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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유일무이한 즉흥음악 축제, 한국 즉흥음악 축제

왼쪽부터 비헤디드, 이태훈, 백다솜, 박재린 ⓒ서울남산국악당

즉흥음악 이야기부터 해보자.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음악. 악보를 사용하기도 하고, 활용하지 않기도 하는 음악이다. 최소한의 룰을 정하기도 하고 아예 룰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즉흥음악이라는 장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즈에 자유 즉흥음악이라는 하위 장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즉흥음악은 재즈에만 존재하진 않는다. 즉흥음악은 한국 전통음악에도 있고, 힙합에도 있고, 록에도 있다. 다른 장르에도 즉흥음악을 하는 음악인이 있다. 물론 장르마다 즉흥음악의 비중과 빈도는 차이가 있다. 반드시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장르 사이에는 방법론의 차이보다 큰 간극이 있다.

그래서 올해 두 번째 열리는 한국 즉흥음악 축제가 서울돈화문국악당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단지 두 공연장을 운영하는 주체가 같고, 그 회사에서 새로운 페스티벌을 시작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한국 전통음악 공연장에서 즉흥음악 축제를 여는 순간, 한국 전통음악이 호스트가 되어 다른 장르를 초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한국 전통음악계에서는 다른 장르와 크로스오버 하는 시도가 일상화되고 있다.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팀은 적지만, 음악마니아라면 여러 팀의 크로스오버 음악인들을 거명할 수 있을 정도다. 올해 한국 즉흥음악 축제에서도 한국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했거나, 국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이 여럿 보인 이유이다.

그렇다고 한국 즉흥음악 축제가 한국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는 않았다. 바이올린 연주자, 전자음악가, 피아니스트, 색소폰/트럼펫 연주자, 첼로 연주자, 드러머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와 악기에 기반한 연주자들이 결합해 두 번째 페스티벌을 펼쳤다. 프린지 콘서트, 넥스트 페이지 콘서트, 한옥 콘서트, 메인 콘서트, 나이트 콘서트 등으로 나눠진 프로그램마다 여러 연주자들이 다른 편성으로 결합해 공연을 선보였다. 신인 음악인과 중견 음악인과 거장 음악인이 총출동하듯 무대에 올랐다.

왼쪽부터 하림, 주보라 ⓒ서울남산국악당

그럼에도 객석에 빈자리가 적지 않았는데, 한국 즉흥음악 축제가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홍보 기간이 짧았던 데다, 즉흥음악 스타가 부재하고, 팬덤 자체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좋은 음악, 새로운 음악을 찾아듣기를 즐기는 음악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축제에 대한 미진한 호응은 축제 홍보물 등을 통해 즉흥음악에서 기대하고 증폭할 수 있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즉흥음악 팬들은 즉흥음악 공연이 열리면 무조건 함께하겠지만, 아직 즉흥음악이 친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 축제를 통해 색다르고 새로운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확인해야 하는데, 홍보물을 비롯한 디자인을 통해 즉흥음악 축제만의 차이와 매력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총 5일 동안 진행한 축제는 프로그램마다 완성도의 차이가 나기도 했다. 축제의 문을 연 프린지 콘서트 Ⅰ, Ⅱ의 경우는 충분한 경험이 없는 음악가의 공연이 얼마나 설익고 어설플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차세대 즉흥음악가를 발굴하고, 즉흥음악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선의에도 단시간의 연습으로 즉흥음악의 진수를 선보이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이 프린지 콘서트의 유일한 가치였다.

이에 반해 강태환, 최선배 같은 노장 음악인들이 협연한 무대와 하림, 강권순, 지박, 윤은화, 이상민 같은 최정상급 음악인들이 등장한 무대는 저마다 다른 접근과 흐름으로 즉흥음악의 진수를 전달했다. 이들은 즉흥음악이라고 상대를 감안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연주하지 않았다. 즉흥음악은 자신이 쏟아내고 싶은 장단과 멜로디와 사운드를 분출하면서 함께 연주하는 협연자의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연주에 맞춰 자신의 연주를 끊임없이 조정하고 변화시키는 일이고, 그 과정 속에서 순간의 합을 맞추고 빠르게 정련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 즉흥음악의 핵심이다. 즉흥음악은 부정과 통일의 불규칙한 연속이나 마찬가지다. 해왔던 플레이를 반복하지 않고 상대와 밀고 당기며 인상적인 화합의 순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즉흥음악은 실패한다. 생경하거나 독특하거나 마구 내지른 소리를 방출한다고 좋은 즉흥음악이 되지 않는다.

왼쪽부터 김은영, 지박, 최휘선, 강권순 ⓒ서울남산국악당

소리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보여주기로 작정한 듯한 소리꾼 이나래와 가야금 연주자 이화영의 한옥 콘서트 공연은 음악이 되는 소리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흔들었다. 이들의 공연을 보는 동안 음악이 무엇이고, 음악이 아닌 것은 무엇이며, 음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과 대답이 솟구쳤다. 밀도 높고 긴장감 가득했던 강권순, 김은영, 지박, 최휘선의 공연이 음악가의 면면으로 예상 가능한 공연이었다면, 관객들을 편안하게 숨쉬게 했던 주보라와 하림의 공연은 예상외의 다정한 접근으로 싱그러웠다. 민영치, 윤은화, 이상민이 평화와 사랑과 존경과 연결을 담아내려 했던 공연 역시 연주자들의 이력만큼 치밀하고 단단했다. 유일하게 무용가 바리와 심운정이 함께 한 공연은 자유로운 발상이 돋보였다. 비헤디드, 백다솜, 박재린, 이태훈의 공연은 이번 축제에서 최고였다 할 만큼 기세가 넘치고 드라마틱했다. 서정민, 심은용, 이선재의 공연 역시 활기가 가득했다. 이에 비해 박창수와 민영석의 공연은 관습적이었고, 두 번의 나이트 콘서트는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평이했다.

충분히 연습을 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연주자들의 상태와 우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공연들은 다른 악기와 장르가 즉흥적으로 결합할 때 어떤 소리의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모르긴 해도 한국 즉흥음악 축제에 함께 한 이들은 더 많은 소리를 품을 수 있게 되고, 더 자유로운 소리의 이합집산을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올해는 관객이 많지 않았지만, 한국 즉흥음악 축제가 발칙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과감한 음악 축제, 새로운 음악언어를 만끽하는 음악 축제로 음악계에 부재한 영역을 개척하며 파란을 일으키기를.

왼쪽부터 심은용, 이선재, 서정민 ⓒ서울남산국악당
왼쪽부터 민영치, 이상민, 윤은화 ⓒ서울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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