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카산드라의 저주, 어떻게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가

1990년 IPCC 1차 평가 보고서에서 2021년 6차 평가 보고서까지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350억 톤 미만에서 500억 톤 이상으로 43퍼센트 증가했다. 인류는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후위기를 더 일으키고 있다. 기후위기 증거가 충분하다고 해도 태도 변화, 행동 변화, 정치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버트런드 러셀은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하여 인류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에 있다”라고 말했다. 과학자는 기후위기를 세상에 알리려 한다. 그런데 ‘알림’이 곧 ‘설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뉴스의 시대’에서 “북극의 빙산이 녹는 것을 어떻게 하면 톱스타의 각선미만큼이나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과학자는 위험을 전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시민들에게 설득하여 행동에 나서게 할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기후위기 서사는 그리스 신들의 비극만큼 무력하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에 목마를 들이면 위험하다고 예언했지만, 시민을 설득할 수 없어 결국 트로이가 멸망했다. 오늘날 우리도 기후위기라는 카산드라의 저주에 걸려있는 듯하다.

1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2023.12.01. ⓒAP

확증 편향

기후위기 대응에 미적거리는 이유는 무지와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두뇌가 인식하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한정된 뇌의 역량에 따라 효율적으로 판단하도록 진화해 왔다. 정보가 폭증하다 보면 처리가 버거워지기 마련이므로 결국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태도, 신념과 가치관을 확증해 주는 정보를 선택하고 그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선택한 정보는 대부분 스크린된 것들이다. 스크린이 잘못되었다면 자기도 모르게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확증 편향으로 인해 이전 경험에 기반하여 주의를 기울일 정보와 무시할 정보를 결정한다. 확증 편향은 눈앞의 위험에 대응할 때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이지만 기후위기처럼 장기적으로 일어날 위험에 대한 복잡한 의사결정에 적용하는 경우 중대한 계통 오차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에 민감하지만, ‘나중에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에는 둔감하다. 그리고 이익 위험보다 손실 위험을 훨씬 더 잘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 손실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미래에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는 나중보다 지금에 훨씬 더 큰 우선순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류는 기후위기처럼 수십 년, 더 나아가 수백 년에 걸친 장기적인 시간 규모에서 다가오는 위기에 책임 있게 행동해 본 경험이 없다.

과거에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확증 편향이 우리를 더욱더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기에 더 바쁘다. 늘 긴급한 것이 중요한 것을 압도한다. 이 때문에 본능의 목소리를 누르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니 우리는 경고 신호를 알아차린다 해도 무시하기 십상이고, 그러는 만큼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다. 이는 흡연의 해로움에 대한 경고를 늘상 듣고도 닥쳐올 건강 악화를 실감하지 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결국, 이 세상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정보를 편향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인지 부조화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이 자신의 신념과 모순될 때 불편해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인한다. 사회심리학자 리어 페스팅어는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했다.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를 일으킨다는 인식된 사실과 화석연료를 태워 편익을 누리는 행동 간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우리의 이성은 합리적이기보다는 합리화를 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우리가 기후위기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곧바로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고 현재 생활양식과 소비 방식을 유지하게 한다. 영화 ‘돈룩업’에서 사회 책임자들은 혜성 충돌을 즉각 대응해야 할 위험으로 보지 않고 여기서도 자기 이익을 취할 기회를 잡으려 한다.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민간업자는 희귀광물을 획득하려 하고, 언론인은 시청률을 올리려고 한다. 위험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 간에 서로 다양한 인지부조화로 인해 그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을 날려버린다.

잦아진 대형산불도 기후위기에서 파생된 결과입니다. ⓒpixabay

조건부 협력자

한편, 사람들 확증 편향과 인지 부조화에서 벗어나 기후위기를 명확히 인식한다고 해도 이러한 인식이 바로 유의미한 기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유의미한 기후 행동이 있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연대야 한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기후정치바람은 전국 1만 7,000명 규모의 설문을 통해 ‘기후유권자’를 찾았다. 기후유권자는 기후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는 시민이다. 기후유권자의 비율이 33.5%에 달하였다. 여기에서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는 정당에 상관없이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응답도 62.5%나 되었다.

2024년 네이쳐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게재된 논문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정치 변화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25개국 약 13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86%의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싸워야 하고 89%는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또한, 69%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자기 소득의 1%를 기꺼이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저소득과 중간 소득 국가의 사람들은 부유한 국가보다 기꺼이 기부할 의향이 더 높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83%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4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73%, 중국은 76%지만 일본은 59%였다. 이는 더 부유한 국가의 시민들은 기후 재해로 인한 생계 위협감이 비교적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당신네 나라 동료 시민들의 몇 퍼센트 정도가 1% 기부 의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었다. 결과는 69%보다 낮은 43%에 그쳤다. 이 결과는 기후위기에 대하여 자기 의지에 대한 평가와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대한 평가간 차이를 보여준다. 나의 행동의지보다 동료 시민의 행동의지를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네이쳐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80~90%가 기후 정책에 대한 대중 지지를 과소평가했다. 실제 지지율은 66%~80%임에도 불구하고 37%~43%만이 지지자라고 생각했다.

