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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왜 대파 논란이 총선을 뒤흔드나?

개그도 자꾸 하면 실력이 는다는데 그 말이 진짜인 모양이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정부 및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개그를 칠 때 진짜 한심하게만 생각했다. 예를 들면 언론장악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던 이동관 씨가 방통위원장 후보자 시절 “한국판 BBC”를 운운하거나, 이종섭 전 대사의 도망 출국을 두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좌파가 놓은 덫에 우리가 걸렸다”라고 말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개그다.

그런데 지난주 이수정 국민의힘 수원정 후보가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 가격” 망언에 이어 이른바 ‘대파 격파 동영상’을 올렸을 때, 나는 이들이 개그에 진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심지어 이번에는 웃을 뻔도 했다.

“어찌 보면 간단한 말실수 아니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국민의힘 희망사항이고, 대파 논란은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힘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총선은 역사상 길이 남을 ‘대파 총선’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웃긴 경제학적 사고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경제학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내가 뭔가를 선택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단지 내가 낸 돈, 혹은 내가 들인 시간만으로 계산해서는 안 되고 그 일을 하느라 포기한 것까지 비용으로 더해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뮤지컬을 보러 갈 때 드는 단순 비용이 10만 원이다. 그래서 ‘뮤지컬 한 편 보려면 10만 원의 비용이 들어’라고 간단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만약 그 두 시간 동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2만 원을 벌 수 있었다면 비용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왜냐하면 뮤지컬을 보는 대가로 아르바이트 페이 2만 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때 이 2만 원이 기회비용이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하는 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이 길을 가다가 100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이걸 주울 것이냐, 말 것이냐? 당연히 주워야지! 100달런데!

하지만 기회비용 관점에서 보면 게이츠 회장은 이것을 줍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100달러를 얻기 위해 게이츠 회장은 일단 가던 길을 멈춰야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고, 이걸 주워서 호주머니나 지갑에 넣어야 하는데, 이러면 최소한 10초는 걸린다.

그런데 이 10초 동안 만약 게이츠 회장이 다른 일을 한다면 100달러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기회비용의 개념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게이츠 같이 시간의 가치가 워낙 큰 인물은 100달러 따위(!)를 얻기 위해 멈추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게 공감이 되나? 내가 주류경제학을 비판하는 지점 중에 하나가 이런 건데, 나는 이런 헛소리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길을 가다 100달러짜리 지폐가 보이면 멈추기 마련이고, 저걸 주워 말어 고민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사실 10초는 훌쩍 지난다. 게이츠 회장이 그 순간 ‘내가 멈춰서 저걸 줍느라 10초를 허비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해야. 그러므로 나는 가던 길 계속 가면서 사업 구상이나 해야 해’라고 판단할 확률이 제로라는 이야기다.

실제 게이츠 회장에게 이런 질문을 한 네티즌이 있었다. “길에서 100달러를 발견하면 주울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게이츠 회장은 “줍겠다. 주워서 내가 운영하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줄 것 같다. 100달러로 정말 많은 것을 살 수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그렇다. 이게 보편적 사람의 정서다.

지난 26일 국민의힘 이수정 경기 수원시정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 27일 해당 영상은 삭제된 상태다. 2024.03.27. ⓒ페이스북 갈무리

또 이 대화에서 게이츠는 “밤에 설거지를 매일 한다”라고 밝혔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보면 아둔한 짓이다. 설거지를 하려면 족히 20~30분은 들 텐데!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설거지보다 수 만 배 높은 가치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왜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주식투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워런 버핏은 매일 아침 차를 몰고 햄버거 가게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통해 3000원대의 햄버거를 사먹는다. 이것도 기회비용 입장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거 하나 사먹겠다고 최소한 30분을 허비해야 한다. 버핏같은 거부에게 30분의 가치가 얼마나 큰데 그 시간을 낭비하나. 집에 셰프를 둬야지!

하지만 정작 이들은 태연히 자신의 일상을 영위한다. 왜냐? 그게 인간의 상식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싱크대에 그릇이 쌓이면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에 머리카락이 떨어지면 줍고, 쓰레기통이 차면 비우고,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인다. 인간은 이런 일상적인 노동 속에서 스스로를 완성시킨다.

그래서 일상이 중요하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 이번 대파 사건을 겪으면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아직도 어리둥절할 것이다. 아니, 이게 이렇게 크게 번질 문제인가 싶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겠나? 미국 대통령을 ‘날리면’이라고 표현한 것도 아니고, 영부인이 논문을 표절하거나 명품백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대파 가격 좀 틀린 것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이 절대 모르는,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모를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정치인이 세상물정을 제대로 아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사소한 일을 관찰하고 실행하는 것, 이런 것들은 그들의 상상보다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이 바로 이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행하는 작은 행동과 관찰 속에서 자아를 완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우리의 삶을 모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재벌들이 그러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인은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바로 우리를 대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이것을 잘 모를 때 유권자들은 그 정치인이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는다. 재벌들이 버스 요금을 몰라도 전혀 화가 나지 않지만 정치인 정몽준이 “서울시내 버스요금이 70원쯤 하지 않나요?” 이러면 개빡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국회의원들이 제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원 지하철에서 시달릴 그 시간에 편하게 차 안에서 국정을 구상하는 것이 기회비용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는 경제학적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빌 게이츠는 그렇게 해도 되는데(심지어 빌 게이츠도 그렇게 안 하더라) 정치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일상에서 민중들의 삶과 멀어지는 순간 민중들은 그 정치인을 혐오한다. 윤 대통령의 대파 발언 파장이 다른 어떤 말실수보다도 크게 번진 이유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별 것도 아닌데 왜 난리냐?’라고 억울해할지 모르겠으나, 그게 그들의 한계다. 정치가 민중의 일상을 무시하는 순간 그 정치는 설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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