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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조직을 사랑한 윤석열, 조폭과 뭐가 다른가

우선 칼럼 제목부터 설명을 좀 해야겠다. 사실 이 제목은 이번 칼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 기사를 검색하다가 진짜 눈에 딱 들어오는 제목을 하나 찾았다. 읽어볼 가치는 전혀 없는 칼럼이어서 링크는 남기지 않겠다.

다만 그 칼럼의 제목은 소개하는 것이 마땅한데, 왜냐하면 이 칼럼 제목이 그 칼럼을 그대로 베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칼럼의 제목은 표절이다. 그리고 낚시한 것 같아 정말 죄송한데, 이 칼럼의 주제는 칼럼의 제목과 별 상관이 없다. 아무튼 제목을 먼저 보고 시작하자.

[김순덕 칼럼] 조직을 사랑한 윤석열, 조폭과 뭐가 다른가 _ 동아일보 2019년 7월 11일

언론에 좀 관심이 있는 독자분이라면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지도 모른다. 동아일보에서 대기자 타이틀을 땄을 정도라면 그의 보수(꼴통보수라고 적으려고 했으나 한때나마 한 회사에서 선후배 사이로 지낸 정리를 생각해 ‘꼴통’은 뺐다) 성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가능한데, 사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논리가 하도 어리둥절하고 뜬금이 없어서였다. 하긴 이 분, 내가 그 회사 다닐 때에도 그랬는데 참 여전하시다. 다만 이 분에 대한 뒷담화는 이번 칼럼의 주제가 아니니 생략하기로 하자.

신기한 것은 동아일보를 대표(?)하는 이 분의 칼럼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사실이다. 신기하지 않나? [김순덕 칼럼]을 빼고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을 넣어도 제목에서 아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다니!

검사라는 직업의 오묘함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연히 2019년 7월 11일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는 윤석열이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이었다. 문재인 정권이라면 학을 떼는 김순덕 씨의 눈에 윤 후보자가 좋게 보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조폭’ 운운하며 심하게 윤 후보자를 깐 것이다.

지금 이 칼럼을 김순덕 씨에게 보여주면 상당히 쪽팔려 하지 않겠나?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너도 그때는 윤석열의 검찰총장 임명을 반겼고 좋아했을 거다. 그러다 그가 보수로 전향하니까 씹어대는 것 아니냐?”는 반론은 집어치워라.

나는 맹세컨대 윤석열의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부터, 아니 그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로부터 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며 출세가도를 예약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그를 찬양한 적이 없다. 칼럼이나 기사는 물론, 개인적 머릿속으로도 그랬다.

왜냐? 나는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매우 심한 위화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이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모두 이상하고 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지닌 내부적 모순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대체적으로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설명을 좀 더 해보자. 내가 살아오면서 정서적으로 어마어마한 위화감을 느낀 장면이 이 장면이었다. 2017년 봄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사장이 이른바 ‘롯데비리’와 관련돼 재판을 받을 때 이규철 변호사가 그의 변호인으로 함께 법정에 출석을 했다.

“이규철이 누군데?”라고 물을 수 있는데, 이 사람 이름은 몰라도 이 사람 얼굴과 카랑카랑했던 목소리는 대다수 시민들이 기억하실 것이다. 2016년 12월 5일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위한 특검이 구성됐을 때 공보담당 특별검사보로 임명됐던 인물이 이규철 변호사다. 매일 오후 2시 반만 되면 방송사 카메라 앞에 서서 정의롭고 단호한 어조로 브리핑에 등장해 온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재벌의 횡령 비리를 변호하기 위해 신동주 옆에 서서 나란히 법정에 들어서더라. 이때 내가 느낀 위화감이 어땠겠는가? 물론 이규철 변호사는 이후 특검의 이름에 부담을 주기 싫다며 신동주의 변호인 자리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이규철 변호사는 판사 출신이다. 내가 오늘 이 칼럼의 주제로 삼은 검사 출신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3.19. ⓒ뉴시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존재했던 검사가 어느 날 갑자기 변호사로 돌변해 범죄자를 비호하는 이 위화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규철 변호사가 그냥 판사 출신이었다면 그가 신동주를 변호하건 신똥주를 변호하건 누가 뭐라 하겠나? 그가 특검을 거쳤기 때문에 이런 위화감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평생 재벌을 비판했던 나 같은 기자가 어느 날 재벌 홍보팀에 들어가 재벌을 옹호하는 보도자료를 쓰고 자빠져 있으면 보는 사람들의 위화감이 얼마나 심하겠나?

괴리감과 위화감이 당연한 직업


검사는 이 황당한 괴리감과 위화감을 당연히 여기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다. 검사는 재직시절 민사소송이 아닌 형사소송을 다룬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퇴임 후 당연히 형사소송의 변호를 맡는다.

검사 시절에는 ‘저 새끼는 반드시 범인이야. 아니 범인이 아니어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해!’라는 마인드로 살아야 승진이 된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면 ‘저 고객은 절대 범인이 아니야. 아니, 범인이어도 절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야 해!’라는 마인드로 살아야 밥벌이가 된다.

판사는 다르다. 판사는 사건에 따라 옳고 그름을 나름 판단을 한다. 그렇기에 ‘무조건 저자는 범인이야’라는 마인드도 없고 ‘무조건 저자는 범인이 아니야’라는 마인드도 없다. 이 정도 중립적인 자세에서 변호사가 돼 누군가를 변호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판검사 경험 없이 변호사로 시작한 법조인들도 상관이 없다. 변호사들은 사건을 선택해 수임할 수 있다. 돈 없고 힘없는 민중들을 변호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들도 있다. ‘이 사건은 나의 윤리에 맞지 않으므로 수임하지 않겠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는 다르다. 검사의 판단은 “저 새끼는 반드시 유죄”이어야 한다. 그러다가 변호사가 되면 극적인 변신을 한다. 와, 나는 인간의 두뇌 속에서 이런 변신이 어떻게 이처럼 보편적으로 가능한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검사라는 직업이 정치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왜냐? 일생을 판단보다 강박에 살아온 사람들이다. 평생을 누군가를 위해 단죄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변호사가 되면 자기가 단죄했던 사람을 위해 모든 재능을 바쳐 변호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실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들은 결단코 옳음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이들은 권력과 돈, 단 이 두 가지만을 위해 움직인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민중의 안위를 맡긴다는 말인가?

내가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근본적으로 신뢰를 갖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후보자가 됐을 때에도 그를 절대 찬양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걸 직업에 대한 편견이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그 비난을 달게 받겠다.

내 머리로는 그 극적인 변화를 너무나 순순히 받아들이는 검사라는 직업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다. 나는 검사는 정치인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나의 편견을 계속 가슴에 품고 살아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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