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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의 토지와 자유] DSR에서 빠진 전세대출, 윤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 아닌가

은행권이 2월 마지막 주부터 이른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 중이다.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면 금융소비자가 빌릴 수 있는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든다. 장래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고려해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추정하기 때문이다. 이미 임계점을 돌파한 가계부채를 감안할 때 ‘스트레스 DSR’의 적용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당초 ‘스트레스 DSR’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던 전세대출은 막판에 빠졌다. 대통령실이 금융위원회에 서민주거안정을 이유로 전세대출을 ‘스트레스 DSR’에 포함시키지 말아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한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 구차한 변명과는 달리 전세대출을 ‘스트레스 DSR’에 포함시키지 않은 건 윤 정부의 전세가격 지탱을 통한 집값 떠받치기로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

가계대출 자료사진 ⓒ뉴시스

마침내 시행된 은행권의 ‘스트레스 DSR’

2월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26일부터 일제히 새로 취급하는 주택담보(오피스텔 포함) 가계대출의 DSR을 '스트레스 금리' 기준으로 산출한다. DSR은 대출받는 사람의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부담이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해당 대출자가 한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현재 은행권의 경우 대출자의 DSR이 40%를 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대출을 내줄 수 있다.

한편 지금까지는 실제 금리를 기준으로 DSR을 산정했지만, 26일부터 시작된 이른바 '스트레스 DSR' 체계에서는 실제 금리에 향후 잠재적 인상 폭까지 더한 더 높은 금리(스트레스 금리)를 기준으로 DSR을 따진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경우 늘어날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반영해 변동금리 대출 이용자의 상환 능력을 더 엄격하게 보겠다는 것인데, 결국 새 DSR 규제에 따라 산출되는 대출 한도가 기존 방식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의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를 보면, 실제로 연봉 5천만원인 A씨가 40년 만기(원리금 균등 상환)로 주택담보대출(코픽스 기준 6개월 변동금리)을 받을 경우(다른 대출이 없다고 가정), 스트레스 DSR 적용에 따라 당장 26일부터 대출 한도가 2천만원 정도 줄어든다.

또한 올해 하반기 이후 스트레스 DSR 체계가 2단계(2024년 7월 1일∼12월 31일), 3단계(2025년 1월 1일 이후)로 넘어가면 대출 한도 축소 폭은 더 커진다. 스트레스 금리의 반영 비율이 1단계 25%에서 2단계 50%, 3단계 100%로 갈수록 높아지는 탓이다. 더구나 2단계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은행권 신용대출과 은행 외 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고, 3단계에서는 적용 범위가 모든 가계대출로 넓어지는 만큼 갈수록 금융권에서 받을 수 있는 전체 대출 한도가 뚜렷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일부 은행이 연초 상당 폭 불어난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금리까지 올리는 분위기라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건 물론이거니와 대출에 따른 비용도 불어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이렇게 가계대출 관리에 나선 건 가뜩이나 임계점에 다다른 가계대출이 연초부터 폭증을 거듭 중이기 때문이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2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1천303억원으로 집계됐다. 1월 말(695조3천143억원)보다는 1천840억원 줄었지만, 작년 말(692조4천94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2조7천209억원(0.39%) 늘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535조6천308억원)의 경우 1월 말(543조3천251억원)보다 1조3천57억원 많고, 지난해 말(529조8천922억원) 이후 불과 한 달 20여일 사이 5조7천386억원(1.08%) 더 늘었다.

정작 중요한 전세대출이 ‘스트레스 DSR’에서 누락된 까닭

폭발 직전의 가계부채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기왕에도 많았다. 하지만 윤 정부는 그런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하며 대출에 대한 규제를 죄다 푸는 건 물론이고 정책금융까지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사했다. 작년에는 물경 40조원에 육박하는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를, 올해에는 30조원을 넘는 신생아특례대출 및 20조원에서 30조원 사이로 추정되는 청년주택드림대출을 각각 시장에 풀 거나 풀 예정이다. 윤 정부가 ‘빚내 집을 사라’고 강권하니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채의 모래성 위에 부채를 더 쌓는 형국이다 보니 아무리 대출로 집값을 떠받치려는 윤 정부라 해도 가계대출에 대한 관리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DSR’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 단지 ⓒ뉴시스

뜻 밖인 건 애초 윤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시키려 했는데 이를 백지화했다는 사실이다. 22일 국회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전세대출에 대한 DSR 적용을 추진하지 않기로 최근 내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금융위는 연초 업무보고에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기로 하고, 이를 연내에 시행하겠다고 했었다.

작년 12월 말 기준 가계대출 규모가 1886조4000억 원에 이르는데다 가계대출을 획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세대출에 대한 통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합의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전세대출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했다. 전세대출 잔액은 2022년 170조 원을 넘어섰다. 전세대출의 폭증은 전세과소비, 갭투기, 가계대출 폭증, 전세사기 창궐 등의 수다한 문제들을 양산한 온상이 됐다.

하여 전세대출에 대한 강력한 관리는 시대적 과제였지만, 금융위는 주거 불안을 명분으로 내세운 대통령실의 압박(?)을 못이기고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윤 정부 대통령실이 내세운 주된 명분은 전세대출 한도가 줄면 월세수요가 늘어 월세가격이 오르는 등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저해된다는 것인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월세가격이 오르면 정부가 월세상한을 통제하거나 월세입자에 대한 각종 지원을 통해 이를 흡수하면 될 일이다.

정작 윤 정부 대통령실이 근심하는 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 전세대출이 포함되면 전세수요가 줄고 줄어든 전세수요가 전세가격을 아래로 끌어내릴 것이며, 역전세 장세가 펼쳐져 매매가격도 급락하는 사태의 전개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래 일관되게 추진한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집값 떠받치기다. 그리고 이번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 전세대출이 제외된 것 역시 집값 떠받치기의 일환으로 평가하면 정확하다. 전세대출이 지닌 수다한 문제점들을 한사코 외면하며 집값 떠받치기에만 혈안이 된 정부를 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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