이를 잊을 리 없다. 미국은 이란 침략과 전복의 기회를 근 반백 년 동안이나 노려왔다. 사실 광주학살은 1979년 이란혁명의 유탄을 맞은 경우다. 대선을 앞둔 당시 카터 대통령은 한국이 ’제2의 이란‘이 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하기 위해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위 보고서의 이란 자리에 또 다른 적성국 그 어디라도 예컨대 북한을 대입하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전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컨대 햇볕정책은 ‘꼬시기’ 즉 관여에 해당되고, 영변원자로 폭격계획은 군사적 옵션이라 할 것이며, 북한인권 문제 삼기는 레짐체인지의 수법이라 할 만하다. ’외교-군사-전복-봉쇄‘ 이는 미국의 대적성국 대응전략의 공식이다.

지금의 이란-이스라엘 군사적 충돌은 군사적 옵션 중 ‘비비에게 맡기기’에 해당된다. 비비가 누군가? 바로 네타냐후의 별명이다. 그는 2009년에도 이스라엘 총리였다. 그런데 보고서 본문에는 4가지 하위옵션을 말하고 있다.

첫째, 미 대통령이 비비에게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파란불green light‘ 옵션이다. 당연히 미국은 자국 군대 동원 없이 이스라엘을 시켜 이란의 ’핵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둘째, ’노란불‘ 옵션이다. 침공을 고무하되, 당시 미국이 점령 중인 이라크영공 통과는 불허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외교적으로 발뺌할 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빨간불‘ 옵션이다. 즉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을 만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공격하더라도 공격을 만류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이란의 보복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넷째, 신호 자체를 끄는 것 즉 ’노 라이트 no light‘ 옵션이다. 미국이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은 위 세 번째 경우처럼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4월 14일 이란이 미사일로 반격하자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방공시스템에서 요격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보자. 이번 이란-이스라엘 ’약속대련‘은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가? 미국은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만류하는 ’척‘ 했고, 여기에 맞춰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대규모? 보복응징에 대응 최소한의 상징적 수준의 행동만 취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무기 및 자금을 지원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가자의 가장 남쪽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군사공격을 허용한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국은 백수십만의 난민이 피신한 마지막 시인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집단학살을 또다시 용인하고 고무 장려한 셈이다.

네타냐휴는 대선을 앞두고 대규모 지역전쟁 발발을 회피한 바이든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가자 밖으로 밀어낼 기회를 다시금 확보한 것이다. 네타냐후의 선택은 사실 위에서 말한 4가지 옵션의 범주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9년 브루킹스보고서는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매우 놀랍기도 하다.

이번 이란-이스라엘 군사적 대결은 서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지금까지 수 십년간 이스라엘은 역내에서 마음대로 죽이고, 폭격해도 그 누구의 제재도 받은 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룰‘이 만들어졌다. 혹은 ‘새로운 방정식New Equation’이 등장한 것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가마솥 개구리처럼 서서히 삶아 죽이는 즉 ’소모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서아시아 신질서는 요르단을 제외하고 기존의 친미국가 즉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을 중립적 관망 태세를 취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이란이 새로운 전략적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또 이란의 미사일전력은 원하면 언제, 어디든 이스라엘 본토를 타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것은 전술적으로는 얼핏 ‘맹탕Nothingburger’처럼 보일지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이스라엘의 ’전략적 약화‘를 강제한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핵보유국이다. 하지만 이번 국면은 내일 이란이 핵실험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냈다. 또한 서아시아 신질서의 군사적 전제인 미(영, 불) 대 이란 (러, 중) 간의 전략적 균형이 도출된 것이다.

2009년 조건에서 이란의 핵위협(?)을 놓고 쓰인 브루킹스보고서는 미국의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을 망라한 전략교과서였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서아시아 현실은 기출문제만 수록한, 낡은 교과서에는 없는 신출문제를 냈다. 다극화는 이렇게 서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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