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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임의 일터안녕]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22대 국회에 바란다

다가오는 4월28일은 서른한 번째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5월 태국 케이더 장난감 공장 화재로 188명의 생목숨이 버려진 사건을 추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당시 사고는 공장 밖으로 노동자가 나오지 못하게 평소에도 문을 잠가 놓는 노동통제 때문에 발생했다. 명확한 인재였다. 서른한 해가 지나도록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최고수준의 산재사고사망률을 기록하고 있고 아직도 큰 변화는 없다. 이 상황은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결과이지만 결국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무관심해 벌어지고 있는 하루하루의 참사이다. 이제 갓 선거를 마친 22대 국회, 각 정당에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학교급식 폐암 산재 피해자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국가책임 손해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증언을 하던 중 힘겨워하고 있다. 2023.06.28 ⓒ민중의소리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체계’로 개편, ‘하청노동자 보호를 위한 원·하청 통합 안전관리체계 구축 등 후진적 산재예방시스템 전면 개편’, ‘50인 미만 영세사업장 산업재해예방 지원 대폭 확대’를 내세웠다. 또한 ‘전국민 산재보험제도’ 단계적 추진과 ‘산재보험급여의 선보장’으로 ‘산업재해 국가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노동관련 정책을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전체 국민의 약 60%가 일하는 사람들인데 기가 막힌 노릇이다. 녹색정의당은 ‘주4일제 도입과 하루 노동시간 상한제 실시’, ‘심야노동의 단계적 폐지’를 제시하였다.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제시한 각 당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리고 22대 국회가 유지되는 기간까지 정책을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그러나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여전히 과거형에 묻혀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법체계’ 얘기가 나온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졌던 2018년에도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개정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별거 없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OECD 최고수준의 산재사고사망률
비틀리고 왜곡된 노동시장이 근본 원인
좀 더 시스템화한 사고가 필요하다


노동안전이라는 의제가 저 혼자 이루어질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좀 더 시스템화한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비틀리고 왜곡된 불안정 노동시장이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시적으로 노동이 필요한 일자리에 노동자들을 3개월 단위로 사용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쿠팡 물류센터나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3.3프로’로 불리는 가짜 프리랜서들 얘기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힘들지만 만들면 해고되고 만다. 이들의 안전보건이 주체역량 없이 지켜질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주4일제 또는 더불어민주당이 얘기하는 주4.5일제 역시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또한 수많은 ‘재량근로자’, ‘육상운송 및 보건업 종사자 등’ 노동시간 상한이 없는 노동자들은 모두 여기에서 제외된다. ‘가짜 프리랜서’, ‘1차산업(농업, 어업, 임업) 노동자’ 역시 배제된다. 그리고 수많은 관리·감독자 역시 노동시간 규제 제외대상이다. 이렇게 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되는 집단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최소 50%는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배달 노동자가 배달업무를 하고 있다. ⓒ뉴스1


‘전국민 산재보험 적용’도 좋은 의제이다. 이미 다른 선진국에서는 보장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산재보험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으로도 보장된다. 산재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의 차이는 딱 하나이다. 바로 ‘휴업급여’이다. 물론 부담 주체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보장성에 있어 역력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업무 때문에 다치거나 병 들면 휴업급여가 제공되지만 개인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다치면 치료를 위해 일을 못 하는 시기에 병가제도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전업주부나 대학생에게도 상병수당을 제공하는 선진국의 사례는 아직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산재 처리가 반드시 되어야만 하거나 아니면 민간 사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 국가가 산재 이외에는 다른 방도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에 있어 ‘전국민 휴업급여’를 도입하는 것이 산재보험 개혁보다 더 근본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이런 문제를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새로울 것이 없는 22대 국회가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러나 노동·시민사회의 역량에 기대보고자 한다. 각 정당이 수렴하지 못하는 의제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관철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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