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정훈의 학교 밖 세상] 의대 증원 문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성찰해야 하나

필자주

저는 서울의 일반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지난 3월 15일 민중의소리 출판사를 통해 『교육개혁은 없다』 1, 2권을 출간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민중의소리에 칼럼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교육계에 관심사가 있을 경우 칼럼을 쓸 예정이며, 첫 주제로 의대 정원 확대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선생님, 의대 정원 확대가 우리 학교 아이들 대학 진학에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의대에 가려면 수능 4과목 중 3과목 정도 1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학교에는 그런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소위 명문대의 이공계열 재학생들이 재수·반수 하거나, 강남 지역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겠지요.”
“그래도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뭔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저는 올해 고3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위 대화는 지난 3월 21일 저와 우리 반 학부모 간담회에서 오간 내용입니다. 학부모 간담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 못 했던 저는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질문한 학부모의 의도는 의대 정원이 2천 명 늘어나면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고, 낙수효과처럼 자기 아이가 갈 수 있는 대학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가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오르면 강북의 집값도 들썩이고, 집값이 오르면 전세가도 영향을 받아 결국 집 없는 사람까지 모두 관심을 갖게 되듯이, 의대 정원 확대는 성적 최상위권인 학생의 부모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의 관심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방의료원 구인난 등 의사 부족 문제가 단골 뉴스인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모처럼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들고나왔습니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9년째 동결된 상태입니다. 19년 동안 인구는 330만 명 늘었는데 말입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천 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 3.7명의 67% 수준입니다.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의대 졸업자 수는 7.4명으로 OECD 평균인 13.5명의 절반 수준입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세계적 추세에 비춰보면 의사 수를 늘이는 게 당연합니다. 작년 11월 8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의대 졸업생 수는 프랑스 71%, 이탈리아 56%, 호주 50%, 미국 30%, 일본 18%, 캐나다 17%가 늘었습니다. 한국만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러면 의사들은 왜 의대 증원을 반대할까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OECD 평균보다 높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접근성, 의료 서비스의 질, 의료수가 문제 등 많은 근거를 갖고 반대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초강경 대응을 천명해도 전공의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데에는 의사들의 논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당장 내년에 의대 정원을 65%나 늘리는 게 합당하냐, 정말 중요한 것은 필수 의료 문제인데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등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의사들의 주장을 아무리 들어봐도 의대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의사는 사회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직업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급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으니 물질적 보상도 넉넉히 받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돈 많이 번다고 시샘할 필요 없습니다. 의사들이 주가를 조작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전관예우로 돈 버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의사가 많아져서 사람들이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입니다. 그런데 왜 의사들은 사회 발전 방향에 역행하는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요? 의술의 본질에 대해, 의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 성찰 없이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로 보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대부분 공무원입니다.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경찰과 소방관도 공무원입니다. 학교의 목적은 교사의 복지에 있지 않고, 경찰서의 목적은 경찰관의 연금에 있지 않으며, 소방서의 목적은 소방관의 노후에 있지 않습니다. 국가기관의 목적은 공공의 이익입니다. 교사에게, 경찰에게, 소방관에게 정원을 늘리자고 하면 찬성할까요 반대할까요? 교사들은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줄어들어 교육의 질이 높아질 테니 적극 찬성할 것입니다. 경찰, 소방관들도 마찬가지겠죠.

병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전체 의료기관 중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의료의 비중은 기관수 기준 5.1%, 병상수 기준 8.8%, 의사 인력 기준 10.2%에 불과합니다. 기관수를 기준으로 할 때 영국은 100%, 캐나다는 99%, 프랑스는 45%, 심지어 민간 보험에 의존하는 미국도 23.9%인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낮습니다. 영국과 캐나다의 의료기관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며, 의사는 공무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의사는 대부분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병원의 고소득 월급쟁이거나 자기 병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사회 구성원의 생명을 지켜주는 병원이 학교, 경찰서, 소방서와 무엇이 다르기에 대한민국은 병원을 영리 기관으로 만들어 놓았을까요?

공무원이 가장 잘 어울릴 직업인 의사가
공공의 이익과 상반된 주장을 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비싼 사교육으로 무장하여 최고의 내신, 최고의 수능 점수를 확보해야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일반고에서 의대 한 명 보내려면 거의 전 교사가 달라붙어 최고 스펙의 학생생활기록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의대 6년 비싼 등록금 내고 죽어라 공부한 후 전공의가 되면 주당 80시간 이상 영혼을 갈아 넣어 일합니다. 월급은 4백만 원 정도로 시간당 임금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전공의들은 노조를 만들어 근로 조건을 개선하거나 임금 인상 투쟁을 하지 않습니다. 전공의들이 말도 안 되는 ‘개고생’을 감내하는 이유는 정년 없이 고소득이 보장되는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를 두둔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가장 최선에 서 있어야 할, 공무원이 가장 잘 어울릴 직업인 의사가 사회 공공의 이익과 상반된 주장을 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만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2천 명이라는 숫자를 정해놓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문재인 정부가 400명 증원을 목표로 공공의대 설립을 내놓을 때도 전공의들은 파업으로 맞섰고 의대생들은 국가고시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도 의사 수 확대를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독일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습니다. 한국 의사와 독일 의사는 무엇이 다르기에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었을까요?

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2024.4.1 ⓒ뉴스1

이틀 전 윤석열 대통령은 50분 동안 대국민 담화를 했습니다. 의사들을 향해 국민 생명을 인질로 잡고 불법 집단행동을 하는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의사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권력을 동원하여 항복을 받아내면 의료 개혁이 된다고 믿는 걸까요? 울산의료원 설립 공약을 내팽개치고, 간호법 개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의대 증원이 정말 의료 개혁을 위한 순수한 의지라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의료, 심뇌혈관질환, 소아청소년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계획도 없고, 지역 의료 공백에 대한 로드맵도 없습니다. 의료개혁이 아니라 의대 증원으로 총선에서 표를 얻어보자는 심산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증원 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가가 의료를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의 영역에 맡겨놓고, 의사를 그 집행자로 만들어 놓는 상황에서 의사들의 동의를 얻어 의료개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의사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공익의 파수꾼으로 만드는 길은 공공의료를 기반으로 의료 행위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 성찰에 기반하여 의료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개혁은 헛꿈입니다. 근본적 성찰, 개혁 로드맵, 개혁 주체에 대한 존중,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의료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의대 증원 논란에서 우리 사회가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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