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소영의 교사생각] 교사도 시험이 괴롭다

시험 출제기간 교무실 출입금지 패러디 포스터 ⓒ온라인 커뮤니티


‘교무실에 마음대로 들어왔더니 험한 문제가 나왔다’, ‘출제의 여왕’ 등 요즘 고등학교 교무실 문엔 영화나 드라마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각종 ‘교무실 출입금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 안에서는 교사들의 고달픈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시간, 중간고사 출제 기간이다.

민원이 없도록 출제하라!

인문계고 정기고사 문제 출제는 극한 작업이다. 학교 최상위권 학생들이 1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출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류가 없으면서도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문제가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안 된다. 동점자가 많이 나와도 안 된다. 자칫 1등급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간 상위권 학생·학부모의 원망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두려움에 신경이 곤두선다.

출제를 마치고 시험이 끝나도 이의신청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조마조마하다. 시험문제에 대한 민원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마치 수능 감독 때 듣는 민원 발생 사례처럼 다양한 사례들이 소문이 되어 퍼진다.

“조금 애매한 문제는 일단 민원을 제기하고 보라고 학원에서 코치한대요.”
“모 학교에선 어떤 학생 가족이 변호사인데, 그 학생이 틀린 문제가 오류였다며 조목조목 주장한 논문 수준의 민원서류를 제출했대요. 교사가 보기엔 오류가 아니었지만, 결국 그 과목은 재시험 봤대요.”

지원은 없고 교사의 책임만 강조

교사가 겪는 출제의 고통은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알아주지 않는 건 교사들끼리 위로하면 그만인데, 출제의 모든 과정에서 지원은 없고 교사 개인의 책임만 더욱 강조되는 건 정말 문제다. 교사가 출제 상황에서 겪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열악한 출제 여건

시험문제 출제를 위해선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참고로 수능 문제를 출제할 때는 한 달 정도 합숙을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사의 문제 출제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사는 자기 상황에 따라 며칠 동안 시간외근무를 하거나, 밤잠을 포기하거나, 주말을 반납하면서 시험문제를 낸다. 이런 시험문제 출제에 수당은 없다.

과도하게 요구되는 교사의 ‘서비스’

학생 민원이 없도록 철저한 고사 관리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문제 출제에 이어 시험지 인쇄-포장-보안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정도가 점차 과도해진다. 이제 시험지 포장 단계에서 교사에게 문제지를 순서대로 모아 한 부씩 스테이플러로 찍게 하는 학교까지 생겼다.

교사를 지키지 않는 학교

시험문제에 대한 민원이 생기면 학교도, 교육청도 교사를 지켜주지 않고 개인이 책임지게 한다. 고의적이거나 큰 실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답을 잘못 공지했다거나 복수정답이 나오는 경우처럼 소소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무조건 주의·경고를 주겠다는 학교장이 다시 늘어간다. 교과협의회와 성적관리위원회를 거쳐 처리하면 되는데 말이다.

사교육 업체로 넘어가는 문제

시험 이후엔 교사가 애써 출제한 문제를 학원이나 ‘족0닷컴’ 같은 인터넷 업체가 무단 수집한다. 학원에선 00학교 모 교사의 출제 경향을 분석해주고, 인터넷 업체는 교사들이 생산한 기출문제를 판매한다. 창의적인 시험문제는 출제자에게 저작권이 있다지만 그 저작권을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여기에 교육부는 학교에서 기출문제를 공개하라며 지침을 내려보낸다.

지난해 7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사 생존권 보장을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23.7.29 ⓒ뉴스1

시험문제 출제가 두렵지 않으려면

그런데 잠깐, 교사에게 최상위권 학생들이 1등급을 받도록 출제하라는 건 누구의 강요인가? 사실 어느 교육 관계법에도 1등급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면 학생들이 어느 정도 성취 수준에 도달했는지만 교사가 자율적으로 평가하면 되지 않는가?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교사의 평가권이 법률로 보장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교사에게 부여된 교육적 권한은 초중등교육법 제20조 ④“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추상적 권한과 생활지도권밖에 없다. 교육과정 편성권, 교과서 검·인정권, 학생에 대한 학업성취도 평가권과 같은 수업과 관련된 구체적 권한은 교육부 장관에게 주어졌다. 교육감은 장학지도권으로 교사의 수업과 교육 활동을 통제하고, 교장은 교무를 총괄할 권한과 교직원 지도·감독권으로 교사를 통제한다. 학생 교육을 실제로 담당하는 교사에게 수업과 관련한 권한이 없다는 아이러니! 아, 이러니 교사가 자율적으로 평가를 운영하려면 학교와 교육청의 간섭을 뚫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에 어쩌면 법보다 더 힘이 센 입시경쟁교육이 교사를 억누른다. 수시도 어떤 면에선 정시보다 더 전쟁 같아서 한 번의 시험이라도 망치면 큰일이다.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달라지고, 등급에 따라 진학할 대학과 학과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일자리와 평생의 소득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고등학생들이 시험에 압박을 느끼는 만큼, 교사들도 출제 때마다 민원의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가 시험문제 출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생의 학업성취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으려면, 작은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결국엔 입시경쟁교육을 해소해야 한다. 또 입시경쟁교육이라니, 이 무슨 깔때기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영원불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시경쟁교육의 해소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 자신을 위해서도 너무나 절실하다.

자, 그렇다면 어서 출제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교육을 위한 채비를 하자!

편집자주

이 글은 교육희망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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