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혹시나가 역시나 된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만남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만났다. 혹시나 갈등을 봉합할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기대가 모였지만 4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20분간 진행된 면담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박 위원장에게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경청했고, 두 사람은 전공의 처우와 근무여건 개선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당장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의대정원 증원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의견 교환을 하려면 이 사달이 나기 전에 해야 했다.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들을 것이 또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막상 전공의 집단 사직의 배경이 된 의대 증원 문제에서 정부가 한발 물러나겠다는 것인지 어쩌겠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대통령이 갈등의 상대방과 면담을 하는 이벤트를 벌였지만 그런 것 치고는 불안해 하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어떠한 메시지도 없다.

의료공백 장기화는 이미 감내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었다. 국민이 받아야 할 전반적 의료서비스는 파행 상태에 들어갔고 이제는 필수적인 중환자 관리마저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인턴 등록 예정자 대부분이 임용을 포기했기 때문에 내일 당장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의사 수급은 꼬일 대로 꼬이게 됐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버텼던 우리 의료시스템이 겨우 정부의 무능 때문에 무너지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2000명이든 몇 명이든 국민은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사 수급을 확대해서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단순히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은 아니다. 그 뒤에 따라올 갈등을 관리하여 최소한의 비용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의대 증원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갈등은 예상된 일이었다. 의료 개혁이 이야기될 때마다 이익집단화된 의사 단체들이 저항하고 결국 개혁이 좌절되는 일은 한두 번 반복된 일이 아니다.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지한 것이고 예상했는데도 아무 대책이 없었다면 무책임한 처사다.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이 이렇게까지 아무 내용 없는 것일 바에야 안 만나느니만 못했다. 면담 직전 박 위원장은 “행정부 최고 수장을 만나 전공의의 의견을 직접 전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만남”이라고 밝혔었다. 면담 종료 후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이 말 그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2시간 20분을 들여서 한 일은 애초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온 상대방에게조차 더 큰 실망을 전해준 것뿐이다.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억지로 실타래를 풀려고 조급해하다가 문제를 더 꼬아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