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송사 대국민 사과, 정권 향한 충성맹세인가

YTN 김백 신임 사장이 취임 3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YTN은 3일 오전 11시40분께 김백 사장의 ‘불공정 보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방송으로 내보냈다. 김 사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이른바 ‘쥴리’ 의혹 보도와 김만배 인터뷰 보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중 오세훈 후보의 이른바 ‘생태탕’ 의혹 보도 등을 불공정 편파보도로 규정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점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력 대선후보 부인 관련 의혹이나 대장동 핵심인사의 인터뷰를 전하는 것이 사과할 일인지 의문이다. 이른바 생태탕 의혹 보도도 마찬가지다. YTN은 24시간 보도채널로 기사 횟수가 다소 많다 해도 그것이 의혹을 과장했다는 근거가 되긴 어렵다. 또한 지적된 보도는 의혹 제기와 반론 등을 묶어 전한 것이 대부분이다. 노조는 ‘쥴리’ 의혹에 대해 “김건희씨는 과거 겸임 교수 지원서에 허위 경력을 썼다는 YTN 단독보도 뒤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었다며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시 국민의힘 반론도 충실히 기사에 반영했다”고 반박하는 등 대국민 사과에 반발하고 있다. YTN이 진보에 편파적으로 기울었다고 여기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절차도  의아하다. 대국민 사과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노사는 물론 사내 구성원 간의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 및 부인 등과 관련된 보도를 이유로 방송사 사장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합당한지도 의문인데, 구성원의 동의도 얻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취임할 때부터 ‘답정너’로 정해놓은 사과를 3일 만에 밑어붙인 셈이다.

지난해 11월에는 KBS 박민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그간의 불공정 보도를 이유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국민 사과를 주도한 두 사장은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지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성원 다수의 반발을 묵살하고 사과했다는 점도 판박이다. 무엇이 ‘친정권’ 꼬리표가 붙은 사장이 촉박하게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했는지 궁금하다. 그간 방송 보도에 불만을 제기한 측은 주로 정부와 여권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권력의 독주를 언론, 특히 방송이 더 예리하게 감시·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다. 이런 점에서 대국민 사과가 사실은 권력을 향한 충성맹세가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현 정권 들어 방송통신위, 방통심의위, 선거방송심의위 등 언론 관련 기관이 총동원돼 권력 비판 보도를 ‘입틀막’ 하고 있다는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 시절 방송의 굴종을 많은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YTN의 대국민 사과는 ‘땡전뉴스’와 ‘검사 위에 육사 위에 여사’라던 오래 전 우스개를 떠올리게 한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 숱한 언론인이 모욕을 감내해야 했던 기억도 소환한다. 시대의 고난이 다시 방송을 덮쳤다. 부패한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할지 주권자 국민의 대변자가 될지, 방송이 다시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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