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명숙 칼럼] 여성이 일을 멈추면 생기는 것들

성별임금격차 무너뜨리는 여성파업이 시작된다

2020년 1월 31일  45일째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을 벌이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농성을 해제했다. 본사 점거농성을 해산하면서 마지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톨게이트 수노동자들의 모습. ⓒ민중의소리

“집에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으니 아들도 남편도 이제는 알아서 밥을 해 먹어요.”

2019년 한국도로공사에서 톨게이트수납 업무를 하던 수납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던 여성노동자가 한 말이다. 남성노동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여성노동자다. 대법원에서 불법이라고 직접고용을 판결했지만, 도로공사는 톨게이트노동자들에게 자회사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1,500명을 대량해고했다.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농성은 오래갔다. 농성장은 한국도로공사가 있는 김천본사와 공공기관인 만큼 정부의 책임을 묻느라 청와대가 있는 서울에 있었다. 한동안은 서울톨게이트 위 캐노피에서도 농성했다.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은 전국 도로마다 있으니 서울과 김천 농성장, 캐노피 농성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성노동자들은 집을 떠나 오랜 시간 농성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지방이 집인 여성노동자들은 집에 갔다오기는 했지만 어디 집안노동, 가사노동이 하루에 끝날 일인가. 아니다.

그러자 집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빨리 투쟁을 접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남편의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있고, 남편과 자녀들이 알아서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 등 가사돌봄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2010년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해고에 맞선 투쟁 때도 몇몇 여성노동자들은 이혼 요구를 받기도 했다. 2019년 7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투쟁하던 기아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집회에 연대하러 온 톨게이트수납 여성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낙네가 어디 동네 챙피하게 거리에서 얼굴 들고 싸우냐고, 남편이 빨리 접고 들어오라고 해서 제가 말했습니다. 투쟁하면서 이제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이제 내 목소리로 내가 말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걸 끝내요. 이혼을 하면 하지,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어요.”

그렇다. 한번 싸워본 사람은 안다. 싸움은 나를 바꾸고 주변을 변화시킨다. 침묵과 순종을 강요받아온 삶을 벗어나는 주체적인 실천의 경험은 애벌레가 탈피하는 경험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특히 가사돌봄노동을 전담하게 만드는 가부장사회에서 동료 여성들과 집단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싸우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경험은 성차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깨닫는 과정이 된다. 파업하러 집 밖으로 나온 여성노동자들은 엄마나 아내, 딸이 아닌 오롯한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고, 노동하는 여성의 위치, 구조적 차별를 깨닫는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가부장사회가 문제임을.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아이슬란드 여성 파업'을 벌였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최소 90%가 출근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약 25,000명의 여성들이 레이캬비크 시내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당시 아이슬란드의 총 인구는 216,695명에 불과했다 ⓒSagnir 24. október 1975 - kvennafríeða kvennaverkfall?(2009

성평등을 앞당긴 아이슬란드의 여성파업


실제 여성파업을 통해 성평등을 앞당긴 나라가 있다. 1975년 10월 아슬란드의 여성 90%가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와 집회를 했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는 성별 임금 격차가 커서 여성들은 오후 2시 05분까지만 일했다고 한다. 여성파업의 날 여성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사노동도 중단하고 거리로 나와 집회에 참여했다. 그러니 일터로 간 남성노동자들이 가사노동을 하느라 지각하거나 휴가를 내야 했으니, 공장이나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유치원과 학교도 운영이 어려웠고 신문발행도 중단됐다. 조판공이 대부분 여성이어서다. 항공기도 결항됐다. 여성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추니 비행기가 운항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찮은 노동으로 평가되던 여성들의 노동이 파업으로 그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것이다. 5년 뒤 아이슬란드 페미니즘 진영은 여성대통령을 추대해 1980년 세계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평등 지수'에서 14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국가다.

그런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은 작년 10월에도 48년 만에 24시간 여성파업을 진행했다. 아이슬란드의 성별 임금격차는 13%이지만 그녀들은 말한다. 100% 똑같지 않다면 평등하지 않다고. 아이슬란드의 2023년 여성파업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을 관심을 보였다.

