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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끝나지 않은 안치환의 새 음반, 13집 [Always in my heart]

안치환 13집 'Always in my heart' ⓒA&L ENT

이제 안치환의 새 음악을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다. 물론 안치환의 팬이라면 여전히 그의 노래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겠지만, 지금 한국 포크/포크록 음악을 선도하는 음악인은 권나무, 김목인, 김사월, 이랑, 정밀아, 천용성, 황푸하 같은 이름이다. 그들이 안치환만큼 유명하지 않다 해도 40여년의 시간은 장르의 얼굴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안치환에게는 국민가요에 가까운 히트곡이 있고, 라이브에서 여전히 용맹을 떨치지만, 그가 내놓는 새 노래에 현재의 음악다운 참신함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게다가 2년 전 발표한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에서 비판을 위해 여성의 외모를 끌어오는 여성혐오를 적시하고도 계속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으면서 대표적인 민중가수에게 기대하는 진보성을 스스로 훼손시켜버렸다. 안치환은 최근 한 매체 인터뷰에서 뒤늦게 사과했지만 떠나버린 마음을 모두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맹목적이기 일쑤이지만, 한 번의 잘못이라도 치명타가 되어버리는 한국사회에서는 누구의 인기도 영원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나온 안치환의 정규 13집 [Always in my heart] 또한 정확한 평가는커녕 음반이 나온 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음반은 안치환이 6년 만에 발표한 정규 음반이자, 그동안 음반을 발표하면서 빼놓은 곡들을 모은 B-Side 음반이다. 안치환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음악인으로 매우 성실해 날마다 연습하고 창작하고 녹음하는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다. 즉시 음원이나 음반을 발표하지 않더라도 안치환의 작업은 날마다 이어진다. 삶과 음악이 통일된 음악인 안치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번 음반에 안치환은 14곡의 노래를 담았다.

음반의 수록곡은 그동안 안치환이 해왔던 음악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음반의 수록곡은 대개 포크/포크록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안도현 시)’, ‘어떤 기쁨(고은 시)’, ‘새로운 길(윤동주 시)’, ‘귀천(천상병 시)’, ‘11월(천상병 시)’ 같은 노래는 안치환이 꾸준히 만들어온 시노래의 일환이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흐름을 이어가는 (남성) 시인들의 시를 노래한 모습은 안치환의 미적 지향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러한 모습을 근거로 안치환은 결 고운 서정시를 선호하고, 꽃/눈발/길 같은 친숙한 은유에 갇혀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안치환의 새 음반, 13집 Always in my heart

‘난 언젠가’는 안치환이 그동안 견지해온 태도의 반복이고, ‘여기에 있네’는 안치환이 와병 이후 만든 고백의 노래들과 연결되며, 앨런 긴스버그의 시를 다듬은 ‘너무나 많은 것들’은 안치환의 여전한 비판정신을 증거한다. 그러니 이번 음반 역시 안치환이 안치환했다고 말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이번 음반은 안치환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에게는 자연스럽고 친숙하지만, 그 음악이 고루하게 들리는 세대에게는 확장성이 떨어질 음악이다.

그럼에도 수록곡들을 매끈한 노래로 만들어내는 솜씨는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의 저력을 증거하기 충분하다. 문제는 비 사이드 음반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노래들이 관습적으로 들리고 기존 곡들의 동어반복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는 자신다운 표현을 찾아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 스타일은 그의 개성이 되기도 하지만 한계가 되기도 한다. 안치환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음반 수록곡들 가운데 그동안 들려주었던 사운드의 전형에서 벗어난 노래는 드물다.
다만 이번 음반 수록곡들은 예전 노래들에 비해 가볍다. 대개 어쿠스틱 악기로 소박하게 연주했을 뿐 아니라, 안치환의 목소리도 힘을 많이 덜어냈다. 당연히 듣는 이의 부담이 적다. 그동안 안치환의 열창이 전달하는 호소력을 호평하지만, 과한 열창의 연속으로 인한 피로감을 덜어낸 음반은 뒤늦었지만 바람직한 변화다.

안치환의 새 음반을 들으면서 떠올리는 생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와 어법을 만들고 가꾸고 다듬으면서 긴 시간을 이어갈 때 만들어내는 궤적은 제각각이다.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완서처럼 늦게 시작해 계속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는 희귀하다. 예술적으로 성공한 작가들 중에는 젊은 날에만 새 작품을 만들고 나이 들어서는 과거의 명성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어도 과거의 명성에 닿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평생을 천재적인 재능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는 아무도 없다. 명작을 남긴 예술가가 갑자기 태작이나 졸작으로 실망시키는 경우는 흔하다.

가수 안치환. 2020.09.17 ⓒ정의철 기자

계속 작품을 만드는 일은 과거의 명성을 넘어서려는 노력이거나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집념만이 아니다. 예술가라는 직분에 충실하려는 태도이며, 지금 자신에게 와 닿은 이야기와 문제의식을 고백하려는 정직함에 더 가깝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신작은 당연히 최고작과 비교하기 마련이지만 꾸준히 작업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살펴야 한다. 늙어가는 예술가의 작품을 반드시 성숙이라는 프레임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모든 작품은 예술가의 현재다.

저항과 서정의 두 날개로 날아온 안치환의 새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음반 안에 안치환의 과거가 있고, 변함없는 지향이 있고, 꾸준한 시도가 있다. 그는 한결같을 뿐인데 그새 세상이 변해버렸는지 모른다. 그가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년배 음악가들이 좀처럼 새 음악을 발표하지 않아도 꾸준히 새 노래를 내놓는 안치환. 긴 시간 다진 송라이팅이 여전한 안치환이 여기 있다. 그러니 이번 음반에서도 유사한 메시지와 작법의 노래가 클리셰의 반복인지, 변화의 갈림길인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계속 이렇게만 간다면 곤란하지만, 아직 안치환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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