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음의 저울] 4월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우리는 자신의 일부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기에 특별한 노력 없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어렵다.

-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

현대 한국사에서 4월은 많은 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달이다. 4.3 제주항쟁,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등 시대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과 참사로 많은 희생자를 기리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 편에선 이러한 사건을 폄훼하고 도발하면서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 특히 역대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기이한 행태로 역사를 왜곡하는 주범으로서 국민들을 겁박하고 ‘입틀막’을 했던 윤석열 정권이 총선을 통해 심판하는 달이기도 하다. 특히 검찰권을 가지고 자기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뒤를 봐주고 사면권을 남용하여 특혜를 주면서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은 온갖 법 기술을 동원하여 상대를 박해했던 그리고 이 사회의 기득권만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 정권의 목적인 검찰 엘리트주의의 민낯을 심판하는 것이다.

4.16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 김종기 공동상임위원장(왼쪽), 김순길 공동집행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작에 앞서 묵념을 하고 있다. 2024.03.27 ⓒ민중의소리

사실 선거라는 행위는 한 개인이 정치적 주권자이며 자신의 표로서 한 사회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개인이기도 하지만 전체이기도 하다. 예전에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심리학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알프레드 아들러(A. Adler)는 자신의 심리학을 ‘Individual Psychology’ 라 하였다. 이를 일본식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개인심리학(個人心理學)으로 번역하여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는 저자가 말하는 원뜻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오해가 많은 개념이다. 어원적으로 개인으로 번역되는 ‘Individual’은 나누는(divide) 것이 불가능한(in) 존재라는 뜻이다. 개인심리학이라는 말에서 사회보다 개인의 안녕과 웰빙을 강조하는 심리학처럼 인상 짓는데 사실 아들러의 스승이었던 프로이트(Freud)가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는 것에 반대하여 인간은 쪼갤 수 없는 총체적인 의미로서 Individual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들은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여러 준거들을 제시하여 분석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러의 관점에선 개인은 분석하여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로서 사회적인 동기와 관심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태어난 조건에 의해 열등감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우월적 동기가 있어 오히려 현재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선한 동기를 강조하였다. 실제 아들러도 자신의 신체적 결함으로 열등감이 컸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를 이루었다. 그가 개발한 아들러 심리학은 자신의 초기 경험이 바탕이 됐다. 아들러는 과거 경험보다 현실의 주관적 지각을 더 강조하여 평생 사회적 관심,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갖기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표는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
기득권에 충실한 세력에게 철퇴를 가함으로써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과정이자
주권자로서 공권력을 당당하게 세우는 변신의 과정


사실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마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개인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개인으로 보면 약하고 흩어져 있는 존재이지만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정치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단일한 의지체로서 권력을 창출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투표는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주권자인 자신에게 모멸감을 주고 ‘입틀막’을 하고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기득권에 충실한 세력에게 철퇴를 가함으로써 문명인답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과정에서 피지배 대상이라 여겼던 세력에서 주권자로서 공권력을 당당하게 세우는 변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신 과정은 ‘지속되는 생존의 두려움과 난폭하게 죽음의 위협’에 내몰리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더 이상은 어찌해볼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기에 정치적 주체로서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벚꽃이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인 윤중로에 피어 있다. 2021.03.30 ⓒ민중의소리

지난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면서 산 자들의 애도를 현실 권력으로 억누르면서 권력의 몰락을 재촉했듯이, 윤석열 정권이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족들의 애도를 박탈하면서 이미 윤정권의 종말은 예고된 것일 수 있다. 사실 죽음이란 현상 앞에서 현실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조차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죽은 자를 위로하고 유족들의 슬픔을 함께하는 애도는 생명력과 같아서 억울함과 한을 풀지 못하면 그 생명력이 어디서 어떻게 또 다른 재앙을 몰고 올지 모르는 일이다. 선거라는 변신의 과정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게 하고, 어떤 행동으로 피해받은 것을 회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애도 작업에 적용한다면 개인의 치유가 조직과 공동체의 치유로 성장하는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미 4월은 시작되었다. 그 결과는 선거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한낱 개인으로 취급했던 기득권과 윤석열 정권에서 민주공화국의 주체로서 정치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잡음으로써 변신의 과정에 축제의 과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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