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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학의 세상다양] 대복수의 시대라는 K드라마판에서 구조를 생각하게 하는 ‘피라미드 게임’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을 보며 바로 생각난 것이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훈련 프로그램 중 스타파워(Star Power)라는 게임이다. 스타파워는 네모, 세모, 동그라미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각각의 그룹은 계급이다. 진행자가 '규칙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더 높은 계급으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하며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극소수의 최상위 계층인 네모그룹의 권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최하위 계층인 동그라미 그룹은 점점 더 착취당한다. 가장 많은 수를 가지고 있는 중간 계층인 세모 그룹은 '이 자리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저 게임을 열심히 하게 된다. 게임을 멈추지 않는 한 이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 웹 포스터 ⓒ자료사진

게임을 마친 후 대화의 시간을 통해 '게임을 통해 무엇을 관찰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대화하며 자본주의, 능력주의, 공정담론 등에 대해서 알아본다. 대화시간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게임을 통해 배운 것을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을 한다. '무엇을 다르게 해야 게임이 조금 더 평등하고 안전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답이 없다. 게임을 멈추고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기존의 규칙들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세우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

'부루마블', '모노폴리', '호텔왕'과 같은 보드게임을 생각하면 된다. 나는 최대한 많이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파산해야 내가 승리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게임에 참여하면 게임의 규칙에 따르게 된다. 게임에 적당히 참여하면서 적당히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망하거나 남들을 다 망하게 해야 게임이 끝나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에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게임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사회에 거는 기대가 적은 시대가 됐다. 사회가 사회적 안정망을 구축하는 등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기보다, 각자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해 자신의 삶을 알아서 살아야 하는 각자도생 사회다. '핵개인'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개인들이 '핵고립'되어 '핵혼자' 살지 않을 수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면 좋겠다. 그러나 '핵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현실에 질문을 던지거나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여겨지거나 부질없는 노력으로 여겨진다. 현실이 너무 공고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해서 최대한(그나마)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평범한 선택지다. 지금보다 더 나은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은 표면적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왕따를 뽑는 게임이다. 선거는 인기투표 방식이고 선거 결과에 따라 A, B, C, D 그리고 F 계급이 주어진다. 최상위 계급인 A는 이 게임을 통해 명분을 갖고 A의 허락이란 조건을 통해 A~D계급은 모두 F를 괴롭힐 수 있다. 누가 F를 어떻게 괴롭히든 다른 사람들은 외면한다. 자신만 F가 아니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은 F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F가 있기에 안정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폭력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며 자신의 평온을 찾는다. 누군가는 F가 되길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된다. 동시에 A의 권력구조를 견고하게 만드는 '방관자'인 악마가 된다. 피라미드 게임 속에서 악마는 쉽게 전염된다. 게임에 참여할 것인지 참여하지 않을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F가 된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도미야마 이치로가 '폭력의 예감'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옆에 선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옆에 선 사람은 폭력을 예감하는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예상되는 폭력 앞에 이를 피하고자 하는 행위를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결국 어느 곳에나 있는 방관자, 다시 말해 도미야마 이치로가 말한 '겁쟁이'들이 어떻게 변화로 나아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겁쟁이들의 연대가 가능할 때, 모든 변화의 가능성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 의해 그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삶을 사는 한 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다만 무너뜨릴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 스틸컷 ⓒ자료사진

피라미드 게임에 "너는 방금 좀 망했고, 우린 우리가 됐어"라는 말이 나온다. 이 게임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연대를 통해 '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를 핵개인으로 만드는 시대를 민중들이 다시 "우리"로 만들 때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피라미드 게임은 청소년 관람 불가임에도 불구하고 10대가 가장 많이 보는 콘텐츠 1위가 됐다. 보지 못하게 정해 둔다고 해서 보지 않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학교에서 피라미드 게임을 따라 놀이를 가장한 집단 따돌림 모방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를 가정에서도 함께 지도해 달라는 가정통신문이 발송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방법이 될 순 없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폭력을 멈출 것인가?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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