동료 시민의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기후 행동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행동 과학자들이 말하는 '조건부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한다면 협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광범위한 지지를 과소평가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협력할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냉소와 무력감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홀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아 굳이 미리 나서서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지는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거울반사적 상호작용으로부터 파생된다. 즉, 기후위기를 인식한 사람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기후 행동을 할 경우에만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나서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보건대, 구성원 대다수가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열망하더라도 불합리한 기존 세상이 버젓이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재체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런 상황 또한 급변할 수 있는데, 거울반사적 상호작용에 따른 사회적 역동성이 때로는 예기치 않게 불거지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혁명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나중에는 너무 늦는다

미래 위험에 대한 공포감 조성과 같은 부정적인 방식만으로는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이러한 적절한 메시지가 기후행동에 대한 지지를 높일 수 있다.

2022년 OECD는 기후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72%를 배출하는 20개국(우리나라 포함) 40,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세 가지 기후위기 대응 조건을 다루었다. 한 그룹에게는 기후위기의 영향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그룹은 특정 기후 정책의 영향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그룹은 두 영상을 모두 시청했다. 이후 동영상을 보기 전과 후에 특정 기후 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측정했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지지도를 높이는 데 가장 성공하지 못했다. 정책의 세부 사항을 알려주는 영상이 훨씬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준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보였다.

다른 에너지와 비교한 재생 에너지 효과, 휘발유차와 비교했을 때 전기 자동차의 탄소 저감 효과, 히트 펌프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준다고 해서 그들의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그들의 정당한 우려에 공감하고 기후 대응으로 인한 효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삶, 지역사회, 에너지 가격 또는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한편,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시민들은 기후위기 핵심 정책 중 녹색 인프라 프로그램을 가장 크게 지지하였다. 그 밖에 정책으로는 저탄소 기술 보조금, 건물 단열 법제화와 보조금, 채식 보조금 등에 찬성 비율이 높았다. 탄소세 활용 방안으로는 환경 인프라 자금 지원과 저탄소 기술 보조금에 가장 높게 찬성하였고 저 소득층 현금 지원과 기후 피해를 본 가정과 기업의 지원에도 50% 이상의 지지를 보였다.

포텐셜 에너지(Potential Energy)에서 23개국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정치적 기후 메시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올바른 프레임과 메시지가 기후 정책과 행동에 대한 대중 지지를 높였다. 가장 효과적인 내러티브는 "나중에는 너무 늦는다, Later is too late"였다. 이처럼 긴급한 대응 요구가 기후 행동에 대한 지지를 전 세계적으로 11%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15% 높였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국가에서 경제 성장 또는 불평등 감소보다 환경보호를 통한 건강 개선이 5배, 극심한 날씨 예방이 7배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 보호가 12배 더 많이 선택되었다. 즉, 기후위기를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일자리, 번영 심지어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사랑이었다.

한편, 이 연구에서 기후위기를 막는데 개인이 책임 있다고 보는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26%였는데 우리나라는 16%로 그 비율이 낮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은 정부 책임을 41%로, 기업 책임을 40%로 세계 평균보다 높게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보수라고 밝힌 사람들은 진보적이라고 밝힌 사람들보다 기후 대응에 대한 지지가 13% 낮았다.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3%로 보수와 진보 간 차이가 작았다. 즉, 우리나라에서 기후 행동이 일어나면 정파에 상관없이 사회 변화가 크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녹색정의당 입당 환영 기자회견이 열린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기과학자이자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인 조천호 박사가 발언하고 있다. 2024.02.05. ⓒ뉴시스


더 나은 세상과 정치 연대

기후위기는 우리가 의도하여 일으킨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내달려온 세상 그 자체의 결과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세상이 돌아가던 방식을 바꾸어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그려내고 만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가 문제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에 집중하다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전히 기후위기 피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논의의 대부분은 해결책이 무엇인지, 그 해결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이점이 있는지로 이루어져야 한다. 보험회사에서도 자동차보험이나 손해보험은 당장 닥칠 사고와 불행을 이야기하지만, 노년 은퇴보험을 권유할 때는 노부부가 경치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차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가?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악몽이 아니라 꿈이 더 나은 세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기후위기는 각자 의지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함께 그 의지를 드러내느냐에 따라 위기 극복의 여부가 결정된다. 기후위기 대응에 정치적 의지를 나타내는 시민이 늘어나 그 임계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인 시민 단체와 정치세력이 ‘조건부 협력자’를 얼마나 조직화할 수 있느냐가 카산드라의 저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로컬에너지랩, 더가능연구소과 녹색전환연구소 (2024), 기후정치,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 기후정치바람(준)

Andre, P., Boneva, T., Chopra, F., & Falk, A. (2024). Globally representative evidence on the actual and perceived support for climate action. Nature Climate Change, 1-7.

Dechezleprêtre, A., et al. (2022), "Fighting climate change: International attitudes toward climate policies", OECD Economics Department Working Papers, No. 1714,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3406f29a-en.

Potential Energy (2023). Later is Too Late: A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messaging that accelerates climate action in the G20 and beyond.

Sparkman, G., Geiger, N., & Weber, E. U. (2022). Americans experience a false social reality by underestimating popular climate policy support by nearly half. Nature Communications, 13(1), 4779.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