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언론인들의 출마 러시, 일그러진 언론을 돌아본다

최근 나는 오랫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마음 속 한 가지 고민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언론인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관한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꽤 오랫동안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본령으로 삼는 언론인들이 그 정치권력 중심부로 직행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반면 유독 언론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또 별로 옳아 보이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 내 입장은 가급적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잘 모르면 입을 닫는다, 이게 내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랜 무지의 기간을 끝내고 나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극히 몇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옳지 않은 일에 찬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 결론은 반대다.

정파적 입장 때문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정파적 입장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관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칙이 정해지면 그것은 일관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팬덤 정치를 비판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비판해야 한다. 팬덤 정치를 관용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관용해야 한다. 그 팬덤이 나를 칭찬할 때는 좋아라 하다가 그 팬덤이 나를 비난할 때에는 “팬덤 정치가 나라를 망친다”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의 정계 진출도 마찬가지다. 우리 편으로 진출하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입을 닫다가, 저쪽 편으로 진출하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비판을 하는 식의 관점은 옳지 않다. 관용할 거면 관용하는 거고, 비판할 거면 일관적으로 비판하는 거다.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침묵이었고, 이 침묵은 그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적용됐다. 그리고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반대일 것이며, 이는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반대로 유지될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느냐? 내 나이가 그 정도가 돼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출마를 했다. 여기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란 송혜교나 박보검처럼 유명해서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진짜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해 본 사람들을 뜻한다.

내가 동아일보 출신이니 특히 이 언론사 출신들이 많다. 기존 정치인 중에서는 이낙연(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양기대, 윤영찬 의원(이상 민주당) 등이 출마를 준비 중이고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번 선거에는 주로 국민의힘으로 옛 직장 동료들이 대거 출마를 선언했다. 최영훈, 정연욱, 하종대, 박정훈, 김동원 후보가 그들이다. 경선에서 탈락한 이들도 있고 경선을 진행 중이거나 출마를 확정지은 이들도 있다. 아, 이 가운데 박정훈 후보는 TV조선 앵커 출신으로 많이 소개되던데 나에게는 동아일보 1년 선배고 직장 생활도 동아일보에서 더 오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박정훈 전 TV조선 앵커 ⓒ박정훈

국민의힘으로 출마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실 텐데, 그 이야기는 오늘 생략한다. 나와는 직장 다닐 때부터 철학과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매우 혐오하는 부류의 사람도 저 중에 끼어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사적인 이야기이다. 내가 지면을 통해 이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때는 그들의 그 사적인 부분이 공적인 해악을 끼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의 후보 시절, 내가 이 칼럼에서 그와 겪은 개인적 이야기를 꽤 많이 꺼냈는데 그건 그가 방통위원장을 맡을 경우 언론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그 직장에서 현장 기자라는 직종이 많아야 100여 명이고 나는 그 직장을 겨우 10년 다녔을 뿐이다. 그런데 그 중 9명이 이번 선거에 출마자로 이름을 올렸다. 세상에 어떤 직장에서 이런 높은 출마율을 보이겠나?

더 좁혀보자. 이 9명 중 내 기억으로 정치부 경력이 없는 기자는 한 명도 없다. 정치부라는 게 10~20명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내가 그 직장에 10년 다녔으니 내가 알고 지낸 정치부 기자라고 해봐야 많아도 70여 명 안팎일 것이다. 그런데 그 중 무려 9명이 이번 선거에서 이름을 올렸다. 실로 놀라운 일 아닌가? 내가 이번 총선에서 이 문제에 대해 유독 고민을 많이 한 이유다.

친목이 기준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언론인들의 정계 진출에 반대하느냐? 누구 편이냐를 떠나서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니, 이들의 정계 진출 바탕이 됐던 평가나 업적이 결코 사회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어떤 기업인이 인재로 영입돼 출마를 한다. 이때 이 사람이 영입되는 기준은 기업인으로서 활동이 어떤 사회적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 평가에 내가 동의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평가가 그렇게 이뤄진다는 거다.

예를 들어 양향자 의원 같은 경우는, 삼성에서 활동한 그의 기업인으로서 활동 덕에 정계에 영입됐다. 나는 삼성도 싫어하고, 양향자 의원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그런 평가가 이뤄질 수 있고, 평가란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

바둑계의 레전드 조훈현 기사도 새누리당 소속으로 비례 의원이 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새누리당도 극혐했고 바둑 팬으로서도 조훈현이 아닌 서봉수의 팬이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그가 한 정당의 비례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화계 인사로서 그가 남긴 업적이 그런 사회적 평가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는 다르다. 특히 정치부 기자는 다르다. 그들이 공천을 받거나 인재로 영입된다면 이유가 뭐겠나? 언론인으로서 쌓은 업적이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아서였겠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들과 친목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직업도 정치인과의 친목질로 국회의원 후보가 되지는 못한다. 아니, 대부분 직업인은 정치인과 친목질을 할 기회조차 없다.

그런데 기자는 이게 거의 유일하게 가능한 직업이다. 그렇다면 기자가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민중을 위해 올바른 기사를 써야 할까? 아니다. 나를 정계에 진출시켜줄 거물 정치인을 위해 기사를 써야 한다.

누구 편을 위해 기사를 썼건 이건 옳은 일이 아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언론이 망가진다. 언론인의 정계 진출 러시를 보면서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이런 식의 정계 진출은 동아일보 출신으로 민중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이부영 전 의원의 케이스와 완전히 다르다. 이부영 의원은 동아일보 출신이지만 그가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운동가로서 높은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부영 선배는 동아일보에 사실 몇 년 다니지도 않았다. 내가 알기로 이부영 선배는 동아일보에 다닌 기간보다 감옥에서 복역한 기간이 더 길었던 재야 인사였다.

마지막으로 이런 관점에서 언론인 출신 이번 총선 출마자 한 명에 대한 변호를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친다. YTN 해직기자 출신 노종면 후보는 내가 앞에서 말한 언론인 출마 반대의 기준에서 거의 유일하게 벗어난 사람이다.

2008년 해고된 뒤 2017년 복직된 그가 정치인들과의 친목질을 통해 출마의 길을 열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총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해직 언론인으로서 싸워 얻어낸 사회적 평판 덕분이다. 참고로 나는 노종면 후보와 젊은 시절 두 달 정도 같은 영역에서 경쟁사 기자로 마주한 적 외에는 전혀 개인적 친분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그는 내가 누군지 기억조차 못 할 것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