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부쳐

2014년 4월 16일. 우리가 어디에 있었든 TV 생방송 뉴스로 흘러나오던 그날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청해진해운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선체가 기운 채 침몰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국민 모두는 조마조마한 가운데서도 처음에는 안도감을 느꼈다.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이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오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두의 경악과 충격이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내일이면 10년이다. 사망 304명, 특히 국가의 구조 방기로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학생 250명이 국가의 구조 방기로 희생되면서 온 국민은 비탄에 빠졌다. 아직도 세월호만 떠올리면 눈물이 고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참사의 트라우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과 악몽의 기억을 안고 사는 생존자만이 아니라 숱한 생명들이 어처구니없이 숨져가는 장면을 목격한 모두에게 깊이 남았다.

곧바로 침몰 원인과 구조 과정에서 일어난 의문투성이에 대해 진상규명 활동이 이어졌고, 책임을 져야 할 관계자에 대한 문책도 시작되었다. 참사가 일어난 직후 검경합동수사본부,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등의 초기 조사가 이루어져 구조도 하지 않은 채 탈출한 선원들, 수익만 따지는 과도한 개조로 침몰 원인을 제공한 회사 측과 운항 관리직 등 38명의 기소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 이외의 해경지휘부는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고, '7시간의 부재' 등 대통령을 위시한 재난구조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정권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항거로 나타났다. 결국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탄핵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전임 정부가 은폐해 온 진상규명과 미진하던 책임자 처벌 문제가 그나마 진전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서도 결정적인 변화는 없었다. 참사 초기부터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누어지던 침몰 원인은 사참위의 재조사로도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아직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하고 여론공작을 자행하던 청와대와 정부여당 인사에 대한 처벌도 일부에 국한된 채 시간이 흐르면서는 오히려 무죄 판결을 받는 이들이 늘었다.
참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생자의 안식을 위해 추진되던 안산 생명안전공원 역시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다.

그렇다고 10년이 흘러오는 동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가치의 전환이 일어났고, 이윤의 증식만 강조되던 사회 전반에 안전이 최고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으로 힘겨워하던 유가족들 곁에는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4.16약속지킴이들이 함께 하며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벌이고 있다. 참사가 일어나도 금세 잊고 말았던 사회적 흐름에 경종을 울리며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에도 부분적 보완을 이루어냈다.

한편 사회적 참사 이후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할 때 제2, 제3의 '세월호'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기도 헸다. 2022년에 일어난 10.29 이태원 참사가 그렇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남은 숙제가 많다. 유가족들은 국정원이 참사의 피해자와 시민을 불법사찰한 증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정치적 득실을 따져 세월호 다큐 방영을 막아버린 공영방송의 작태가 버젓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회적 안전을 최우선시하려는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도 중요한 과제다.

얼마 전 22대 국회가 야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아무쪼록 세월호 참사의 남은 과제를 성실히 풀어가는 데 일조하는 국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시금 국가의 구조 방기로 희생된 304명의 영혼의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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