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문제로 충돌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18일 오전 대통령실은 이종섭 호주대사와 관련해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전날 저녁 한 위원장이 "공수처는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문제에서도 드러났다. 한 위원장이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며 사퇴를 촉구한 반면, 대통령실은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부인했다.
여당과 대통령실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을 의식한 듯 한 위원장은 18일 아침 출근길에서 기자들의 문답을 받지 않았다. 최근 당사 1층에 '출근길 문답'을 위한 조명과 배경까지 설치한 걸 감안하면 우회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를 앞둔 만큼 여당 내에서는 윤 대통령이 여당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의 수행실장을 맡아 '찐윤 중의 찐윤'이라고 불리는 이용 의원도 두 사람의 "조속한 거취 결단"을 촉구했을 정도다.
2개월 전 디올백 수수 문제로 불거진 갈등에서는 윤 대통령이 우위에 섰다. 당시 한 위원장은 눈 내리는 거리에서 윤 대통령을 기다려 '90도 인사'로 사태를 봉합했다. 이번에는 좀 다를 수 있다. 선거가 눈앞에 다가온 이상 윤 대통령에게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 1호 참모'를 자처했던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과거 발언이 문제 되어 공천장을 박탈당했다. 용산의 지원을 받아 대구에 출마했던 도태우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이번 충돌이 윤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이유다.
사실 윤 대통령이 이기든, 한 위원장이 이기든 그것은 국민이나 국정과 아무 관계가 없다. 대통령 임기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른바 '신구권력의 충돌'이라니 어이가 없다. 두 사람의 갈등이 국정 기조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한 위원장은 작년 말 취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하나의 국정과제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야당 대표에 대한 험담과 말꼬리 잡기만 열중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사고를 치고, 여당 대표가 이를 무마하고 봉합하는 게 선거에서 집권세력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인 셈이다. 그러고도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다니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