왜 한국 언론은 여성파업을 주목하지 않나


한국에서도 작년 11월 1일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가 출범했다. 2023년 3.8 여성의 날에도 여성파업조직위를 꾸렸지만 긴급하게 소규모로 꾸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성노동자들과 단체, 학생단체들에게 제안하여 여성파업의 의미와 요구안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차근히 거쳤다. 현장노동자들,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 회원 및 활동가들과 논의하는 워크숍도 했으며,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나누는 오픈마이크도 했다.

물론 아이슬란드처럼 여성의 90%가 참여하는 파업은 아니지만, 3월 8일 쟁의권을 갖고 파업하는 사업장이 두 곳이나 된다. 금속노조 KEC 지회와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다. 둘 다 성차별의 대표적 사업장이다. KEC는 동일한 제조업 직무를 해도 남성에게 승급과 승진을 유리하게 했다. 인권위와 법원이 성차별이라고 판결했지만 제대로 시정하지 않고 있다. 건보 고객센터는 콜센터라는 여성직종에 대한 차별이 뚜렷하다. 콜센터노동을 하찮게 여긴다. 간접고용, 하청업체 비정규직이고 상담사들은 고객들의 언어폭력을 시달린다. 인력이 부족해 화장실도 못갈 정도지만 최저임금을 받고 고용불안을 겪는다. 그래서 2021년 파업해서 건강보험 공단과 소속기관을 전환하기로 했으나 건강보험공단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다시 파업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 2월 3일, 두 여성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인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에서 여상파업 2차 오픈마이크가 열렸다. ⓒ3.8여성파업조직위

한국의 노조법이 정치파업을 인정하지 않아 성별 임금격차 해소나 성평등을 요구하는 파업은 불법파업으로 취급된다. 노조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파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노조가입률도 낮다. 그래서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휴가나 조퇴 등의 방식으로 참여할 것이다.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노동자들도 파업에 함께 한다. 아이슬란드 여성노동자 파업이 그랬듯이, 일터에서만 여성들이 노동을 멈춘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가사와 돌봄을 멈출 것이다. 세상이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여성파업은 전통적인 노조파업과는 다르다. 여성들에게 전가된 가사돌봄 노동, 성별화된 노동을 멈추는 것도 한다.

이번 여성파업조직위의 요구안은 최저임금인상 같은 생산영역만이 아니라 재생산 영역인 임신중지권 보장을 요구안에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상품과 이윤 논리에 따라 생산영역의 가치만을 중시했지만, 인간의 삶은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이 나뉘어 있지 않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 등으로 몸과 마음의 많은 변화를 겪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둔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는 여성 개인이 해결하라고 한다. 또, 이번 파업에는 생물학적 여성만이 아니라 논바이너리 등 성소수자도 함께 한다. 성별이분법과 정상가족주의는 성차별을 용인하는 가부장제도의 기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작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도 논바이너리 참여를 적극 호소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논바이너리에 대한 혐오, 증오범죄가 많기에 성소수자들의 참여는 중요하다.

여성혐오와 성소수자 혐오는 맞닿아 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집게손가락 사태에서도 보이듯, 여성혐오적인 일부네티즌의 말만 듣고 원청 회사는 여성창작자의 퇴사를 종용하려했고 괴롭히기까지 했다. 이렇게 여성혐오는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협한다. 성소수자혐오는 성소수자들의 노동권을 위협한다. 그리고 여성파업조직위는 장애인노동자의 노동권 보장도 촉구한다. 여성노동자 중에는 여성장애인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속도와 이윤만을 내세우는 자본주의는 여성의 노동을 착취하고 차별하기 때문이다. 여성파업은 가부장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성차별에도 균열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여성파업에 대해 한국의 주류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노조 혐오와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세계여성의 날을 여성에게 장미꽃이나 선물을 주는 소비주의적이고 대상화된 존재로 여성을 취급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여성파업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존엄을 건 파업은 성평등의 생명이 자라나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추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아이슬란드처럼 여성의 90%가 참여하는 여성파업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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