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세월호 참사 10년, 그동안의 노래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이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량유원지에서 열린 가운데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이 기억합창을 하고 있다. 2024.04.16 ⓒ민중의소리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10년이 지났다. 그 10년은 어떤 시간이었던가. 그날 아침 뉴스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시간. 하지만 곧 오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부터는 충격의 연속이었던 시간. 제발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도했던 시간. 소리 내 웃기도 죄스러웠던 시간. 수많은 인력과 장비를 동원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거짓으로 드러난 시간. 슬픔이 분노로 바뀐 시간. 모두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매달렸던 시간.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서서 싸워야 했던 시간. 세월호가 뭍으로 돌아온 시간. 길고 답답한 공방의 시간.

지금도 눈물을 삼키지 않고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세월호 참사는 온 나라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긴 사회적 재난이다. 2014년 이후의 시간은 세월호의 시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한국전쟁, 5·18 광주민중항쟁, IMF 구제금융 사태만큼 세월호의 내상은 깊어 쉬 아물지 않는다.

다행히 다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노란 세월호 리본이나 팔찌를 달고 다니는 이는 드물다. 뉴스에도 이따금 등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세월호를 쉽게 잊지 못한다. 리본과 팔찌를 떼고, 세월호 참사의 소식을 드물게 듣게 되었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 세월호는 고스란히 잠겨있다. 세월호는 세상의 파도가 격해질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태원 참사 직후 세월호는 다시 밀려왔고, 오송 지하차도에서 사람들이 죽어갔을 때에도 뱃고동을 울렸다. 일하러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세월호가 목포에만 정박되어 있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의 당사자들이 어떤 시간을 감내해야 했는지는 잘 모른다. 야박해지고 거칠어진 사람들의 모진 말을 어떻게 견디며 일상을 꾸려가는지 알지 못한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이들을 살피기에는 우리의 시간 또한 만만치 않게 무거운 탓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이 열린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 4160명이 기억 대합창 중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2024.04.16 ⓒ민중의소리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예술에는 세월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세월호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고,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세월호는 가라앉히기엔 너무 무거웠고, 외면하기엔 너무 아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예술가들이 세월호를 쓰고 그리고 노래하고 찍은 이유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누구든 사고를 이야기하거나 배가 등장하거나 바다가 배경이 되면 몸이 먼저 알고 숨이 막혔다. 그런데도 세월호 이야기를 담아낸 것은 모두가 울고 있기 때문이고, 예술가들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심장에 정박해버린 슬픔과 절망을 토닥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 아니었을까. 가만히 있으라고 강권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에서 예술가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다정한 이웃이어야 하고, 서러운 넋을 달래는 영매여야 함을 그들은 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대부분의 노래는 슬픔을 위로한다.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어루만지고 함께 우는 우리를 다독인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감정과 영혼을 치유하는 것만으로 아물 수 없는 내상이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그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가다듬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 모두의 안전을 담보하는 일.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일은 영원히 짊어져야 할 숙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노래는 그 일을 도왔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자꾸만 진실을 감추고 미적거리는 정부, 음모론을 만들어 퍼트리는 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안 이 노래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슬픔의 힘으로 희망을 만들어내려고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켜고 물대포에 맞아가며 안간힘을 쓴 이들의 곁에서 제 소임을 다했다. 음악인 혼자 부르고 다른 이들은 듣는 노래만으로는 싸울 수 없었다. 민중가요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민중가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었다.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4.04.16. ⓒ민중의소리

10년이 지나도록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현장에 연대했던가. 숱한 창작곡이 만들어졌다. 자신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따지지 않는 이들. 화두와 숙제처럼 세월호를 품은 이들이 묵묵히 이 노래는 세월호 이야기라고 밝히는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세월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일상에 떠 있는지 확인한다. 그날 이후 우리는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죽음과 가까운지, 그 이유가 삶의 본질적인 위태로움 때문이 아니라 국가/사회의 시스템 때문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모두가 운이 좋아 살아남았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새 노래들 가운데 인기를 끌거나 화제가 되는 곡이 많지는 않다. 넘치는 감정을 표현하기 급급한 노래들은 훗날 다시 듣기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그렇다고 명반이라거나 명곡이라는 잣대를 대고 노래를 줄 세울 필요는 없다. 죽음을 추모하고 삶을 응원하는 노래들은 세월호 참사를 현재로 잇는 고리나 마찬가지다.

다만 세월호 참사를 노래하더라도 반드시 슬픔에 갇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동일한 메시지와 태도를 반복하는 예술은 대상을 박제시킨다. 예술가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필요한 이유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계속 새롭게 발견하고 부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의 서사와 상징을 이어가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월이 흐르며 새롭게 느끼고 인지하게 되는 참사에 대해, 서로 다른 참사 경험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에 대해 계속 쓰고 노래할 필요가 있다. 감각만이 아니라 사유의 힘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 애써 만들고 부른 노래는 그 노래의 빛으로 누군가에게 닿는다. 그 소박한 힘이 우리를 구원할 때까지 계속 만들고 부르고 들을 일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